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국내 항공사들이 승무원 지원자격에 '162㎝ 이상의 신장'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대한항공.
일부 국내 항공사들이 승무원 지원 자격에 '162㎝ 이상의 신장'을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뒤꿈치를 들고 팔을 뻗어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 '암리치(arm reach)'를 적용하거나 신장 제한이 전혀 없는 외국 항공사 채용 시스템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10일 항공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진에어,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5개 항공사가 남녀 승무원 신장을 162cm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 입장은 기내 적재함을 여닫거나, 적재함 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지난 2008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신장 162㎝ 이상이 업무 수행상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면서 "외국 항공사과 승무원 신장조건이 2cm에서 4.5cm까지 차이가 나므로 신장 162cm 조건이 업무 수행을 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합리적 이유 없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라며 채용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지만 국내 항공사들은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외 항공사의 지원 자격에 포함된 신장 제한을 보면 캐세이퍼시픽의 최소 암리치는 208㎝, 에미레이트항공과 카타르항공은 212㎝이며 에티하드항공은 210㎝다. 미국 델타항공이나 에어캐나다의 경우는 신장이나 암리치에 대한 평가 기준이 전혀 없다. KLM네덜란드항공 자격요건에는 키 제한은 없으나 '너무 작거나 크지 않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싱가포르항공과 일본항공(JAL)은 지원자격이 키 158㎝ 이상이며 루프트한자항공과 핀에어는 나란히 160㎝ 이상이다.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신장 기준이 5피트(152.4㎝)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인권위가 채용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한 것을 계기로 2008년부터 지원 자격에서 신장 기준을 없앴다. 다만 자격 요건에서 '기내 안전 및 서비스 업무에 적합한 신체 조건을 갖춘 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에어부산도 승무원의 신장을 제한하지 않는다. 경찰청과 소방방재청도 채용 시 키와 몸무게를 제한하다 인권위의 개선 권고를 받아들여 결국 2008년 제한을 없앤 바 있다.

대한항공은 여전히 채용 시 신장 기준을 평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 홍보실의 이기광 상무는 "객실 승무원의 키가 162cm 이상은 돼야 기내 안전 확보와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해 1990년부터 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재함 높이는 대개 200㎝가 넘고 대형 기종의 경우 최고 214㎝다.

국내 항공사들의 승무원 신장 기준에 대해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승무원 학원 관계자는 "한국인 승무원이 많은 중동 항공사가 키에 까다롭지가 않은 편이라 키가 작으면 중동 항공사를 지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개선 권고를 따르지 않은 대한항공에 대해 "아직도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인권 마인드가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대한항공 측은 "인권위 권고는 강제력이 없다"면서 "회사 나름대로 채용기준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