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교수 "해남선 우연히 기상조건 맞아 부화율 높아졌을 것"
"밀도 낮을 땐 온순하고 녹색이지만 군집 땐 공격적이고 까매져"

수십 년간 농사를 지은 농민도 이렇게 어마어마한 곤충 떼를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최근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호마을 일대 논 5㏊와 친환경 간척농지 20㏊에서 수십억 마리로 추정되는 0.5∼4㎝ 길이의 곤충 떼가 나타나 수확을 앞둔 벼를 갉아먹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이 곤충은 갈대 등 벼과 식물을 먹고 사는 풀무치다. 해남군 농민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든 공포의 메뚜기류의 풀무치. 외국에서야 메뚜기 떼가 구름처럼 몰려다니며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일이 왕왕 있지만 한국에선 거의 보기 드문 일이다. 왜 풀무치가 남녘땅에서 수십억 마리까지 번식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이준호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는 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 역시 이처럼 많은 풀무치는 처음 접했다면서 "풀무치가 다른 곳에서 날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우연히 기상 조건이 맞아 풀무치 부화율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풀무치 떼가 먹이를 먹기 위해 무리를 지어 몰려왔을 거라며 "메뚜기 집단은 개체수가 많아지면 군집을 형성하고 공격성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 최근 해남군에 출현한 풀무치 떼를 어떻게 보고 있나.

지금까지 이렇게 (풀무치 떼가 한국에서) 문제된 적이 없다. 옛날 기록엔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황(黃)'이라는 곤충이 나오는데 풀무치로 보인다. 메뚜기 떼가 주기적으로 문제가 됐다는 기록이 있어서 규장각 연구원과 돌아가신 백운하 서울대 교수가 1970년대 초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뒤져 연구한 적이 있다. 연구 끝에 백 교수가 태양의 흑점 주기와 (메뚜기 떼를) 연결하는 재미있는 이론을 발표했다. 대규모 해충의 발생과 태양 흑점 주기가 일치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설로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흥미로운 이론이다.

- 상당히 흥미로운데 다른 연구는 없나.

풀무치는 한국 고유종이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연구한 게 거의 없다. 그래서 곤충학자들도 구체적인 생태를 잘 모른다. 나도 현장을 직접 보진 못했다. 동영상 속 풀무치를 보니 성충 같진 않았다. 약충(불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의 유충으로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의 유충과 구별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용어)으로 보인다.

-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언급했는데 근래에 들어선 메뚜기 떼 피해가 없었나.

벼멸구가 1970년대 중반부터 문제가 됐다. 그 전엔 이화명나방이라는 해충이 벼농사에 큰 피해를 줬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부턴 이화명나방 피해가 줄기 시작했다. 여러 조사를 해보니 벼 재배 체계가 바뀌기 시작한 뒤부터 피해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벼 품종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동남아시아 쪽에선 풀기 없는 인디카 품종을, 한국과 일본 등지에선 찰기 있는 자포니카 품종을 생산한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 쌀 생산량이 적지 않았나. 그래서 한국의 벼 육종 연구팀이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와 협력해 생산량이 높은 고소출 품종을 개발했다.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교배를 반복한 끝에 잡종의 잡종을 만들어냈다. 그걸 통해 한국의 기후환경에도 맞고 생산량이 높은 쌀 품종을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통일벼다. 아열대 품종과의 잡종이라 이앙 시기가 빨라지고 수확시기가 앞당겨졌다. 벼 생육시기가 바뀐 거다. 그러다보니 벼멸구가 벼의 생육에 영향을 주게 됐다. 멸구류 문제가 심각해지니 학자들이 기록을 뒤져 '조선왕조실록'에서 관련 기록을 발견하게 된 거다. 멸구 피해를 피하기 위해 연구하다 보니 '태양 흑점 주기설'이 나왔다.

- 대체 왜 풀무치가 해남에 갑자기 대규모로 출몰했을까.

조사를 나간 적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얘기밖에 할 수가 없다. 기상조건이 우연하게 딱 맞아 떨어진 건지 부화율이 굉장히 높아진 건지 해남군 일대 주변이 풀무치 서식 환경조건과 맞았는지 등을 조사해야 한다. 여러 유추를 해보고 여러 조건을 따져봐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풀무치) 부화율이 굉장히 높았을 거다. (풀무치 알이) 거의 대부분 부화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온도나 습도 등의 조건을 조사해서 알아내야 한다. (조사에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이유를 말하긴 어렵다. (곤충 대량 출몰에 맞는) 기상조건이 부합하는 경우가 많진 않다. 우연히 (부화 요건이 기상조건에 부합해) 대량 번식한 것 같다. 곤충이 다른 곳에서 대규모로 이주해 오는 경우도 있는데 풀무치는 한국 고유종이기 때문에 중국 등지에서 날아왔을 가능성은 없다.

-내년에도 풀무치가 대량 발생할 가능성이 있나.

대개 돌발적으로 발생하지 해마다 반복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 번 발생하고 말지 당분간 그 지역에서 꾸준하게 발생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동안 여러 번 문제가 됐다면 생태를 조사를 했을 텐데 기본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다.

- 풀무치의 특징이 있나.

원래 메뚜기는 개체수가 많아지면 군집을 형성한다. 밀도가 낮을 땐 온순하고 녹색 계통이던 메뚜기가 군집을 형성하면 까매지고 점점 더 공격성이 강해진다. 아마도 먹이를 먹기 위해 떼로 몰려왔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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