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환경에 들어온 알코올 중독자 5% 정도밖에 되지 않아
전문가 "본인 스스로 중독 인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
주변 사람에게 음주 문제 지적 받았다면 점검 필요

[데일리한국 이민형 기자] 20대 후반 때만 해도 한석훈(54·가명)씨는 소주 반 잔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술에 있어서는 숙맥이었다. 제사 때 음복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눈곱만큼의 술을 마셨다가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설쳤던 기억도 생생하다. 애주가들이 바글거리는 미술대학을 다닐 때에도 술 마시는 것이 괴로워 동기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이처럼 젊은 시절 술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한 씨이지만 지금은 여덟 차례나 병원 입·퇴원을 반복한 알코올 중독자이다.

2005년 처음 알코올 중독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한 씨는 아직까지도 술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한국 사회는 술자리가 많아 술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인 수명이 음주로 인해 11개월 가량 단축된다”면서 “한국인 건강을 갉아먹는 최대 주범은 술”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김진욱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사회 생활을 시작할 당시 한 씨는 촉망 받는 직장인이었다. 일 욕심이 많아 한 달에 쉬는 날이 겨우 두 번 될까 싶은 지독한 일 중독자였다. 매사에 철두철미해 자연히 성과도 좋았다. 그는 경영자 눈에 띄어 동기들보다 승진이 빨랐고, 입사 6년 만에 업계 최대 회사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직위가 올라가고 주변의 기대가 커지면서 그의 스트레스도 늘어났다. 마음이 여린 탓인지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날이 적지 않았다. 아내가 수면제를 권유했지만 별반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맥주를 마셔볼까 생각했다. 워낙 술을 못했던 만큼 잠을 청하는 데에는 술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씨는 맥주 반 캔을 먼저 시도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바로 곯아떨어져 오랜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술에 대한 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됐다. 맥주 반 캔으로 잠을 청하다 차츰 한 모금씩 늘었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한 캔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한씨는 점심 때 반주하기를 즐기는 직장 상사를 따라 소주도 한두 잔을 마시기 시작했다. 쓰기만 했던 소주였는데 젊은 시절과는 확실히 맛이 달랐다. 반 잔이 한 잔으로 한 잔이 두 잔으로, 술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한 씨에게 술은 낮에는 업무의 연장선상이었고, 밤에는 지친 몸을 달래는 ‘명약’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했던 한 씨는 낮에는 직장 동료들과 업무 관계로, 밤에도 비즈니스를 위해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또 술 약속이 없는 날에는 잠자리에 들기 위한 수면제가 됐다. 이 같은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한씨는 직장에서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비주류’(술을 못하는 사람)로 통했던 한씨는 그사이 주량이 일취월장했고, 어느 틈에 업계에서는 술꾼으로 정평이 났다.

술과 함께 지내는 날이 이어지다 보니 쉬는 날에도 스스로 술을 찾았다. 항상 술이 없으면 어딘가 불안하고 허전했다. 직위가 올라가면서 긴장감이 풀어졌을까, 아니면 그간 나이는 많아졌는데 음주량은 오히려 늘어서일까. 한씨는 숙취로 다음날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일벌레’였던 한씨에게 이전에는 있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던 상황이었다. 업무 처리가 원활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자 한씨는 또다시 고민이 커졌고, 역시 술로 위안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어김 없이 숙취로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날의 연속이었다.

