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은 가정과 사회에 잠재된 폭탄

관련 기관들, 예산 및 전문 인력 부족에 시달려

지역발전특별회계 재원인 주세… 전문가들 "알코올 관련 정책에 쓰여야"

■ 어느 알코올 중독자 아내에게 온 메일

알코올 중독 시리즈 기사를 연재하면서 얼마 전 '남편의 알코올 중독 문제로 삶을 포기하려고 했어요'라는 제목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을 둔 류소정(43·가명) 씨가 알코올 중독에 이른 남편으로 인해 고충을 겪었던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만나자는 제의에 한사코 거절하던 그는 자신의 불우한 가정사를 밝혀야 또 다른 피해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자의 설득에 어렵게 약속에 응했다. 류 씨는 만나자마자 눈물부터 쏟아냈다. 그는 남편 때문에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어린 두 딸이 생각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말하고는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류 씨는 여느 가정과 같이 직장인 남편, 딸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러나 남편이 회사에서 팀장을 맡으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회식과 직원 단합 등을 위한 술자리가 늘어나면서 남편은 거의 매일 술을 마셔댔다. 1년에 거의 320일가량을 술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오곤 했다. 류 씨의 걱정은 커져갔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회사일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일 뿐"이라고 둘러대며 되레 류 씨를 나무랐다. 그러나 점점 술자리 횟수가 늘더니 남편은 만취 상태로 새벽에 들어오는 것을 일상화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 "신혼 때 한없이 다정했던 남편, 이젠 한숨만 쉬어도 때려요"

술 문제로 부부간 말다툼이 반복됐고 급기야 남편은 류 씨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한없이 다정하기만 했던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은 간 곳 없다. 결혼 8년 만에 작은 한숨 소리에도 발끈하는 '폭력 남편'이 된 것이다. 남편은 갓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들 앞에서도 류 씨에게 폭력을 가할 정도가 됐다. 류 씨는 밖에서 남편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떨린다고 한다. 놀고 있던 아이들도 아빠가 들어오면 얼른 자는 척하기 일쑤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류 씨는 그러는 동안에도 단 한 번도 남편의 알코올 중독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류 씨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개념 자체를 자세히 몰랐다"며 "주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 같다고 지적하기 시작하면서 문제를 인식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몇 년 전부터 류 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아무 이유 없이 불안 증세를 보이고 호흡이 빨라지다 손발이 마비되는 과호흡증후군으로 몇 차례 응급차에 실려간 적도 있다. 여기에 아이들마저 심각한 정서 장애를 보여 지금은 놀이 치료 클리닉에 보내는 상황이다.

아직도 류 씨는 "술 때문에 남편이 괴물이 됐다"면서 "술만 아니면 남편은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류 씨는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남편을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며 "같이 병원에 가자고 하면 정신병자 취급한다고 소리를 높일까봐 무서웠다"고 전했다. 그럴수록 남편의 증세는 심각해져 갔다. 류 씨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문제를 방관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혼자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찾았고 여기서 해결책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방문한 류 씨는 본인이 지켜본 남편의 음주 습관을 토대로 '한국형 알코올 사용장애 선별검사'(AUDIT-K)를 받아 남편의 중독 사실을 확인했다. AUDIT-K에서 남자의 경우 10~19점을 받으면 위험 음주 단계이고 20점 이상을 받으면 알코올 중독인데 류 씨 남편의 경우 20점보다도 한참 높은 점수를 받았다. 류 씨는 매주 센터에서 진행되는 가족교육에 참석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더불어 중독 검사 결과를 들이대며 조금씩 남편 설득에도 나서고 있다. 처음에 반발하던 남편도 조금씩 수긍하며 류 씨의 말을 듣는 분위기라고 한다. 조만간 남편을 센터에 데려갈 계획인데, 이것만 해도 류 씨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중독자 가족. 사진=이민형 기자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알코올을 비롯한 마약, 도박, 인터넷 등 각종 중독자나 그의 가족들에게 상담 및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보건복지부 지정 기관이다. 상담은 무료로 이뤄진다. 이는 알코올 중독 문제에 조기에 개입해 선별하는 역할을 하며 필요에 따라 병원 및 사회복귀시설에 연결하기도 한다.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기존에 알코올상담센터라는 이름으로 운영돼 오다 지난해 개편됐다. 아직까지는 90% 이상이 알코올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찾은 경우다.

■ 개인뿐 아니라 가족의 삶도 갉아먹는 알코올 중독

김용진 구로중독관리통합센터장. 사진=이민형 기자

김용진 구로중독관리통합센터장은 "알코올 중독은 가족 병"이라면서 "알코올 중독이 개인뿐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의 삶도 갉아먹는다"고 강조한다. 김 센터장은 "가족 내 알코올 중독자가 있으면 그의 만행에 다른 가족이 심리적으로 익숙해지는 '공동의존증'(co-dependency)에 빠지게 돼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어린 자녀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알코올 중독자 자신이 치료 받을 의지가 없다면 가족이라도 상담을 받아 문제를 대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사진=이민형 기자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는 보통 3~4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등록된 회원들을 관리한다. 중독자 본인이 직접 방문한 경우 상담을 통해 먼저 의지를 파악한 뒤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단주 동기를 강화한다. 가족이 찾아온 경우에는 주로 교육이나 상담 위주로 이뤄진다. 중독의 특성이나 폐해에 대한 가족들의 이해를 높여 중독자를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요청에 따라 가정 방문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인력이 충분한 일부 센터에서만 가능하다. 서울에는 현재 도봉, 노원, 강북, 구로에 4개 센터가 있고 전국에 50개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국내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사진=이민형 기자

