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진원지로 낙인 찍힌 평택성모병원이 지난 6일부터 다시 문을 열고 환자를 받고 있다.
[데일리한국 곽다혜 인턴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가장 직격탄을 맞은 곳이 경기 평택지역이다. 평택성모병원이 메르스의 진원지로 인식되면서 이 지역의 왕래는 줄었고 병원은 한동안 문을 닫았다. 지역경제는 초토화했고 주민들은 2차, 3차 감염을 우려해 이동 시에는 마스크와 장갑 등으로 중무장해야 했다. 거리 전체가 마치 유령도시 같이 정적만 감돈 지 어언 한달이 됐다. 이제 메르스 공포가 상당 부분 가신 상태이고 평택성모병원도 다시 문을 열고 환자를 받고 있다. 이에 <데일리한국> 기자가 메르스로 인해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평택을 7일 찾았다. 그러나 기자가 본 평택은 여전히 메르스를 상대로 한 힘겨운 마지막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6일부터 재개원한 평택성모병원에는 정문 입구에서부터 가장 위쪽에 한국외식업중앙회 평택시지부가 보낸 ‘평택성모병원 힘내세요’란 글귀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지역경제가 가라앉으면서 가장 타격을 입은 쪽은 다름 아닌 식당 등 외식업체다. 누구보다 이 병원이 메르스를 이겨내기 바라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어 이들이 내건 현수막 글귀에 가슴마저 아려왔다. 이어 재향군인회와 지역 학교 동문 들이 보낸 ‘함께 응원합니다. 파이팅’ ‘병원 여러분 힘내십시오’ 등의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하단 부분에 걸려 있었다.

병원에 들어서자 내원객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하고 손 세정제를 이용해 소독을 실시하는 선별소가 있었지만 역시 인적은 드물었다. 그러다보니 병원 직원들은 한가하게 잡담을 하거나 차를 마시며 제법 여유 있는 근무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환자 대기석에 앉아서 대화를 하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인터넷 서핑 등을 하는 간호사들도 더러 보였다.

일반 병동에 들어서니 내과에는 방문객이 다소 있었다. 원래 평택 성모병원은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가 유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임산부나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아직도 영유아에 대한 감염 우려로 인해 보호자들이 방문을 꺼리고 있는 것이다. 병원 내부는 그간 방문객이 없어서였는지 대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곳곳에 손 소독제를 비치하며 청결에 힘쓰고 있었다. 특히 화장실 내부도 새 건물처럼 깨끗했다.

5월 이전에는 주차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차장이 만차를 이뤘지만 이날은 차가 한 대도 주차돼 있지 않았고 좌측 구석에 응급 구조차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재개원은 했지만 여전히 메르스 발생 병원이란 이미지를 쉽게 씻어내지 못한 듯 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내를 보러온 김모(35)씨는 “아내가 혈압이 떨어져 어제 급하게 입원했다”면서 “평택에 살고 있는데 주변에 큰 병원이 여기밖에 없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메르스 병원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런지 아직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사람이 없어 오히려 조용해서 좋은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 양정모 사무국장은 “6일 하루 264명의 외래환자와 5명이 입원했고 21명이 종합검진을 하러 왔다”면서 “그중 내과가 77명으로 가장 많았고 전체적으로 300명 정도가 내원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양 국장은 “메르스 이전보다야 훨씬 적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방문해서 다소 놀랐다”면서 “6월은 아예 영업을 하지 못해 영업 손실이 60~70%에 이를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3~4개월 정도 지나면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되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금씩 나아질 것이란 희망의 바람이다.

평택역 앞 광장에는 지난 6일부터 재개원한 평택성모병원 등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병원이 부진하면서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약국이다. 평택 성모병원 앞에 위치한 약국의 김모(41) 약사는 “한 달 동안 문을 닫고 있다가 어제 병원 재개원과 함께 다시 영업을 시작해보니 80명 정도가 약을 타 갔다”며 “아직 임산부들과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 그간의 영업 손실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평택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역 광장도 여전히 한산했다. 여기저기에 ‘메르스 완전정복’ ‘의료진 수고많으셨습니다’ 라는 식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지만 아직도 오가는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역 앞 택시 대기소에서도 손님들이 없어 빈차가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택시기사 방모(61)씨는 “메르스로의 여파로 한산했던 사람들이 시내에 보이기 시작한 지는 그나마 3-4일밖에 되지 않았다”며 “평택시 전체가 두려움에 떨어 사람들이 도통 밖으로 돌아다니질 않았고 운행이 되질 않으니 택시 업계 종사자 모두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택시기사 이모(44)씨는 “메르스로 운행이 30~40%가 줄어들어 입금하기도 빠듯하다”며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메르스가 완전히 다 풀리지는 않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점심시간에 근처 한식집에 들어가보니 한 테이블만 손님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내부가 손님으로 꽉 들어차던 곳이다. 식당가 뿐 아니라 편의점, 서점, 휴대폰 가게 등지에서도 직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평택역 바로 앞에 위치한 한 식당 주인 김모씨는 “평택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한 지 20년 정도 됐는데 지금이 IMF 때보다 못하다”며 “손실을 따지자면 2,000만원 이상 피해를 본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평택 시외버스터미널도 한산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조금씩 운행 대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들렸다. 동양고속 평택점 소장은 “전년도 같은 분기에는 90~100%가 넘어가던 실적이 지금은 70%밖에 나오질 않는다”면서 “주말의 경우 정규차 외에 임시차를 추가 운행하곤 했는데 메르스 이후로 주말에 임시차가 나가질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이제는 조금 상황이 나아져서 주말은 좌석의 90%가 점유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미 전국의 유명 관광지나 명승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극장과 공연장에는 메르스로 줄어들었던 인파가 상당부분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프로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 경기장에도 적잖은 관객들이 모여 있는 것을 TV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메르스의 시초로 인식돼온 평택은 오직 지역 주민들의 힘으로만 일어서려 하고 있다. 이들의 힘겨운 투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서울로 가는 차에 올랐다. 버스 터미널에 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현수막의 글귀는 ‘평택시민 여러분. 이제는 희망을 이야기합시다’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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