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 군사분계선 넘나드는 것 자체가 긴장 완화에 도움

북 통치권 하에서 기업 노력만으론 안정적 운영 어려워

5·24조치 따른 제재 효과 거의 소진됐다는 점 인정해야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31일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려면 남한과 북한 양측에서 '정경 분리'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최신혜 인턴기자multi@hankooki.com
[인터뷰=장성준 데일리한국 편집국 부국장 tamgu21@hankooki.com /정리=신수지 기자 sz0106@hankooki.com] 남북 합의에 따라 국민적 기대감을 얻으며 설립된 개성공단에서 2004년 12월 첫 제품이 나온 지 1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최근 임금 인상 문제가 여전히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5·24 대북 제재 조치 이후 신규 투자가 막히는 등 공단 위기설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정기섭(63·에스엔지 대표이사)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31일 여의도에 있는 협회 사무실에서 <데일리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은 현재 남과 북 양측으로부터 통제를 받고 있어서 어려움이 많다"며 "공단이 활성화되려면 남한과 북한 양측에서 '정경 분리'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정 회장은 "북측 통치권 하의 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자체적 노력만으로 정상적 기업 활동을 할 수 없다"면서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정상적이고 협조적인 방향으로 조성·관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5·24 대북 제재 조치의 제재 효과는 이제 거의 소진됐다"면서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5·24조치의 완화 내지는 예외 적용,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 원산지 문제 해결을 통한 해외 판로 개척 등을 제시했다.

난항을 겪던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임금 문제가 지난 5월 22일 타결됐지만 일시적 봉합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임금 문제 해법을 비롯해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원칙적으로 개성공단 사업은 정치적 논리나 관점이 아닌 경제적 논리와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개성공단 사업은 2008년 이후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표류해 왔다. 2013년에는 6개월 간이나 문이 닫히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었고, 최근 또다시 임금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북측 통치권 하의 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자체적인 노력만으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은 명백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방안의 핵심은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정상적이고 협조적인 방향으로 조성해 관리해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5·24조치의 완화 내지는 예외 적용,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 합숙소 건설 및 교통 체계 개선, 생산성 향상, 글로벌 기준과의 간극을 줄이는 제도 개선, 원산지 문제 해결을 통한 해외 판로 개척, 브랜드 개발 및 국내 판로 확대를 통한 부가가치 상승 문제 등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이 무산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

"지난 2013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 당시 협회 비대위원장이 미국 뉴욕을 찾아 반 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요청한 바 있다. 개성공단이 남북관계 경색과 당국 간의 대화 단절로 인해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는데, 반 총장의 방문으로 다시 한 번 국민적 관심 속에서 발전 계기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번에 방문이 무산돼) 상당히 아쉽다."

개성공단이 동북아시아 정세 안정과 군사적 긴장 완화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가.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이 안보의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개성공단이 있음으로 인해 북의 도발을 억제하는데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통행은 군사분계선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자가 교류되는 것 자체가 남북 간 분위기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정기섭 개성공당기업협회 회장은 5·24 대북 제재 조치와 관련해서도 "제재 효과는 거의 소진됐다"며 5·24조치의 완화 내지는 예외 적용,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 원산지 문제 해결을 통한 해외 판로 개척 등으로 관심을 모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최신혜 인턴기자multi@hankooki.com

개성공단 내 외국 기업 유치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는데.

"현재 1단계 분양이 완료되었지만 공장 건축이 완료돼 가동 중인 부지는 43%에 불과한 실정이다. 5·24 조치로 인해 신규 투자 및 기업 진출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인 것은 맞다. 하지만 5·24 조치가 없었더라도 북의 일방적인 운영 및 인력 부족 등 개성공단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들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또한 사실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진 기업 경영 환경 등 현존하는 개성공단의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외국 기업들의 입주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개성공단기업협회가 지난 22일 개성공단상회 직영 1호점을 오픈하고, 서울 은평구와 경남 창원시에 대리점도 열었다. 개성공단 생산 제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인가.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124개 기업의 힘과 능력으로는 힘에 부치는 상태이지만, 개성공단상회 운영 등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개성공단상회는 내달 15일 직영 1호점 공식 출범식을 개최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매장들을 확대할 계획이다. 2016년까지 30개 매장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단은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일부 기업들을 중심으로 판매하고, 공동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검토하는 등 국민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개성공단 활성화와 남북 경협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5·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5·24 조치는 한마디로 공단의 생존은 허용하되 공단 자체에 대한 신규 투자는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기업이 성장과 발전을 하려면 투자는 필연적이다. 그런데도 투자가 금지된 것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몰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5·24 조치는 천안함과 관련해 북을 제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제 그 제재 효과는 거의 소진됐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북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해 남과 북에 바라는 점은.

"미국 애플사의 휴대폰을 제조하는 폭스콘은 대만계 기업이지만 중국 내 최대 제조업체다. 이처럼 대만과 중국의 경우 경제적으로는 이미 통합된 영역을 갖고 있다. 북한의 경제를 돕기 위해서 뿐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북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경제 성장을 위한 새로운 성장 모티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개성공단 문제에서는 정경 분리와 민관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안타깝다. 정부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며 경협 사업도 관리하다 보니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정부가 민간이 운영하는 사업은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주면 좋겠다. 정경 분리 문제는 북 당국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정치 문제로 인식할 경우 해결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북한이 경제가 향상되는 것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러한 부분들을 구분해 대처해 주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