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중독적 사고
'소맥' 마시는 문화 확산이 폭탄주 음주 비율 높여
음주 문화 그대로 보고 자라며 답습하는 아이들
  •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중독적 사고는 보이지 않는 창살과 같은 거예요. 알코올 중독자들은 술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핑계로 중독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고, 그 내면 심리는 자신도 볼 수 없고 주변 사람들도 인식하기 어려워요."



'술 없이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단번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세상을 살며 술을 끊을 수 없는 이유는 수두룩하고, 그러한 이유를 들어 우리는 서로에게 술잔을 권한다. 각박한 세상 맨정신으로 견딜 수가 없어서,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상이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까, 사업을 위해, 사람과 쉽게 친해질 수 있어서, 술은 쉽고 빠르게 기분을 좋게 만드니까,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등 아직 나열하지 못한 수많은 이유가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술잔을 붙들게 만든다.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술을 마실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 바로 중독적 사고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을 만나는 박차실 다사랑중앙병원 상담실장은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에게 '술을 왜 마시는가?'라는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이미 그들은 중독적 사고에 갇혀 술을 마셔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보통은 자신의 아픈 과거부터 시작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부모의 폭력이라든가 배우자의 외도 같은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다. 다음은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로 이어진다.

그러나 박 실장은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의 문제를 놓고 술을 마실 때 주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약해져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결국은 술을 계속 마시도록 부추기는 꼴이 되는 것이고 알코올 중독이 환경을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이처럼 중독적 사고에 갇혀 술을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술잔을 놓지 못하지만 아직 정상인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전문가들은 어디까지가 중독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확실한 기준은 없다고 말한다. 알코올 중독은 서서히 치닫는 병이고 그 과정은 마치 스펙트럼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단계에 와 있는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에서 적당량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음주'의 기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 사회에는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시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그것이 일반적인 사회 분위기다 보니 본인이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는 인식을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2013년 우리 국민의 1회 평균 음주량은 맥주 1잔을 기준으로 남자 6.5잔 여자 4.7잔, 소주는 남자 7.8잔 여자 4.5잔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하는 위험 음주량 남자 5.6잔, 여자 2.8잔 보다 훨씬 많다. 직장인들은 회식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잔을 돌린다거나 술을 많이 마시면 마치 일을 잘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음주 문화 때문에 적정 음주량을 지키기 어렵다고 말한다.

특히 소주와 맥주를 섞는 '소맥'을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폭탄주 음주 비율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2013년 기준 음주 경험자 중에서 '소맥'이나 양주 폭탄주를 마신 경험이 있는 사람은 55.8%이다. 2012년 32.2%에 비해 70% 이상 증가한 수치다.



  • 사진=이민형 기자
1차, 2차, 3차까지 술자리가 이어지고 먼저 자리를 뜨면 사회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잘못된 음주 문화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전체 음주 경험자 중에서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자는 소주 8잔 이상, 여자는 5잔 이상 섭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82.5%였다. 일각에서는 직장인들의 음주 문화가 나아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2012년 68.2%에 비해서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전반적으로 사회적 음주의 기준은 높고, 주로 폭탄주를 마시고, 오랜 시간 술자리를 가지는 한국의 사회적 풍토가 사람들을 알코올 중독 상태로 밀어 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술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음주 문화를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자라는 아이들 때문이다. 음주를 처음 시작하는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13년 기준 최초 음주 연령은 평균 19.7세로 2012년 20.6세에서 낮아졌다.

  •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알코올 중독자 자녀들(COAoChildren Of Alcoholics)은 가정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에는 술을 싫어했지만 상당수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만다. 그들은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부딪쳤고, 그렇게 술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됐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불안과 우울, 분노를 안고 사는 알코올 중독자 자녀들이 사회 속에서 방치하면 성인이 돼서 아코아(ACOAoAdult Children Of Alcoholics) 상태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아코아들은 자신감이 없고 어릴 적의 정서 불안과 피해 의식을 성인이 돼서도 그대로 간직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 2세들을 말한다.

외국에서는 사전에 알라틴(Alateen)을 통해 알코올 중독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알라틴이란 알코올 중독 부모와 같이 사는 10대 자녀들의 자조 모임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본인 혼자만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알라틴은 부모의 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의 중독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병이고, 본인이 문제를 해결하거 부모의 삶을 대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부모의 중독 문제를 본인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상황이고, 아주 심한 폭력이 행해지지 않는 이상 사회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국내 알라틴의 정식 공지된 모임은 전국에 6개뿐이고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코아들은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 뭔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른다"면서 "따지고 보면 알코올 중독자들의 자녀들은 가장 많이 중독 위험에 노출된 상황인데 미리 상담 및 심리 치료를 통해 술에 대한 경각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다른 전문가는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아이들이 부모의 중독 문제에 대해 공동 의존(co-dependency)에 빠지는 것"이라며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부모의 중독 문제를 겪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문제는 너희 책임이 아니고, 너희가 낫게 할 수도 없으며, 부모의 삶과 상관없이 너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라도 주변에서 건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 미카엘 엥스트룀 소설 <멀어도 얼어도 비틀거려도> 中에서


사회 전체에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어쩌면 사회 구성원 전체가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는 알코올 문제 관련 법안이나 정책 예산을 책정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코올 문제 시설 관계자들은 "알코올 중독 진단만으로 정신장애인 등록이 안 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면서 "알코올 중독자 지원에 대한 법적인 근거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법이고, 실질적으로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알코올 중독은 단번에 치료되는 병이 아니다. 단순히 중독자들을 격리시키고 보는 병원의 강제입원 치료를 넘어 지역사회 기반의 복귀시설에서 진정한 회복을 도울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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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5/03/13 14:07:31 수정시간 : 2015/03/13 1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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