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로 보름간 집단 격리됐다가 6월 19일 해제된 장덕마을은 전북에서도 외지에 속한 곳이다.
[데일리한국 윤용진 인턴기자] 지긋지긋하게 우릴 괴롭혔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공포가 이제는 완연히 가신 느낌이다. 아직 정부는 공식적으로 종식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내부적으로는 메르스 사태의 끝을 예감하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2일 메르스로 치료 중인 환자는 12명으로 이전과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입원 중인 메르스 확진환자 12명 중 11명은 바이러스 음성으로 확인됐고, 음압병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다. 이중 9명의 상태는 안정적이며 3명의 상태는 불안정하다.

아직 환자들의 치료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난달 4일 이후 메르스 신규 확진자는 28일째 없는 것이기 때문에 관계 당국은 사실상 메르스의 기나긴 터널을 빠져 나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메르스의 종식을 누구보다 기뻐하는 주민들이 있다. 무려 15일동안 마을 전체가 집단으로 격리됐던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 주민이다. 51가구 102명의 주민들은 6월 5일부터 전면 출입이 통제됐다. 이 마을 주민 A(72)씨가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외부와의 접촉이 전면 통제됐었기 때문이다.

이후 순창 장덕마을은 메르스 최대 잠복기인 14일이 지나도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지 않자 6월19일 0시를 기해 격리 조치가 전면 해제됐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마을 전체가 통째로 격리됐던 것은 장덕마을이 유일하다. 메르스 공식 종식을 앞두고 <데일리한국> 기자가 장덕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봤다.

순창터미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버스편을 이용하기 위해 운집해 있었다.

장덕마을은 전북에서도 외지에 속한다. 서울에서 찾아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 위해 먼저 기차로 남원역으로 내려간 뒤 남원터미널로 이동해 버스로 순창터미널까지 갔다. 여기서 읍사무소 방향으로 1시간 가량 걸어가 마을 입구를 만났다. 서울에서 아침에 출발했는데 5시간 걸려 오후에 도착했다. 버스로는 서울에서 순창터미널로 직행할 수 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기차를 택했다.

순창터미널에 도착해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버스편을 이용하기 위해 운집해 있었다. 이젠 이곳도 메르스 공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여기서 장덕마을로 걸어가는 길에는 군데군데 ‘메르스를 극복하자’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아직은 메르스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했다. 이어 마을 어귀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에 가 봤다. 농협 직원이 주민 10여명과 간담회를 갖고 있었다. 역시 메르스로 인해 격리조치 된 탓인지 농산물 수확이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는 게 대부분의 이야기였다. 김모(78) 할머니에게 당시 격리됐을 때의 상황을 물어봤다. 김 할머니는 “당시 2주 넘게 집밖에 나오질 못해 전화로 이웃집이나 친지 안부를 물어야 했다”며 “마을 주변을 경찰들이 감시하며 통제해 장도 보지 못했고 제대로 된 식사도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아픈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가지 못하게 하니까 제 때 치료를 받지못해 증상이 악화한 사람도 있었다”면서 “어떤 주민들은 미리 장을 보지 못해 라면으로만 끼니를 떼웠다고도 한다”고 전했다. 함께 있던 박모(79) 할머니는 “메르스 때문에 힘들었지만 주민들끼리는 더 유대감이 강화된 것 같아 좋았다”면서 “전국에서 다들 안쓰럽게 바라봤겠지만 주민들은 서로가 위로하며 메르스 사태를 이겨내려 애썼다”고 말했다.

마을 내 학교에서는 그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던 수업을 보충하는데 주력했다. 순창중앙초등학교의 경우 집에서 온라인 가정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밀린 과정을 보충했다. 또 이해도 측정을 통해 방과 후 시간을 활용, 밀린 수업을 이어갔다고 한다.

순창군 보건의료원도 몇몇 사람들이 진료를 받으러 오며 이제는 어느정도 한숨을 돌린 듯했다.

인근 순창군 보건의료원도 이제는 어느정도 한숨을 돌린 듯한 분위기였다. 한 관계자는 “당시 의료 인력이 부족했던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면서 “전북도 차원의 지원은 있었지만 장덕마을만 신경쓸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의료진이 모두 밤 새워가며 메르스와 싸워야 했다”고 회고 했다. 이 관계자는 “메르스도 문제였지만 주민들이 보름간 갇혀지내다 보니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할까 여부를 가장 우려했다”면서 “다행히 큰 문제 없이 해결된 것 같아 주민들이 고맙게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장덕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복분자와 블루베리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집단 격리가 보름간 이어진 탓에 생계에 지장을 받게 돼 이곳저곳에서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먼저 한국도로공사는 지난달 마을 특산물인 블루베리 수확 체험에 참여한 뒤 식사 제공 등의 봉사활동을 벌였다. 전북경찰청은 1사1촌 한가족 결연차원에서 이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농촌일손돕기 봉사활동에서는 여경 30명이 나서 블루베리 수확을 도왔다.

취재를 끝난 기자에게 김모(81) 할머니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마을이 알려지고 가수가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고 해서 큰 위로가 됐다”면서 “메르스가 주민들을 힘들게는 했지만 또다른 위안거리도 함께 준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