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안 치운다며… 낙엽 안 쓴다며… 일부 주민 일상적으로 폭언 퍼부어
경비원들 "신분상 약점 때문에 우습게 보는 것… 문제의 근원은 신분불안"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감시적 근로자인 경비원의 담당 업무가 아니다. 사진=이혜영 기자
"우리도 똑같은 인격체다. 집에서 키우는 개돼지가 아니다."

입주민의 상습 폭언에 시달리다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이모(53)씨가 분신자살을 기도하자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이 이 아파트의 경비원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실태 조사에 나섰다. 이씨를 비롯한 경비원들은 평소 어떤 처우를 받았을까. 어떤 울분이 50대 초반의 가장으로 하여금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을까.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감시적 근로자인 경비원의 담당 업무가 아니다. 사진=이혜영 기자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실태 조사와 증언을 통해 이씨 외에도 여러 경비원이 일상적으로 입주민으로부터 폭언을 듣는 등 인격을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어 경비원들이 자식 또래의 입주자에게 폭언을 듣는 건 부지기수였다. 떨어져 있는 휴지를 줍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분을 치우지 않는단 이유로, 낙엽을 쓸지 않는단 이유로 경비원들은 폭언을 들어야 했다. 일부 입주민은 주차한 차가 손상됐다며 경비원에게 변상을 요구했다. 차 관리, 휴지 줍기, 화분 치우기, 낙엽 쓸기는 경비원 업무가 아니다. 한 주민은 유통기한이 지난 떡을 5층에서 화단으로 던지며 먹으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신현대아파트 분회는 이씨 분신자살 기도 사건 뒤 펴낸 팸플릿에서 "이런 참담한 일을 당했는데 주민을 대표하는 어느 누구도 병문안조차 오지 않는다. 집에서 키우는 개돼지만도 못하는 취급을 받는 건 신분상 약점 때문에 우리를 우습게 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신현대아파트 분회는 팸플릿에서 "실제로 전국의 경비원들이 유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2010년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에서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하는 걸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폭언을 쏟았다. 울분을 표현할 길이 없던 경비원은 그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지난 8월에는 평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주차 문제로 다투다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관리사무소 집기를 부수는가 하면 아파트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관리실 직원의 뺨을 때린 입주민도 있었다.

분신자살을 기도한 이씨에 대한 평판은 좋았다. 경비원 A씨는 "이씨는 점심때면 신김치에 돼지고기와 두부를 넣고 찌개를 끓여 경비원을 비롯한 주변사람을 불러 함께 먹곤 했다. 이 아파트를 담당하는 우체부까지 불러 함께 식사를 한 살가운 사람이었다"면서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굉장히 명랑하고 쾌활한 친구였다"고 했다.

쾌활하던 이씨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진 건 3개월 전부터였다.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갑자기 다른 동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경비원들에 따르면 이씨가 새로 맡은 동에는 경비원과 청소 노동자들을 벌레 보듯이 하는 할머니가 살고 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견디지 못하고 모두 그만둘 정도로 이 할머니의 폭언은 지나친 데가 있었다. 5층에서 이씨에게 떡을 던져주고 안 먹으면 화를 낸 입주민도 이 할머니다. 경비원 B씨는 "3개월 전부터 B씨가 가끔 '죽고 싶다' '괴롭다'라고 말하기에 농담으로 그러는 줄 알았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씨만 입주민으로부터 멸시를 당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A씨는 "이씨가 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왜 그랬나'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교양을 갖춘 사회지도층이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입주민도 있다면서 "입바른 소리를 하면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에 하소연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신현대아파트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가장 큰 불만은 고용불안이었다. 입주민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잘릴까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이었던 민모(63)씨는 2년 전 '노동자도 사람이다. 고용안정 보장하라' '우리는 일하고 싶다. 해고를 철회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아파트 굴뚝에 올라가 시위를 벌였다. 당시 경비 아웃소싱 업체인 ㈜한국주택관리는 만 60세 정년이 넘은 촉탁직 노동자 23명 중 14명을 계약해지했다. 해고 사유는 정년 만기와 근무 태만. 당시 새 입주자 대표회의는 경비원들의 정년을 만 60세로 정하되 촉탁 2년차 근무자까지는 2년간 구제하기로 의결했다. 그러나 사측은 만 62세가 되지 않았더라도 근무평가를 통해 재고용 대상을 선발하겠다면서 14명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24시간 2교대로 일하던 민씨는 졸다가 순찰을 돌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썼다. 회사는 시말서를 이유로 9년간 일한 민씨를 해고했다. 민씨를 비롯한 7명은 복직 투쟁을 벌였다. 한국주택관리는 굴뚝 농성의 파장이 커지자 사흘 만에 복직을 약속했다. 그러나 민씨는 복직 1년 만에 다시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굴뚝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지 1년 만에 쫓겨났다"면서 "경비원들이 가장 불만인 게 정년 문제다. 예순 살이면 한창 때다. 63~65세까지만이라도 이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면서 "국가에서 나서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신현대아파트 분회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아파트의 경비원을 상대로 전수 조사를 실시한 결과 폭언ㆍ폭행 사례가 2010년 46건에서 2014년 상반기 276건으로 급증했다. 신현대아파트 분회는 "입주민이 경비 노동자 집단을 자신이 부리는 머슴쯤으로 보는 시각을 통해 이러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경비 노동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부당한 요구에 대해 거부하지 못하고 이를 표현하는 이유는 신분불안에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몇몇 입주민의 폭언으로 인해 분신자살을 기도했다고 단정하는 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진단이라는 것이다.

신현대아파트 분회는 정년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정하고 투쟁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분회는 "해마다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정년 연장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우리 목소리를 힘 있게 내기 어렵다"면서 "입주자대표회의와 노조 간 대화의 틀로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비원들의 싸움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사 측인 한국주택관리에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에도 벅찬 형편이다. A씨는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면 많은 걸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비원의 최저임금은 내년부터 약 20%가량 오른다. 경비원 등 감시적 근로자와 보일러ㆍ전기 기사 같은 단속적 근로자에게 적용하는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 예외 조항이 올해 말로 효력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인원 감축과 변칙 노동으로 경비원들의 근무조건이 되레 열악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우문숙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본부 국장은 "실질적인 근무시간은 하루 12시간이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땐 밤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지정해 경비실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 무료 노동이 강요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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