결국 한씨는 자제력을 잃었다. 회사 내에서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도 화를 냈고 동료나 부하 직원과 의견 다툼이 잦았다. 회사 내에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는 해결하려 들기보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그때 처음 한씨는 알코올 중독 문제를 인식했고, 치료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어느 정도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면 다시 술에 손을 댔고,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병원에 들어가기를 여덟 번. 마지막 입원 전에는 2,000만원가량 들어 새로 인테리어를 한 사무실을 골프채로 때려 부숴 구급차(EMS)를 타고 묶인 채 병원에 왔다. 그는 “머리로는 술을 끊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니 답답하다”며 “술을 끊어야 살 수 있는 것을 알지만 술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심정이 지금 나의 자화상”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주량을 묻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질문이 없다. 중독자들은 술을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절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하나 같이 과거 자신이 술에 중독된 것을 상상도 못했다고 말한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알코올 중독자는 타고난 술꾼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씨의 사례처럼 애주가는 아니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또는 특별한 계기로 술을 접하기 시작해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도 더러 있다. 최근 ‘힐링캠프’(SBS)에 출연해 과거 알코올 중독을 앓았다고 고백한 가수 윤상씨도 비슷한 경우다. 윤씨는 “나는 술을 잘 먹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교 1, 2학년 때는 소주 한두 잔만 마셔도 머리가 아프고 그 자리에 동석하기가 힘들 정도로 술을 못했는데 어느 날 위스키를 마신 후부터 그게 몸에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의존하게 됐다” 고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 생활을 위해 낮과 밤을 바꿔 살며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윤씨에게 ‘술은 곧 잠’이었다고 한다. 주로 밤에 이뤄지는 음악 작업 때문에 삶이 불규칙했고,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음날 스케줄을 맞춘다는 핑계로 자기 전 혼자 한 잔씩 마시던 술이 20년 넘도록 이어졌다. 그런데도 윤씨 본인은 중독이란 것을 느끼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을 걱정했지만 본인만큼은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치부하곤 했다.

윤씨는 “알코올 의존에 대해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잘 마시는 친구들을 보면 낮술도 마시는데 나는 절대 낮술 같은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씨는 후에 “매일 밤 자기 전에 꼭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게 알코올 의존증이란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윤씨의 경우처럼 알코올 중독 치료에서 자신에게 병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단계가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이무형 다사랑중앙병원 원장은 “알코올 중독은 증세가 심각해질수록 본인이 중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어진다”면서 “초기 환자보다 중기나 말기 환자가 ‘마음만 먹으면 술을 끊을 수 있다’고 고집해 치료 받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짙고, 뒤늦게 인정할 경우는 혼자 힘으로 극복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2011년 기준 국내 알코올 중독자 155만 명 중에서 국민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7만8,357명으로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치료 환경에 들어와 있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터무니없이 적은 것에 대해 관계자들은 “본인이 중독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주로 잘못된 편견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느 여성 알코올 중독자는 “술 취해 길거리에 잠든 주정뱅이나 노숙자들을 알코올 중독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냐”며 “처음에 저를 알코올 중독자 취급을 하는 가족들에게 화가 났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전문가의 정의는 다르다. 이무형 원장은 “평소 술을 3잔 이상 마시고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음주 문제를 지적 받은 적이 있다거나, 신체적으로 자주 피로하거나 우울과 불안을 느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있다면 전문가를 만나 자신의 음주 문제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술에 대해 유독 관대한 한국 사회 분위기가 알코올 중독의 초기 치료를 방해하기도 한다. 사회적 음주로 용인되는 기준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아 병적 음주에 대해서도 ‘사회생활을 위한 음주’라고 단정하거나 ‘애주가일 뿐’이라고 넘어가는 일이 실제 비일비재하다. 물론 술로 인해 뇌가 손상돼 알코올 중독에 이를 수 있는 국민은 전체의 7% 정도로 제한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무형 원장은 “음주자 10명 중에 1명은 중독자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 사회는 술에 대해 워낙 관대하다 보니까 초기의 환자들은 병을 인지하지 못하고, 거의 중기나 말기를 넘어가 ‘누가 봐도 저 사람에겐 술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정도로 병을 키워서 오는 경향이 있다”면서 “중기로 넘어가면 이미 술로 인해 뇌가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에 병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해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고 경고했다.

