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질병관리본부 제공
새벽 2시. 잠든 J(35)씨를 깨운 건 다름 아닌 모기였다. 여름 내내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친 탓에 모기장까지 장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피를 빨아먹은 모기를 꼭 잡고 말테다.' J씨는 눈에 불을 켜고 모기를 찾아다녔지만 재빠른 모기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결국 모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J씨. 모기장 안에 전자모기향을 피우며 J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법 쌀쌀해졌는데 왜 이렇게 모기가 극성인 거야!'

'모기도 처서(處暑)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도심 곳곳에선 모기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가득하다. 실제로 도심에선 10월에도 모기가 크게 감소하지 않는 현상을 보인다. 2010년 10월 질병관리본부가 서울의 한 주택가를 조사한 결과 도심에서 발견되는 빨간집모기류의 발생 밀도가 여름과 비교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빨간집모기류는 국내에선 질병을 전파하지 않는 모기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흡혈에 따른 성가심, 불쾌감, 가려움증 및 상처를 통한 2차감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모기는 선선한 가을 날씨에도 이렇게 극성인 걸까.

신이현 질병관리본부 질병매개곤충과 보건연구관은 "농촌에선 모기가 9월부터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도심은 그렇지 않다"면서 "도심은 열섬현상도 있고 대형건물이 밀집한 탓에 정화조에서 모기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로 도심에서 발견되는 빨간집모기는 다른 모기와는 달리 저온에서도 잘 자란다"면서 "도심에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까진 모기가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기 전문가'로 유명한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교수도 신 연구관과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이 교수는 "아직까지 모기 활동이 활발한 이유는 월동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모기들이 알을 낳기 위해 흡혈 활동을 활발히 하기 때문이다. 집 안이 실외보다 따뜻해 모기들이 들어오는 것도 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10월까지는 모기를 흔히 볼 수 있고 한겨울인 12월이 돼도 도심에선 모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겨울에도 모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이 교수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평균 기온이 0.8도가 올라갔지만 한국은 그 두 배인 1.7배가 올라 모기뿐만 아니라 다른 곤충도 많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전에는 10월이 되면 모기가 많이 줄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줄질 않아요. 11월 말이 돼야 그나마 좀 줄어듭니다. 도심에서 한겨울인 12월에도 모기를 볼 수 있는 건 빨간집모기의 특성 때문이에요. 빨간집모기는 지하실이나 동굴, 터널, 정화조 같은 지하구조물에서 활동합니다. 온도가 지상보다 높기 때문이죠. 한겨울에 지하철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교수는 모기 개체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엔 모기가 성충이 되려면 12일 정도 걸렸다. 요즘은 열흘이 걸린다. 성장속도가 빨라져 개체 수가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정화조에서 모기가 나오는 걸 제가 2000년대 초반 원주에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지인의 카페에 놀러갔는데 모기 전문가인 제게 '왜 우리 집에만 유독 모기가 많은 거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조사해봤죠. 그 집에만 유독 모기가 많다는 건 그 집 안에 발생지가 있다는 겁니다. 근데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화조 뚜껑을 열어봤더니 모기 성충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그때부터 공무원 교육 때 정화조를 조사하라고 했죠. 도시엔 정화조가 수십만 개가 있지 않습니까. 평균적으로 정화조 100개 중 한 개에는 모기 성충이 자랍니다. 그런데 제일 작은 1톤짜리 정화조에서 보름에 한 번 꼴로 최소 2만 마리의 모기 성충이 나와요. 그 2만 마리 모기가 또 알을 낳고 그 알은 또 성충으로 자라죠. 성충으로 자란 모기 2만 마리를 사람이 잡기는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성충으로 자라기 전에 모기가 발생하는 정화조를 찾아내 살충제를 뿌리면 대박인 거죠. 만약 집에 모기가 많다면 보건소에 연락해 주변 정화조를 조사해달라고 해보세요."

물론 이 교수의 말대로 모기 성충이 나오기 전에 발생지를 찾아 박멸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발생지를 찾아다니며 모기를 100% 박멸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이미 성충이 돼 집에 들어온 모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질병관리본부는 모기를 막으려면 ▲모기장 사용 ▲에어로졸, 모기향, 전자모기향 사용 ▲철저한 방충망 관리 ▲외부와 연결된 배수관이나 환기통에 방충물 설치 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정화조 등 지하공간에서 모기를 보면 관할 보건소 및 방제전문기관에 의뢰해 모기를 방제하라고 권유한다.

신이현 질병관리본부 보건연구관은 "에어로졸, 모기향, 전자모기향 등을 사용할 때는 안전수칙을 따라야 한다. 어린아이나 임산부는 모기장을 사용하는 게 안전하다"면서 "모기 방제 담당기관은 가을철 모기에 적절한 방제대책을 수립하고 모기유충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장소를 찾아 종합방제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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