각 센터에 따라 다르지만 구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의 경우 한 달에 300여 명이 상담 문의를 하고 200여 명의 회원이 관리된다. 김용진 구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은 "우리나라 음주 문화는 워낙 관대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술을 마셔도 웬만해서는 알코올 중독을 의심하지도 않는다"면서 "중독은 아주 심각한 경우에 치료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빈번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그렇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으로 가기 이전에 사회가 조기에 선별하고 개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알코올 중독은 사회 속 잠재된 폭탄이다

사진=이민형 기자

조태현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질서과 경사는 "사실 음주 자체를 각종 범죄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그만큼 범죄와 음주의 상관 관계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실제 경찰 조사에 따르면 2009년 전체 범죄자 127만8,802명 중에서 21만679명, 즉 16.9%가 주취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20조990억 원으로 추정됐다. 이 중에서 음주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7조8,050억 원으로 가장 비중이 높았고, 음주 관련 질병과 사고로 조기 사망할 경우 발생하는 미래 소득 손실액이 5조4,111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그 밖에 음주 관련 질병의 의료비, 숙취 해소용 음료 구입비, 음주 관련 사고의 재산 피해액 등도 포함됐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의 수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유독 술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고질병은 음주운전이다. 매년 2만5,000여 건 이상의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하고, 사망자만 700명에 달한다.

지난 3일 경북 구미시에서 만취한 운전자가 외제차를 몰고 가다 앞서 가던 경차를 들이받아 그 안에 타고 있던 여고생 3명과 음악학원 교사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당시 피해 차량은 일순간 화염에 휩싸였고 정신을 잃은 피해자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 임모(38)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54%로 만취상태였다. 임 씨는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 정신을 잃었다"고 진술했다. 사진=경북지방경찰청 제공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120만2,734명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하루 평균 732명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것이다. 이들 가운데 50만2,952명은 이전에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경험이 있었고, 19만455명은 상습적인 적발자로 이들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과음으로 인한 사망자 수도 세계 각국에 비해 상위권이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단순 음주로 인한 사망자는 2만,2000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8.7%에 달한다. 이처럼 음주는 자신에 대한 사망 원인은 물론 각종 범죄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 앞. 사진=이민형 기자

이에 서울시와 경찰은 2012년 7월 별도의 '주취자 원스톱 응급의료센터'(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마련했다. 범죄 노출 대상 및 주체가 될 수 있는 만취자나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알코올 중독자들을 조기 선별해 보호 조치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국립의료원, 서울의료원, 보라매병원 등 3개 병원에는 2인 3조의 상주경찰이 배치돼 있다.

주취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작성하게 되는 체크리스트. 사진=이민형 기자

경찰은 취객을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로 이송하기에 앞서 의료진이 제시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한다. 취객의 증상을 경증, 중증, 의식 손실로 구분해 응급의료센터로 이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주취자 응급의료센터가 개소된 이후 2012년 2,225명, 2013년 4,204명, 2014년 4,140명 올해 1월까지 총 1만653명의 주취자가 거쳐갔다. 하루 평균 3~4명이 주취자 응급센터를 찾은 것이다.

기자가 서울의 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에 찾아간 지난 6일 오후 9시 45분 술에 취한 남성 2명이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섰다. 이름이 뭐냐고 묻자 "가슴이 아프다"라고 통증을 호소하더니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는 질문에는 자신의 집이 상도동이라는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다. 계속된 질문에 남자는 횡설수설했고 결국 한동안 센터 내에 머무르다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갔다. 이렇게 나간 주취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수일 내 다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찾아오는 상습 주취자라고 한다.

센터 관계자들은 "예산이나 전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에서 중독자들을 선별하고 다른 기관으로 인계하는 과정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2014년 5월부터는 주취자를 병원 및 센터, 사회복귀시설로 연결해 중독 관리 서비스를 받도록 돕는 코디네이터도 배치했지만 여전히 치료를 위해 다른 기관으로 유입되는 주취자 수는 적었다. 김용진 구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은 "병원 및 기관, 사회복귀시설의 연계시스템도 약하고 전문가들도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서울의 경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외곽 쪽에만 위치해 있고 절대적인 수가 모자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와 관련해 책정한 예산은 2,000여만 원 수준이다.

사진=최신혜 인턴기자 multimedia@hankooki.com

■ 주세, 도대체 어디에 쓰이기에 예산이 부족할까?

전문가들은 "정부가 걷는 주세를 건강한 음주 문화를 정착시키고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것에 보다 많이 사용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주세는 기획재정부로 넘어가 지역발전특별회계의 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역발전특별회계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된 예산이다. 기획재정부 예산과 관계자는 "지역발전특별회계는 사업에 특별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도로라든가, 목림, 환경 등에 주로 사용한다"고 전했다. 주세가 목적세가 아니다 보니 직접적인 관련 예산에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등 가정 및 사회에서 알코올 문제를 조기에 선별해 개입할 수 있는 기관들은 여전히 인력과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 당국이 알코올 중독자와 그 예비 주취자들을 제대로 선별 관리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사회는 계속 알코올 중독에 신음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로 인해 연간 20조 원이 넘는 사회적 손실은 계속 쌓여만 가고 있다.

◆ 다음 뉴스펀딩(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404)에서도 기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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