이무형 원장.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전문가들은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지 않거나 실수하지 않으면 본인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주관적 판단이 아닌 객관적인 규정에 따라 바라봐야 한다”면서 한국 사회의 절대적인 음주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무형 원장은 “주량을 말할 때 ‘몇 병’이라고 말하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면서 “보통 각 술에 해당하는 잔으로 3잔 이상을 넘어가면 과음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알코올 섭취량이 40g(소주 4잔) 이상인 남성과 20g(소주 2잔)을 넘어서는 여성을 위험 음주자(hazardous drinker)로 분류하고 있다.

알코올 남용은 음주 조절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한다면 나아질 수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알코올 중독은 크게 의존(dependence)과 남용(abuse)로 나뉜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알코올 중독은 의존을 의미하는데, 의존은 술에 대한 인간의 화학적 반응이라면 남용은 물리적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기능은 떨어지지 않지만 음주 횟수가 많아진다든지, 술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마신다면 남용이다. 남용은 음주 조절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한다면 나아질 수 있다. 문제는 의존이다. 의존의 경우는 뇌에서 술을 조절해 마실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술을 마시게 되고, 마실 수밖에 없다는 합리화를 하게 된다. 술에 대한 조절 능력은 많이 먹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알코올 의존을 판단하는 검사는 NAST·AUDIT·CAGE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이무형 원장이 말하는 의학적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 원장은 “만약 2개 이상 문항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알코올 중독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1. 술에 대한 내성이 존재하는가? 내성은 동일한 효과를 내기 위해 양이 증가하는 현상이나, 역으로 동일한 양을 먹었을 때 효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알코올도 내성이 있다. 과거 반 병을 먹었던 사람이 한 병으로 늘고, 한 병이 늘면 두 병이 되면 의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술은 마실수록 는다’는 통념이 있지만 기준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면 안 된다.

2. 금단 증상이 나타나는가? 알코올에 淪?금단 증상을 보통 손 떨림 정도로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금단 증상도 있다. 바로 술을 다시 마시게 되는 주기성이다. 처음 날 때부터 젖병에 술을 마시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한 번 술병이 나면 다시는 안 먹겠다고 후회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신다. 처음에는 주말만 마시던 사람이 3일에 한 번, 격일, 매일 밤마다, 점심과 저녁으로 주기성이 짧아진다면 중독이 의심된다. 특히 아침 해장술을 먹어야 속이 편해지는 경향이 있다면 이미 뇌가 음주 상태를 정상으로 인식하는 중기로 넘어간 상태다.)

3. 술에 대한 욕구나 술의 해독 과정이 점차 길어지고 있지 않은가? 일반인과 달리 숙취가 술을 갈망하는 식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시간이 길어지고 반복될수록 알코올 중독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4. 주변 사람들이 먹지 말라고 만류하는데 술을 마시고 있지는 않은가? 특히 우리나라는 술에 대해 관대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술 끊으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만약 이런 말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자주 듣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5. 사회적 기능이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평소 업무량에 차질이 생기거나 대인 관계에 자신감이 없어질 때, 이런 문제를 술의 힘을 빌어 해결하려고 든다면 알코올 중독일 가능성이 있다.

알코올 중독 환자의 뇌는 정상적인 뇌에 비해 많이 위축돼 있다. 뇌의 위축은 기억력 저하와 성격의 변화 등을 초래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닌 명백한 질병, 알코올 중독

전문가들과 중독된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은 질병”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시는지에 대한 주관적 기준이 아니라 술에 대한 뇌의 조절 능력이 얼만큼 상실됐는지에 대한 객관적 지표로 결정된 질병이라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은 개인의 판단이 아닌, 환자가 살아온 삶이나 술이 미치는 영향, 주변 사람의 평가까지 포괄한다. 전문가들은 “알코올 중독이 진행적 질병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처음부터 증세가 심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 음주나 과음도 구분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되다가 서서히 중독으로 진행되는 편이다.

알코올에 취약한 사람 따로 있을까?

