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대아파트 측, 계약만료 이유로 경비원들에게만 해고 예고 통보
용역업체도 경비원 전원 해고 방침… 경비원들 "보복성 해고" 반발
입주자대표회의 "아직 결정된 사항 아니다… 내달 5일 최종 결정"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분신 자살을 기도해 한 달여 만에 사망한 이 아파트 경비노동자 이모(53)씨의 노제를 열고 있다. (이혜영 기자)
'경비원 분신 사망' 사건이 발생한 압구정 신현대아파트가 경비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원 78명이 모두 해고 위기에 처했다. 경비원들에 따르면 신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이달 초 회의를 갖고 경비 용역업체를 변경하기로 했다. 이후 경비원들에게 '해고 예고 통보장'을 보내고 용역업체 변경 공고문도 게시했다. 입주자대표회의에 따르면 이 같은 조치는 용역업체와의 계약이 다음달 31일 만료하는 데 따른 것이다.

계약 만료가 이유이기 때문에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에 법적 하자는 없다. 그러나 현재 용역업체가 신현대아파트와 15년 이상 계약을 갱신해왔던 만큼 계약 해지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일부 경비원은 "경비원 분신 사건으로 아파트 이미지가 실추된 데 따른 보복성 해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입주자대표회의는 용역업체 직원 중 경비원들에게만 해고 예고 통보장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경비원들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토로하는가 하면 해고를 예고한 입주자대표회의를 원망하는 이도 있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경비원 해고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면서 계속 고용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일부 경비원은 "민주노총이 사태를 지나치게 시끄럽게 만든 탓"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비원 A씨는 24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언론 보도가 약간 잘못됐다고 했다. 그는 "(언론은) 아파트 측이 우리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만 보도하고 있지만 우릴 고용한 용역업체(한국주택시설관리)도 해고 통보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비롯한 경비원 몇이 용역업체와 (해고 문제를 놓고) 회의를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경비원 B씨는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가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는 "(경비원들이) 아파트 측으로부터 지난 19~20일 최종 근무날짜가 다음달 31일 오후 6시까지라는 해고 예고 통보장을 받았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무 자르듯 우리를 잘랐다"고 했다.

B씨는 계약 해지가 되면 당장 일할 곳이 없어 생계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업급여로 일단 생계는 유지하고 다른 곳을 알아봐야죠. 직업소개소를 가든지 인터넷을 뒤지든지 해서 먹고살 길을 찾아야죠.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돈 없고 백 없고 힘 없고 학연ㆍ지연 없으면 이렇게 길거리에 나앉나 봅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지금 심정으론 국회 앞에서 분신이라도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B씨는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해고 예고 통보장을 보낸) 입주자대표회의 측에서 일단 다음달 5일까지 기다리라고 해서 지금 다른 곳을 알아보지 않고 있다"면서 "아파트와도 재계약되고 용역업체에서도 우릴 해고하지 않을 거란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등이 그런 의견(용역업체 변경안)을 내놓기는 했으나 내달 초 열리는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확정돼야 할 사항"이라며 "정말로 용역 업체를 바꾸고 경비원 등을 해고하려 했다면 이미 새 업체 선정 작업을 시작했겠지만 전혀 결정되거나 진행된 것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C씨는 해고 예고 통보장을 받은 당시를 기자에게 담담히 설명했다. "평소처럼 근무하고 있는 날이었어요. 그런데 소장이 교육이 있다면서 경비원 전원을 집합시켰습니다. 그런데 대뜸 해고 예고 통보장을 내밀며 서명하라고 했어요. 이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긴 해요. 지난해에도 해고 예고 통보장에 서명한 적이 있는데 그냥 그렇게 지나갔어요. 그런데 우리 동료가 죽고 사회적 문제와도 맞물리다 보니 언론에서 시끌벅적하게 보도하고 있는 것뿐이죠. 지난해 겪은 일이라고 해도 그걸 받는 순간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여기서 잘리면 어딜 가야 할지…."

C씨는 "올해는 이상하게도 경비원 78명만 해고 예고 통보장을 받았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보일러실ㆍ전기실 기술자, 조경사, 사무실 여직원을 포함해 용역업체에 총 108명이 고용돼 있는데 해고 예고 통보장은 경비원들만 받았다"면서 "왜 경비원만 해고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우리에게만 이러니 정말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는 2년 동안 경비업무를 하며 힘든 일도 많았지만 좋은 입주민들 덕에 그래도 이렇게 경비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비를 자기 집 개만도 못하게 깔보는 입주민들도 있긴 해요. 언제 한 번은 제가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입주민이 40분 후에 차를 빼달라며 키를 주더라고요. 퇴근도 못하고 그냥 기다렸죠. 그런데 그 입주민이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거예요. 기다리다 못해 차를 그냥 세워뒀는데 부탁한 입주민의 아들이 와서는 다짜고짜 '야 이 새끼야, 빼주라면 빼주지 뭐 그렇게 말이 많아'라며 대뜸 욕을 하더라고요. 그래도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잘 대해주는 입주민이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참고 일하는 거예요."

C씨는 신현대아파트에서 일을 못하게 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그는 "빚을 갚으려고 경비 일을 시작했다. 여길 나가면 또 다른 곳에서 경비 일을 하지 않겠나"라면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나같이 배움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이들에겐 너무나 가혹하다"고 했다.

일부 경비원은 민주노총을 원망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 측은 지난달 7일 경비원 이모(53)씨 분신 사건이 발생하자 신현대아파트 앞에서 경비원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또 이씨가 지난 7일 패혈증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하자 신현대아파트 안에서 노제를 갖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B씨는 "정년연장 문제도 계약 문제도 (입주자대표자회의 측과) 합의가 다 돼가고 있었는데 뒤집어졌다. 다 민주노총 때문"이라며 "해결이 잘 되고 있었는데 민주노총이 분신한 동료의 영정사진을 들고 상복을 입고 찾아와 난리를 치니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C씨는 "민주노총이 우릴 이용했다"면서 "일을 이렇게 벌려놓기만 했지 결국 우리 모두 해고통보를 받지 않았느냐. 언론 불러놓고 떠들썩하게 일을 벌이니 입주자대표회의에선 '너네들 그런 식으로 해봐라. 업체 바꿔버리겠다'고 맘먹은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는 "민주노총은 논란거리가 생기자 아파트에 달려와 경비원들이 모여 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우리들이 어떻게 하던 일을 다 놓고 시위에 참여하겠냐"며 "정작 도움 된 게 하나도 없다. 민주노총이 일만 크게 만들어놨다"고 했다.

그러나 A씨는 "경비원들이 해고된 게 민주노총 때문이란 주장은 터무니없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들에게만 해고 예고 통보장을 보낸 건 보복성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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