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빈티지' 표방 옛 느낌 주점 봇물

LP음반 1만여 장 전시된 도서관 등장

옛 방식 음반 발매·판매도 늘어…20대도 구매자로

복고풍 감성을 인테리어에 반영한 주점들이 인기다. 사진=복고 주점 '신라의 달밤' 페이스북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복고는 이제 더이상 옛것이 아니다. '고리타분한 것'에서 벗어나 추억에 감성이 더해진 트렌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 거리를 둘러봐도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주점들이 인기를 누리는가 하면, 아날로그 방식의 LP음반도 중장년층과 젊은층을 막론하고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70년대 거리에서 한 잔…'옛 느낌' 술집 바람

최근 주점가에 복고 바람이 거세다. '복고 주점'으로 불리는 이들 업소는 인테리어 측면에서 ‘코리안 빈티지'를 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코리안 빈티지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동네 가게나 간판, 전통시장의 모습 등을 매장 안으로 옮겨놓은 것을 의미한다. 상호도 당시의 느낌이 나도록 짓는 경우가 많다.

서울 등에 매장이 있는 한 복고 주점 프랜차이즈는 매장에 추억 속의 길거리 문화를 재현한 인테리어에 옛 느낌이 나는 전봇대와 가로등 등 소품을 배치했다. 1980~1990년대 인기가요도 흘러나온다. 또 다른 주점은 영화 세트장처럼 오래 전 거리에서 볼 수 있던 포장마차 분위기를 실내에 재현하고, 70년대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벽화로 그려놓았다.

옛 느낌을 살린 하이트진로의 소주 광고.

주류 업계도 복고 트렌드에 주목했다. 하이트진로는 최근 저도주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참이슬 시리즈 중 가장 독한 소주인 ‘참이슬 클래식’ 마케팅을 펼쳤다. 이 제품의 광고 포스터에서 모델 아이유는 60년대 유행했던 의상과 복고풍 웨이브 헤어스타일을 한 모습이다. 또한 클래식한 액자 프레임에 ‘소주는 두꺼비’라는 문구를 삽입해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 밖에 하이트진로는 최근 1924년 창립 당시의 '원조 진로'를 복원한 제품을 선보였고, 국순당은 지난 6월 새로운 백세주를 출시하면서 병 디자인에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백세주가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시절의 복고적인 느낌을 살렸다.

현대카드는 최근 턴테이블로 LP음반을 들을 수 있는 도서관을 조성했다. 사진=현대카드 제공

디지털 음원 시대 LP의 부활

스마트폰으로 음원사이트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대지만, 옛 방식의 음악도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현대카드가 지난 5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개관한 ‘뮤직라이브러리’는 요즘 '뜨는' 명소다. 음악을 콘셉트로 한 이 도서관에는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LP(바이닐레코드) 음반 1만여 장이 전시되어 있다. 방문객들은 원하는 LP 음반을 직접 턴테이블에 올려 감상할 수 있다.

이 곳을 찾는 이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도심 한복판에서 비틀즈 등의 LP 음악을 들으며 옛 아날로그 감성을 만끽하려는 중장년층, 음악 마니아들도 있지만, 특별한 경험을 위해 친구나 연인과 함께 방문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최근 대학생 딸과 함께 뮤직라이브러리를 방문했다는 이미나(53)씨는 “학창 시절 들었던 추억의 음반을 옛 방식 그대로 딸과 함께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남자친구와 이곳으로 데이트를 다녀온 박민형(25) 씨의 경우에는 "턴테이블로 LP음반을 듣는 경험을 직접 해 보고 싶어 방문했는데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다음 번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 홍대와 강남, 이태원 등지의 LP바도 인기가 높다. LP바는 아날로그 기기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맥주와 칵테일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인데, 옛 감성을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에 반영한 곳도 있지만 보다 세련된 느낌으로 젊은층의 접근성을 높인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LP로 복각돼 재발매된 조용필의 '스테레오 힛트 앨범'.

그런가하면, 젊은 가수들이 LP음반을 내거나 80~90년대 명반이 LP로 재출시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해 아이유가 8090음악을 리메이크한 앨범 ‘꽃갈피’를 한정판 LP로 발매한 이후 에피톤프로젝트, 김동률, 혁오 등이 LP 제작에 합류했다.

지난 5월에는 ‘가왕’ 조용필이 스물두 살이던 1972년 발표한 '스테레오 힛트 앨범'이 LP로 복각돼 나오기도 했다. 내달 9일에는 인터파크가 '김현철 1집'과 '이소라 1집'을 LP로 발매해 선보일 예정이다. 각각 89년, 95년에 발매돼 80~9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손꼽히는 앨범이다. 인터파크 음반담당자 김홍석 대리는 “향후에도 10월에 2종의 LP를 추가 제작 발매하는 등 지속적으로 LP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날로그 음악기기나 LP판매점을 찾는 손길도 늘고 있다. 최근 G마켓 조사결과 올 초부터 지난달 21일까지 LP판을 사용하는 턴테이블(지난해 동기간 대비 24%↑)과 '워크맨'과 같은 카세트플레이어(31%↑), 휴대용 CD플레이어(39%↑) 등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LP음반을 사고 팔 수 있는 대규모 장터 ‘서울레코드페어’는 매년 방문객과 판매수가 증가하는 추세인데, 올해는 역대 최다인 90여 개의 부스가 설치됐다.

중고 LP가게들이 모여있는 서울 중구 회현동 지하상가에는 젊은 방문객들이 많아졌다. 해당 상가의 매장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장년층들이 주고객이었는데, 최근 들어 주기적으로 방문해 LP음반을 수집하는 20~30대 남녀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젊음의 거리'로 통하는 홍대 앞에도 골동품 취급을 받던 LP판매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LP판매점에 들른다는 대학생 김민아(26) 씨는 "요즘에는 값비싼 턴테이블이 없어도 휴대용 LP플레이어를 활용해 LP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서 "LP는 아날로그의 따뜻한 느낌과 더불어 음원으로는 알 수 없는 '만지는 재미'가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