알코올 중독은 유전적 영향이 크다. 때문에 가족력이 있는 사람을 술을 조심해서 마셔야 한다. 그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학계에서는 알코올 중독과 유전자의 관련이 깊다는 논문이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다. 이무형 원장은 “어린 시절 부모의 알코올 문제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도 사회생활을 통해 술을 접하게 되면서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알코올 중독은 유전적 요인을 60%, 사회 환경적 요인을 40%로 본다”면서 “3대에 걸친 직계가족 중에서 알코올 문제를 앓은 사람이 있다면 술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혼자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지 않고 술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위험하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취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는 것을 귀찮아하고 밥을 먹고 술을 먹는 것은 취기가 떨어질 수 있어 싫어한다. 술을 마시면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아진다거나 우울한 감정이나 수면에 대한 어려움을 술로 해결하려는 사람도 중독과 관계가 있다.

사진=김진욱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술이 삶의 진정제이자 윤활제이고, 문화와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일상의 권태와 허무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순간, 알싸한 소주 한 잔 만한 구원이 어디 있을까. 술은 출구가 없는 처지에 놓인 누군가의 돌파구면서, '썸남썸녀'의 밀도를 높여주는 촉매제이자, 질식할 것 같은 세상에 힘껏 숨을 불어 넣어주는 인공호흡기 역할을 한다.

문학과 예술의 발전에 있어서도 술의 공헌은 실로 지대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뭉크는 산책을 하다 불현듯 자신을 덮친 불안과 공포를 화폭에 옮겨 ‘절규’를 완성했고, 고흐의 ‘열네 송이의 해바라기’는 술에 중독된 고흐가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黃視症)을 앓으며 탄생했다는 비화가 있다. 캔버스를 눕혀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뿌리는 액션 페인팅을 창시한 잭슨 폴록 역시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처음 사전에 올라온 것은 1858년이다. 보들레르가 <인공낙원> 초판을 출간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반복적으로 술을 마시는 현상이 퍼지고 있었는데, 보들레르 작품 이후로 ‘알코올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알코올 중독은 그저 술 좋아하는 사람들의 식탐 정도로 여겨졌다. 언어가 사회 현상을 지배하듯이 알코올 중독이 사전에 등재된 이후 에드가 앨런 포, 제임스 조이스, 스콧 피츠제럴드, 찰스 부코스키, 에밀 졸라 등 소설가들 사이에서 알코올 중독은 만연해 갔다.

정말 술은 인간의 삶에 진정제와 윤활제 역할을 하고, 문화와 예술의 원동력이 될까? 전문가 말에 따르면 오히려 술이 뇌에서 하는 일은 그 반대다. 이무형 원장은 “술이 피로감과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순기능을 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다”라면서 “반복적인 음주는 뇌를 손상시켜 말하는 능력과 기억력, 주의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제력과 판단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고 설명한다. 이 원장은 “무엇보다 술은 긍정적인 기억을 축소시키고 부정적인 기억을 확대시켜 옛날에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현재의 삶을 부정적이고 우울한 상태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술과 관련된 교통사고로 5,000여 명이 사망하는 것도 바로 이런 술의 부작용 때문이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흔히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술은 마신다고 말한다. 술과 스트레스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이무형 원장은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열등감이나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면서 내면의 스트레스가 오히려 많아진다”고 조언한다. 술을 마시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 욱하는 성격으로 변하고 주변사람들과 관계도 어려워져 결과적으로는 외로워지기 쉽다. 폭력적 성향은 가정폭력이나 음주운전 등 사회 문제로 이어져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애주가들은 술을 찬양하며 보들레르의 시를 자주 인용한다. “시간에 학대 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쉬지 말고 취하라!”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애주가들의 인용은 틀렸다. 보들레르는 단순히 술에 취하라고 노래하지도 않았거니와 취한 상태를 고집하는 중독(addiction)의 어원은 아이러니하게도 addicere, ‘노예가 되다’라는 의미이다. 고대 로마 법정에서는 자신의 권리나 의지를 상실하고 속박된 노예를 ‘중독자’라고 불렀는데, 보들레르의 노래와 달리 술에 취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반드시 술에 의존해야 살 수 있는 흡사 술의 노예와 같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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