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ㆍ현직 직원들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사실상 헌옷… 소비자 기만행위"

한 백화점이 직배송한 패딩 코트. 얼마나 입었는지 목과 손목 부분이 심하게 오염돼 있다.
L(여)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쇼핑몰에서 구입한 패딩 코트가 알고 보니 '중고'였던 것. 모 백화점이 택배로 직배송한 패딩 코트는 L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악할 만한 수준의 옷'이었다. 누군가 입고 사무 업무를 본 모양인지 화이트 자국이 묻어 있었다. 머리를 덜 말리고 입었는지 염색물까지 들었다. "백화점 직원들이 예쁜 옷이나 신상품 나오면 한 번씩 입고 걸어놓는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드라이도 안하고 걸어둔 비양심적인 직원도 있나 봅니다. 살다 보니 이런 옷도 받아보네요. 온라인에서 옷을 살 때는 백화점 옷이라도 무조건 믿지 말고 꼼꼼히 확인하세요."

경기도 부천의 한 백화점에서 60만원대 겨울 코트를 구입한 김모(여ㆍ47)씨. 값이 좀 비싸다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간만에 장만한 겨울옷이라 그런지 마음에 쏙 들었다. 김씨는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포즈를 취해봤다. 그런데 주머니에 넣은 김씨 손에 이상한 종이가 잡혔다. 꺼내 보니 백화점 푸드코트 영수증이었다. "매장에 항의했더니 '죄송하다'며 교환해줬어요. 백화점 직원이 입은 옷인지 손님이 입은 옷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어요."

유명 백화점에서 직원들이 입거나 손님이 반품한 옷을 판매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상 중고 옷을 판매하는 이 같은 행위에 대해 백화점이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취재진이 조사한 결과 백화점 직원들이 매장 옷을 자기 옷처럼 입는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부천의 유명 백화점에서 11년째 근무하는 조모(여ㆍ50)씨는 "백화점 직원들이 매장에서 판매하는 옷을 입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면서 "회사에서 주는 유니폼이 있지만 매니저는 대부분 일반 매장에서 파는 옷을 입는다"고 했다. 조씨는 "파는 사람이 옷을 예쁘게 입으면 그 옷이 잘 팔린다. 그래서 많이들 그렇게 하고 있다. 직원에게 입은 걸 통째로 벗어 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매니저는 매장에서 파는 옷을 입어요. 그날 입었다가 벗어서 다림질해서 걸어놓고 새 옷처럼 팔아요. 스팀다리미질을 하면 새 옷 같아요. 오염된 옷은 드라이한 뒤 새 옷처럼 팔기도 해요. 구김이 많이 생기지 않는 옷은 다림질하지 않고 그냥 걸어둬도 아무도 몰라요. 아르바이트생들은 대개 유니폼을 입지만 일부 매장의 아르바이트생들은 유니폼이 안 예쁘다는 이유로 자체 브랜드 옷을 입기도 해요. 모두 매장에서 파는 옷이죠."

서울 신촌의 한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최모(여ㆍ31)씨는 "매니저들이 매장 옷을 입고 나갔다가 다시 걸어놓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방학에 서울 잠실의 한 백화점 가전제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김모(22)씨는 "본사에서 반품을 거부한 의류를 새것처럼 파는 사례를 목격했다"면서 "반품하지 못하면 해당 매장의 매니저가 손해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백화점에서만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P브랜드 대리점 매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 최모(여ㆍ47)씨는 "본사로부터 유니폼을 지급받긴 하지만 신상품이 들어오면 홍보를 위해 매니저가 신상품을 입고 일한다"면서 "입고 난 옷은 새 옷처럼 판매용으로 걸어놓고 판다"고 고백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처음 듣는 사례다. 매니저들이 착용한 옷을 드라이해 새 상품인 것처럼 진열하는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며 "옷은 일단 한 번 착용하면 형태가 변화하기 때문에 정상 제품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게 파는 옷은 새 옷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백화점에서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면 상도덕을 어기는 행위이자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백화점은 헌 옷을 새 옷처럼 파는 사례를 적발하면 해당 매장과 계약을 해지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 백화점 관계자는 "처음 듣는 얘기라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지는 말해줄 수 없다"면서 "내가 매장에서 일할 땐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나도 기자 얘기를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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