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냄새 풍기기 전 지자체가 털어 복지시설 등에 선물
도심 가로수에서 딴 열매, 지리산 열매와 중금속 수치 비슷

공원 녹지 관리 현장 기동반이 떨어진 은행을 쓸어담고 있다.
'아, 냄새….' 출근하던 이모(27)씨는 화장실에서나 날 법한 고약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씨의 눈에 '공원녹지관리현장기동반'이라는 글자가 적힌 조끼를 입은 아저씨들이 은행을 털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열매를 왜 따는 거지? 냄새 때문인가?' 이씨는 아저씨들에게 다가가 "이 은행 혹시 파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한 아저씨가 "우린 구청에서 나온 사람들이에요"라고 답했다. 이씨는 지자체에서 가로수 열매를 직접 관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저 은행 열매는 어디로 가는 걸까?'

추분이 가까워오는 9월 중순. 가로수 길을 걸은 적이 있다면 한 번쯤 은행나무에 열린 열매에서 나는 특유의 향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을 법하다. 가을철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은행나무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대표적 볼거리지만 열매에서 풍기는 독특한 향취는 보행자를 괴롭게 한다. 게다가 무르익은 열매가 자연 낙과해 보행자가 밟기라도 하면 그 냄새는 더욱 심해진다. 이 때문에 가을이 되면 해당 지자체들은 '은행 털기 대작전'에 들어간다. 이씨가 출근길에 본 광경도 은행 열매가 떨어지기 전 미리 따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털린 은행열매들은 어디로 보내지는 걸까.

서울시청 푸른도시국 조경관리팀 관계자는 "몇몇 구청은 은행 줍기 행사 등을 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구청은 채취한 은행을 사회복지시설에 보낸다"고 말했다.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 열매가 자연적으로 떨어지기 전에 채취하라고 각 구청에 협조를 구합니다. 은행 열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냄새 때문에 못살겠다는 민원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요. 그래서 (자연낙과 하기 전에 열매를 따는) 작업에 들어가는 거죠. 수거한 열매는 대부분 복지관이나 푸드마켓에 보냅니다. 어르신들이 특히 은행을 좋아하잖아요."

가로수에서 딴 은행을 사회복지시설에 보내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도심 가로수에서 딴 은행에 납 등 중금속이 많이 들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학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서울 시내에서 수거한 은행 열매엔 납 성분이 들어 있어 시민들과 사회복지시설에 나눠주면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의원은 가로수 은행에 대한 중금속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 의원 주장대로 도심에서 자라는 은행나무의 열매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의 중금속이 들어 있는 걸까?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지난해 서울시의 의뢰를 받아 은행 열매의 중금속을 검사한 결과 서울시 8개 자치구의 가로수 은행에서 1㎏당 최대 0.03㎎의 납 성분이 검출됐다. 이는 농산물 안전기준(0.3㎎/㎏)보다는 낮지만 먹는 물 기준(0.01㎎/㎏)보다는 높은 수치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중금속 수치가 낮아 먹는 데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유지용 서울시청 푸른도시국 주무관은 "지난해 10월 식약처가 은행 중금속 기준치를 납은 1㎏당 0.3㎎, 카드뮴은 1㎏당 0.2㎎으로 정했다"면서 "서울시내 은행 열매는 기준치에 한참 미달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보건환경연구원이 설악산, 지리산 등 청정지역의 은행 열매와 비교하는 연구까지 실시했다"면서 "놀랍게도 서울시내 가로수에 열린 은행과 중금속 수치가 비슷했다. 도심에서 딴 은행을 먹을 때 중금속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권호장 단국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얼마나 많이, 또 얼마나 자주 먹느냐에 따라 중금속 수치를 높게 잡거나 낮게 잡는다"면서 "은행은 자주 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금속 기준치가 높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도심 은행 열매의 납수치가 위험하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오염이 심한 지역에서 자란 만큼 다른 유해물질이 포함됐을 가능성에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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