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판매 대리점 입간판 쇠봉이 행인 덮쳐
119 구급대원 "어린아이 맞았으면 큰일날 뻔"
변호사 "목격자 증언ㆍ병원기록 등 확보해야"

행인을 덮친 휴대폰 대리점의 입간판. 바람이 불어 입간판이 넘어지면서 쇠봉이 C씨를 가격했다.
지난 22일 낮 12시께.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한 C(31)씨는 약속 장소를 향해 길을 걷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허겁지겁 걸어가던 C씨는 갑자기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C씨 옆엔 길다란 쇠봉이 놓여 있었다. 쇠봉이 C씨를 덮친 것이다. 행인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119에 신고했다. C씨는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이송돼 컴퓨터 단층 촬영(CT)과 방사선 촬영(X레이)를 받았다. 의사는 "지금 당장 문제는 없지만 추후에 뇌출혈이 생길 수도 있다"며 일주일치 약을 처방했다.

C씨는 "(쇠봉에 맞는) 순간 차에 치이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충격이 상당했다"고 했다. "직원이 쓰러진 입간판을 다시 세우는 것도 힘들어했어요. 세워놓고 보니 1층 높이의 커다란 쇠봉에 현수막이 달려 있더라고요. 휴대폰 대리점에서 세운 거였어요.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가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뒤통수 쪽에 맞았길 망정이지 얼굴 쪽에 맞았으면 눈이나 코가 성치 않았을 거예요." 당시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4, 5m 높이의 봉이 쓰러지며 머리를 가격하면 아무리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도 운 나쁘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C씨는 운이 좋았다. 어린아이가 맞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입간판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상 설치 자체가 불법이다. 인도나 보도, 공유지에 설치한 개인 광고물 모두 법을 어기는 행위다. 안전행정부 지역공동체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12조 7항에 이동할 수 있는 간판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면서 "지지형 광고물이 아닌 보통 가게에서 흔히 사용하는 이동형 입간판이나 에어라이트 등을 설치하는 건 불법"이라고 했다. 이처럼 입간판 설치를 법적으로 제재하고 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곳의 음식점이나 경쟁이 치열한 휴대폰 대리점의 경우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도나도 각종 불법 옥외광고물을 설치하고 있다.

불법 입간판 때문에 벌어지는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태풍을 비롯한 큰 바람이라도 불면 피해가 더 많아진다. 한 소방서 관계자는 "바람이 많이 불 땐 입간판이 쓰러져 피해를 입기도 하고 비가 올 땐 입간판 전선에 (행인이) 감전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입간판 때문에 행인이 피해를 본 사례는 인터넷에서도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네티즌은 "어머니가 입간판 전선에 걸려 넘어졌다. 다행히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아저씨가 먼저 가게에 알리라고 하고 본인이 보았다고 말씀해주셔서 가게에 알린 뒤 119를 불렀다. 어머니는 앞니 두 개가 깨지고 입술이 찢어졌다. 당시 목격자인 아저씨의 연락처는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동생이 입간판에 깔려 식물인간이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운전을 하다 입간판을 박았는데 조수석에 앉은 동생에게 입간판이 떨어져 뇌를 심하게 다쳤어요. 사고 당일 두 차례 뇌수술을 받은 후 현재까지 의식이 없습니다. 동생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의식을 못 찾고 있어요. 동생이 아파 경황이 없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입간판을 세운 쪽에서는) 변호사까지 선임해 이것저것 손을 쓴 상태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문제는 입간판 설치가 불법임을 알면서도 가게 주인들이 배짱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C씨 머리를 가격한 입간판을 세운 휴대폰 대리점 사장 J씨는 '병원비만 물어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불법인 건 알고 있다. 경찰과 얘기가 다 됐다.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기자가 "불법 입간판 단속 권한은 지자체에 있는데 경찰과 어떤 이야기가 오갔다는 건가"라고 묻자 그는 "지금 날 상대로 취재하는 거냐. 할 얘기가 없다"고 말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라 입간판ㆍ에어라이트ㆍ현수막 등을 단속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사고가 발생한 지역의 지자체는 왜 4m가 넘는 위험한 입간판을 보고도 단속하지 않은 걸까. 해당 휴대폰 대리점을 관할하고 있는 부천 소사구청 건축과 광고물정비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수막ㆍ에어라이트ㆍ입간판 등을 매일 단속한다. 주말에도 나간다"면서 "(C씨를 치며 쓰러진 입간판이) 어떤 입간판인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소사구청 건축과 광고물정비팀장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C씨를 친 입간판의 쇠봉이) 4m 이상이라니 상당히 크다"고 놀라며 "(사고가 난 대리점의 입간판은) 불법이 맞다. 휴대폰 판매 대리점들이 풍선을 걸어놓는 등 별 걸 다 한다. 휴대폰 가게들이 문제가 많다"고 했다. 그는 "행정 처분대로라면 500만원 과태료를 물게 하는 것이 맞지만 다 사람 살자고 하는 일인데 무조건 그렇게 하진 않는다. 두 번까지 (입간판을 철거하라고) 경고한 뒤에도 치우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린다"고 말했다. 광고물정비팀장은 "이런 사고가 발생한 줄 몰랐다"며 "오늘부터 집중단속하겠다. 당장 단속을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불법 입간판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기백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관리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해야 한다"면서 "이때 입증 자료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부딪히는 장면을 찍어놓을 수는 없으니 목격자의 증언이나 병원 방문 당시부터의 자료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는 사람이 모든 걸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최초 기록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병원 방문할 때 어떤 처치가 있었는지, 신체에 어떤 이상이 발생했는지, 어떤 식으로 기재가 됐는지 등의 기록을 확보해야 합니다. 사고 경위를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법적 분쟁에서 자기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법을 위반하고 설치한 입간판에 피해를 입었을 경우엔 손해배상액이 더 많이 산정되는 걸까? 장 변호사는 "입간판이 위법한 거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적법한 거더라도 뚝 떨어져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불법 입간판 설치자를 고발할 수도 있겠지만 손해배상을 받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면서 "관리자가 법을 어기고 설치한 입간판 때문에 다쳤는데 책임이 더 큰 것 아니냐는 걸 따져 물어 협상을 원활히 할 수는 있겠지만 적법 여부와 손해배상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손해배상 청구에는 직접 치료비와 향후 치료비에 대한 의사 의견서, 치료기간 동안 일을 못해 발생한 휴업손해 산정 금액, 치료를 위해 지불한 교통비, 적절한 위자료 등의 비용이 산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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