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영아 5년 8개월 동안 780명, 일주일에 5명 꼴

“죄책감 덜어 유기 조장한다” vs “한 생명이라도 살려야 한다” 찬반론 충돌

지난 27일 주사랑공동체교회가 병행 운영하고 있는 베이비박스와 베이비룸에 버려진 7명의 아이들이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의 돌봄을 받고 있다.
[데일리한국 황혜진 기자]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거리에 유기하지 않도록 해 아이의 생명을 구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베이비박스(Baby Box)’가 최근 ‘베이비룸(Baby Room)’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베이비박스가 국내에 설치된 지 5년 8개월만이다. 이는 아이를 두고 가기 전 아이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직접 양육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박스’에서 ‘룸’으로 확대 재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베이비룸과 베이비박스는 부모의 죄책감을 덜어주며 유기를 조장한다는 반대론이 여전하다. 반면 최소한의 장치라도 없으면 아이들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찬성론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선뜻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난제 중 난제다. 이에 <데일리한국> 기자가 7월부터 새롭게 운영되는 베이비룸을 찾아가봤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며 부모들이 남긴 편지. 사진=주사랑공동체교회 제공

베이비박스 5년, 베이비룸으로 새 단장해

서울 난곡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이종락 목사는 교회 앞에 아이를 두고 가거나 교회에 찾아와 양육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 10여 명의 아이들을 직접 입양해 키웠다. 그러다 2009년 12월 교회 한쪽 벽면을 헐고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절박한 상황에 있는 부모들이 갓 태어난 아이를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리거나 지하철 무인보관함 또는 화장실에 유기하는 사건이 많이 발생하자 한 아이의 생명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이비박스가 생긴 이후 5년 8개월 동안 총 780명의 아이가 이 교회에 맡겨졌다.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지난 7월 25일 ‘베이비룸(Baby Room)’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만들었다. 기존의 베이비박스는 가로 70cm, 높이 60cm, 깊이 45cm로 공간이 좁았던 데다가 또 박스에 아이를 두면 부모와 아이가 바로 단절돼 양육에 대해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기침대와 소파가 마련돼 있는 베이비룸의 문을 열면 사회복지사들이 알 수 있도록 건물 안에 경보가 울린다. 관계자들이 폐쇄회로(CC) TV를 통해 아이와 부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부모가 아이와 작별하는 동안 사회복지사가 베이비룸으로 찾아가 부모와 상담을 진행하게 된다.

교회 측은 우선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사연을 듣는다. 아이를 데려온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절박하고 처참한 처지 때문에 아이가 자신을 떠나 더 좋은 환경으로 가길 바란다. 상담자는 아이가 친부모와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아이를 직접 키우도록 설득한다.

하지만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현실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 아이를 데리고 베이비룸을 찾은 16세 소녀처럼 아직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인 미성년자가 부모가 된 경우도 많고 정당하지 않은 절차로 아이를 가졌다는 편견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오갈 데 없는 미혼모들도 많기 때문이다.

끝내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게 되면 교회 측은 아이를 1~4일 정도 보호한 뒤 경찰에 신고한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해당 구청에서 아이를 데려간다. 출생신고와 동시에 건강검진과 신체검사가 이뤄지고 아이들은 전국의 보육시설로 보내진다.

서울 난곡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지난 7월 베이비박스의 대안으로 베이비룸을 오픈했다.

베이비박스, 유기를 조장하나 유기를 예방하나

베이비박스에 대한 의견은 베이비박스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충돌해왔다. 형법 272조 영아유기죄에 따라 직계존속이 영아를 유기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엄격히 말해 현행법상 베이비박스는 법에 저촉되는 시설인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버리는 부모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덜어줘 영아 유기의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이비박스의 존재 자체가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조태승 부목사는 “베이비박스와 베이비룸이 오히려 영아 유기를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을 붙잡고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설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측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하러 온 부모에게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 가장 시급한 문제인 가족이 함께 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부모가 안정을 취할 시간을 주기 위해 3~4개월 정도 아이를 맡아준다. 주거가 해결되더라도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부모에게는 분유, 기저귀, 물티슈, 유아복 등 25만원 상당의 필수 육아용품을 매달 지원해 준다. 현재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을 바꾼 50 가정이 이 ‘베이비 케어 키트’를 지원 받고 있다.

며칠 전에는 10대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베이비룸을 찾았다. 아이의 엄마는 고등학교 3학년이고 아빠는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에게 버림받고 아이를 혼자 책임지게 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의 아빠가 함께 오는 경우는 드물다. 이들은 상담 끝에 ‘베이비 케어 키트’를 지원 받기로 했고 아이의 아빠는 집을 구할 때까지 열흘만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한 뒤 교회를 나섰다.

이 교회는 또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지만 경제적·사회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미혼모들을 위해 방 6개와 샤워시설, 주방 등 주거 공간을 갖췄다. 이들에게 1년간 숙식을 제공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알아봐주거나 진학·취업을 위한 교육도 제공한다.

베이비박스와 베이비룸에 아이를 데려온 부모들 중 상담을 통해 마음을 돌리고 아이를 다시 찾아가는 경우는 15~20% 정도다. 적은 수치라고 할 수도 있으나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부모와 함께 살 수 있게 됐다면 무의미한 숫자라고 볼 수는 없다.

한편 베이비박스가 생긴 이후 부모들이 길거리나 여관방 등을 유기 장소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 베이비박스 이외의 장소에 유기된 영아가 83명이었지만 2013년에는 37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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