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1시간 서서 일하지만 일당은 고작 5만~6만원
대부분 추가수당은커녕 휴게시간ㆍ휴일도 보장 안돼
판매원들 "매출 34% 백화점이 가져가기 때문" 주장
민노총 "이렇게 심각한줄은 몰랐다… 정부가 나서야"

백화점 판매 근로자는 대부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짝다리를 짚어도 안 되고 뭔가에 기대고 서 있어도 안 돼요. 서 있기 정말 힘들 땐 창고에 잠깐 앉아 있다 나올 때도 있어요. 한 번은 고객을 응대하면서 말을 많이 했더니 입에 단내가 나서 사탕을 잠깐 물고 있었죠. 그런데 한 고객이 고객센터에 항의해 난리가 난 적이 있었어요. 아들 뻘 직원에게 불려가 훈계를 들었어요. 한동안 얼마나 괴로웠는지 몰라요."

김모(여ㆍ48)씨는 2005년부터 10년간 백화점에서 근무한 베테랑 판매 근로자다. 남성복 직영점 직원으로도 있었고 식기 판매 코너에서 매니저로 일한 적도 있다. 2년 전부턴 남성의류 매장 아르바이트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백화점 판매 직원의 근로환경에 대해선 나만큼 빠삭하게 아는 이도 없다"고 했다. 이어지는 김씨의 말은 뜻밖이었다. "지난해 '백화점 직원 자살 사건'이 있고 나서 판매 근로자들의 감정 노동이 반짝 이슈가 된 적이 있었지만 고객 응대하는 건 힘든 축에도 안 끼어요." 김씨는 왜 이런 말을 한 걸까?

"우리가 일하는 시간은 하루에 12시간 정도예요. 아침 9시까지 출근해 백화점이 문을 닫는 오후 8시~8시 반까지 일하고 마무리 작업까지 하면 보통 오후 9시가 넘어 퇴근하죠. 평균 12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보면 됩니다. 점심시간 1시간을 빼면 11시간 정도 일하는 거죠. 눈치껏 돌아가면서 20~30분씩 쉬었다 오는 게 쉬는 시간의 전부예요. 어떤 매장에선 그 마저도 못 쉬게 하죠. 매일 11시간 넘게 서 있는 게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판매 근로자들 대부분이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고 관절염도 달고 살죠. 문제는 일하는 만큼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일하는 시간에 비해 턱없이 받는 돈이 부족해요."

근로기준법 제50조에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을 사용하는 사업장에서 1주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1일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백화점 판매 근로자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해당한다.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라 근로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하면 1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이때 초과 근무에 대한 임금을 따로 보장받지 못하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하지만 백화점 판매 근로자들은 1주 12시간을 훌쩍 넘겨 일할뿐더러 추가수당은커녕 휴게시간 및 휴일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씨 말에 따르면 현재 백화점 판매 근로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 직영점이나 중간관리(대리점 형식)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 매니저 및 매니저 이하급 판매 직원,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이다. 브랜드 직영점 파견 직원은 월 200만원 안팎을 받고 한 달에 6일 정도 쉰다. 매니저와 매니저 이하급 직원은 150만~160만원을 받는다. 휴일이 4일 정도다. 알바생은 5만~6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대부분 최저임금(2014년 기준 5,210원)도 안 되는 일당을 받고 일한다.

4년 전 경기도 부천의 유명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일한 적이 있는 조모(47)씨는 "알바 일당으로 5만원을 받았다"면서 "5만원도 많이 받는 거라고 주변 알바생들이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처음 알바를 시작하고 다른 매장 알바생들이 '얼마를 받고 일하냐'고 해서 '5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하니 부러워하더라고요. 다른 매장 직원들이 '알바생에게 5만원을 주면 어떻게 하냐'고 항의하는 등 난리가 아니었어요. 다른 매장의 알바생 일당은 4만~4만5,000원이었거든요. 그래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도 눈치 보며 일해야 했죠."

이처럼 백화점 판매 근로자들의 처우가 형편없는 이유는 뭘까. 유명 백화점 식기 코너의 매니저인 박모(여ㆍ46)씨는 "백화점에 내는 수수료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장에 따라 다르지만 백화점이 떼 가는 수수료가 매출의 34~35%나 돼요. 100만원어치 그릇을 팔면 35만원을 백화점이 가져가는 거죠. 판매 근로자들끼리 '백화점 매장은 망해도 백화점은 절대 안 망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그만큼 백화점 횡포가 심해요." 취재 결과 박씨뿐만 아니라 다른 근로자들도 자기들의 임금이 적은 건 백화점 수수료가 지나치게 많은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말 순이익도 아니고 매출의 34~35%를 백화점이 가져가는 걸까? 유명 백화점의 홍보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수료율은 브랜드별로 조금씩 다른 걸로 알고 있다"면서 "더 이상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판매 근로자가 부당 대우를 받는 데 대해서는 "판매사원 인사관리는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다. 각 브랜드별로 사람을 뽑기 때문에 백화점 측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면서 "인사나 인력 운용에 대해 우리가 참견하는 건 월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백화점에선 판매사원 복지에 나름 신경 쓰고 있다"면서 "우수 사원에게 해외연수를 보내주기도 하고 편히 쉴 수 있도록 휴게실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사나 인력 운용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이 백화점은 지난해 '백화점 여직원 자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고객만족서비스(Customer Satisfaction Service)'를 통해 직원들의 근무 행태를 수시로 체크해 점수를 매겨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 등 판매 근로자들의 인사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 판매 근로자들의 노동 현실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고용부 임금근로시간개혁추진단 관계자는 "초과근무에 대해 50% 할증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면 법 위반이기 때문에 추가수당은 반드시 지급돼야 한다"면서도 "진정이 들어오거나 고용부가 근로감독을 했을 때 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그 문제에 대해 알고 있을 텐데 (진정이 들어오거나 감독을 나간 적이 없어) 백화점 노동자와 관련한 일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기자가 "당사자가 진정을 넣지 않는 이상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건가"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이슈가 되면 근로감독 대상에 넣어 감독할 수 있지만 고용부에 인력이 부족해 한계가 있다. 솔직히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판매 근로자들이 부당대우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들 대부분이 한 푼이 아쉬운 서민층이기 때문이다. 한 판매 근로자는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못 배운 데다 나이까지 많아 일할 곳이 마땅찮다. 한 푼이라도 벌려고 어쩔 수 없이 일한다"고 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본부 국장은 "(백화점 판매 근로자들의 노동 실태가)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다"며 "사용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쉽게 벌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 국장은 "본래 비정규직은 비정기적인 일에 근무하는 노동자를 의미하지만 실제론 상시업무에도 비정규직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면서 "백화점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건 근로조건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 임금 또한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법 위반이 확실하지만 사용자가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이기에 입을 꾹 다물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우 국장은 "사용자들 사이에서 '근로기준법ㆍ노동관련법들은 어겨도 크게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많기 때문에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우 국장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려워요. 사용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살생부를 쥐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정부가 나서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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