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근무 형태가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나 고정된 업무 시간을 없애거나 아예 재택 근무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유연하게 바뀌고 있다. 자료사진
한 IT기업에 근무하는 A 씨는 이번 금요일에 오후 3시쯤 퇴근할 생각이다. 그동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아이와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종전까지는 일찍 퇴근하기 위해 반차(半次) 휴가를 써야 했지만, '책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A씨의 경우처럼 기업들의 근무 형태가 유연하게 바뀌고 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나 고정된 업무 시간을 없애거나 아예 재택 근무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네이버는 출퇴근을 전적으로 직원 자율에 맡기는 '책임근무제'를 지난 8월부터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대외, 홍보 등 대외적인 협력 업무를 해야 하는 일부 부서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부서에서 시행하고 있다. 할당된 근무 시간이 없이 업무 책임만 주어지기 때문에, 하루 1시간을 근무하든 10시간을 하든 본인 자율이다.

네이버에 앞서 삼성전자도 이와 유사한 '자율 출퇴근제'를 실시하고 있다. 자율 출퇴근제는 정해진 업무 시간만 채우면 자유롭게 근무가 가능한 제도다. 삼성전자는 주당 40시간만 채우면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 사이 임직원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근무할 수 있는 이 제도를 2009년에 도입했다. 유한킴벌리, 동아원 그룹, 한국 P&G 등도 자율 출근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 같은 제도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까지도 확산되는 추세인데,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솔트룩스는 삼성전자와 같은 2009년에, 전자 문서 솔루션 기업 '이파피루스'는 지난해부터, 중소기업 디자인피버는 지난달부터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밖에 원격 근무제와 재택 근무제를 택하는 업체들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KT, 유한킴벌리 등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무 환경 변화에 대해 직장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네이버 관계자는 "대체적으로 직원들이 '업무 집중도가 높아져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네이버에 근무 중인 한 직원은 "전날 술자리를 하고 난 다음날에는 늦게 출근할 수 있고 아플 때는 저녁이면 문을 닫는 병원에도 방문할 수 있어 한층 직장 다니기가 편해졌다"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근무하니 업무 효율도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솔트룩스에서는 사내 설문조사 결과, ‘자율 출근제를 실시하는 우리 회사가 자랑스럽다’는 응답이 87.6%나 나오는 등 자율 출근제가 회사의 자랑거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더욱 늘어나 오히려 부담스럽다"거나 "회사에만 앉아있지 않을 뿐이지 업무를 계속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특히 업무량이 많은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이 같은 의견을 많이 제시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메신저로 업무적인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간혹 집에서 쉬고 있어도 상사의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의 경우 상사의 눈치가 보여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모 기업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회사에서 이 재택 근무제 등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쓰고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면서 "상사의 눈칫밥을 먹어가며까지 제도를 활용할 직원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