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탐지 전문가 "이씨, 정신적으로 피로했거나 자포자기 상태였을 수도"

'포천 빌라 살인사건' 피의자인 이모씨.(사진=MBC 뉴스 캡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거짓말탐지 기술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정확도가 98%를 넘는다. 어떤 거짓말도 국과수 검사관들에겐 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정확한 거짓말탐지기 검사와 상반되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왔다.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이모(50)씨가 직장동료 A씨뿐 아니라 남편 박모(51)씨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남편 살해 혐의를 추가해 이씨를 재판에 넘긴 의정부지검 형사3부에 따르면 이씨는 박씨와 돈 문제로 다투다 2005년 수면제를 먹여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 아울러 박씨 시신을 고무통에 넣어 집안에 보관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앞서 경찰은 이씨에게 A씨 살해 혐의와 8세 아들을 두 달간 집안에 방치한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남편의 사인, 내연남인 A씨 살해 시점, 공범 여부는 밝히지 못했다. 경찰이 남편 살해 혐의를 배제한 데는 이씨와 참고인 자격의 큰아들 박모(28)씨를 거짓말탐지기로 조사한 결과 '남편을 안 죽였다'는 진술에 대해 거짓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게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어느 날 남편이 베란다에서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해 고무통으로 시신을 옮겼다"며 살해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국과수의 부검 및 가검물 정밀분석 결과와 이씨의 약물 구입 기록을 토대로 이씨가 남편을 살해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수면제와 고혈압약을 먹이는 방법으로 남편을 죽였다. 앞서 경찰은 이씨가 2001~2006년 포천의 한 병원에서 48여차례에 걸쳐 수면제 923정을 처방받은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이씨가 남편을 살해한 게 사실이라면 정확도 98%가 넘는 거짓말탐지 검사에서 이씨와 그의 아들의 거짓말이 왜 걸리지 않았을까.

최효택 국제법과학감정연구소 거짓말탐지검사관은 이씨가 자포자기 상태나 극심한 피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씨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최 검사관은 43년간 국과수에서 거짓말탐지 한 우물을 판 한국 최고의 거짓말탐지 전문가다. 다음은 최 검사관과의 일문일답.

-거짓말탐지 조사 결과와 다른 수사 결과가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인가.

거짓말탐지 검사를 받으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이 사건을 보면 이씨의 경우 굉장히 피로가 누적돼 있었을 거다. 그가 자포자기 상태로 거짓말탐지 조사에 임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이미 직장동료 A씨를 살해한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남편을 안 죽였더라도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다. 거짓말탐지기는 거짓말이 탄로 나면 상당한 불이익이 따라서 그걸 감추려고 노력할 때 나타나는 생리반응을 포착한다. 이씨의 경우엔 '어차피 난 처벌받을 사람'이라는 심리 상태에 놓여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 그러면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극히 낮기 때문에 거짓말로 판단할 수 있는 생리반응이 부족할 수 있다.

-이씨 아들 조사에서도 어머니와 같은 결과가 나온 까닭은 뭘까.

이씨 아들이 어머니의 말을 실제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했더라도 아버지가 자연사했다고 믿고 있었다면 거짓 반응이 당연히 안 나온다. 만약 어머니가 '네 아버지를 죽였다'고 아들에게 고백하고 사건을 비밀에 부치자고 입을 맞췄다면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나'라는 질문에 아들이 '아니오'라고 답할 때) 거짓 반응이 나왔을 거다.

- 검사관의 능력이 부족해서 거짓 반응을 탐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나.

이 사건을 맡은 검사관을 알고 있다. 경험이 풍부하고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피검사자가 자포자기 상태에 놓여 검사관 앞에서 한 거짓말이 자율신경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이씨의 주장이 사실일 개연성도 있다.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 당시 이씨의 상태가 거짓말탐지 검사를 받기에 적합했다고 보나.

피검사자의 정신 상태를 미리 점검하긴 하지만 사전검사에서 자포자기 상태까지 잡아낼 순 없다. 쉽게 말해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지만 그런 대답은 생리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씨의 경우 검사 조건이 안 되는 건 아닌데 정신적으로 피로했을 개연성도 있었을 것 같다. 사전면담에서 피검사자와 이야기를 쭉 해봐야 하는데 내가 검사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하기 곤란하다. 수사에서 이씨가 남편을 살해한 걸로 나왔다면 (재판 결과가 어떨지) 지켜봐야 한다.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지 않겠나. 본인이 자백하지 않는 이상 신밖에 모르는 일이다.

- 거짓말탐지 검사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죄를 지은 사람이 처벌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하면 다 걸린다. 이 사건의 경우 이씨가 어차피 살인죄로 처벌받는 입장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거짓말탐지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는 거다. (이런 가정 말고도 거짓말탐지 검사에서 거짓 반응이 나온) 여러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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