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진료ㆍ과잉진단에 환자들 '불안'… 갑상선암 논쟁 등 불안감 부추겨
전문가 "과잉진료ㆍ과잉진단 개연성 충분… 정부가 판단 근거 마련해야"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병원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수술해야겠네요." 왼쪽 귀가 갑자기 잘 안 들려 서울의 한 이비인후과를 찾은 C(38)씨. 의사는 고막이 찢어졌다며 하루빨리 고막성형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C씨의 경우 고막에 종이패치를 붙이는 시술은 고막 회복율이 20%지만 고막성형술은 90%예요. 고막성형술을 합시다." C씨는 수술 날짜를 잡고 청력 및 혈액 검사를 한 뒤 약 7만원을 냈다. 병원 측은 고막성형술 비용은 100만원 정도라고 했다. '기왕 수술할 거면 큰 병원에서 하는 게 낫겠지?' 이틀 뒤 대학병원을 찾은 C씨. 대학병원 의사의 진단은 사뭇 달랐다. "지금은 고막성형술을 할 단계가 아녜요. 패치를 붙이고 경과를 봅시다." C씨는 특진비와 선택 진료비, 종이패치 처치비를 모두 포함해 9만원 남짓을 냈다. '괜한 돈만 날릴 뻔했네. 근데 왜 의사마다 이렇게 말이 다르지?' C씨는 의문이 들었다.

# '와자작!' 영화관에서 버터구이 오징어를 먹던 E(22)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오징어를 씹다 이가 부러진 것이다. 거울로 보니 아말감 치료를 받은 어금니의 일부분이 부서졌다. E씨는 이참에 치과 진료나 받아야겠다고 생각해 병원을 찾았다. 20대 초반 여대생에게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했다. "치아가 많이 손상돼 살릴 수 없어요. 임플란트를 식립해야 합니다. 딴 방법이 없어요." 임플란트 비용은 180만원. '아, 피같은 내 돈….' E씨는 지인 소개로 120만원에 임플란트 수술을 해주는 치과를 찾았다. 두 번째 치과의사는 전혀 다른 치료법을 제시했다. "자연치아를 최대한 살리는 게 중요해요. 썩은 부분을 긁어내고 금을 씌워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E씨는 돈이 굳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인공치아 이식술을 권유한 병원 의사에게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과잉진료'와 '과잉진단'에 대한 환자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통증 분야 전문의들로 구성된 대한통증학회가 '상당수 척추수술이 과잉수술로 의심된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과잉진료와 과잉진단은 의료계에서까지 심각한 문제로 대두했다. 과잉진료나 과잉진단은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하고 국가의 의료 재정을 축내는 건 물론 의약품 오남용 등으로 환자의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과잉진료 및 과잉진단 문제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같은 증상을 놓고 의료진의 진단과 진료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C씨를 진료한 박문서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교실 교수는 "C씨 고막의 천공 크기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사이즈였다"면서 "그 정도라면 고막이 자연재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패치를 붙이고 기다리는 게 낫다"고 했다. 간단한 종이패치술만으로도 고막을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C씨가 먼저 들른 병원의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염증이 생겨 고막 천공이 더 커질 것"이라고 단언한 뒤 고막성형술이 올바른 치료법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에게 C씨가 처음 찾은 병원에서 과잉진단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지 물었다. 박 교수는 "의사마다 진단이 다른 경우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그는 "천공이 아주 작은데 수술하자고 했다면 과잉진료가 분명하지만 이번 사례는 판단하기 좀 애매하다"면서도 "나도 의사 생활 초창기엔 그 정도 천공이 있으면 수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환자를 진료하며 배우고 느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고막성형술을 할 필요는 없다고 진단했다. 고막 주위에 감염이나 염증이 없으면 패치만 붙여 놓아도 고막이 자연재생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잉진료나 과잉진단 문제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업계 종사자들마저 우려할 정도로 과잉진료 및 과잉진단 문제가 심각한 의료 분야도 있다. 경기 부천에서 8년간 치위생사로 일하고 있는 D(30)씨는 "E씨에게 이를 뽑고 임플란트를 심으라고 권유한 의사의 진단은 명백한 과잉진단"이라고 했다. D씨는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임플란트 이식술이나 치아교정은 돈이 좀 된다"면서 "E씨를 처음 진단한 치과 의사도 돈 욕심이 앞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치아를 최대한 보존하는 방법을 찾는 게 의사의 의무잖아요? 근데 의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저도 놀랄 때가 많아요. 특히 갓 개업한 의원에서 수익 때문에 임플란트를 권유하는 경우가 있죠."

과잉진료 논란에 휩싸인 대표적인 질환은 갑상선암이다. 일부 의료인이 지난 30년간 갑상선암 환자가 30배나 늘어난 건 의료기관이 돈벌이를 위해 불필요한 갑상선암 환자를 만들어낸 결과라고 주장하고 나서 의료계는 물론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은 바 있다. 갑상선에 생기는 종양의 약 95%는 양성임에도 수익을 위해 과잉진료를 함으로써 불필요한 암환자를 만든다는 주장을 놓고 의료계는 아직까지도 찬반으로 나뉘어 격론을 벌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과잉진료ㆍ과잉진단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우리도 과잉진료ㆍ과잉진단 사례를 많이 들었다.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과잉진료ㆍ과잉진단 문제에 대해 사실상 손 놓고 있다는 얘기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은 "과잉진료ㆍ과잉진단 의심 사례는 상당히 많지만 과잉진료ㆍ과잉진단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도 "과잉진료가 만연해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의원은 대학병원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많은 환자를 끌어들여야 하므로 공격적으로 진단할 수 있다"면서 "수익을 위해 과잉진료ㆍ과잉진단을 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김 정책위원은 과잉진료로 의료 불신이 초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의사마다 말이 다른 경우가 많아 환자들이 '대체 뭐가 표준 치료법이지?'라는 의문을 갖습니다. 누구는 수술을 권유하고 누구는 수술하지 말라고 하니 환자로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김 정책위원은 의료계의 자정 노력과 함께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과잉진료ㆍ과잉진단 의심 행위가 있고 제보까지 있는데 판단할 만한 근거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으니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의사들이 진료자율권을 주장하기 때문에 정부도 개입하지 못하고 손 놓고 있다. 정부가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고 의료계는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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