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준 교수 "뭐든 지나치면 해로워… 몸에 좋다는 근거 없다"
김진욱 교수 "특정성분 과량으로 섭취 땐 잠재적 위험 줄수도"
박건영 교수 "일부 녹즙 항암효과… 사람 따라선 안좋을 수도"

전문가들은 몸에 좋은 채소라도 과량으로 섭취하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업무상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술을 마시는 직장인 C(38)씨. 건강검진에선 별 이상이 없었지만 음주 횟수가 많은 데다 아버지가 간경화로 고생 중이어서 간 건강이 염려됐다. 인터넷에서 간에 좋은 식품을 찾던 C씨는 '돌미나리 녹즙이 간에 좋다'는 글을 접했다. C씨는 아침마다 돌미나리 녹즙을 한 컵씩 마시기 시작했다. 맛이 역한 녹즙을 마시는 건 곤욕스러웠다. 그래도 '간에 좋다는데 이 정도 고생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출근 전엔 어김없이 녹즙을 들이켰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C씨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돌미나리 녹즙이 간에 좋다는 게 정말일까?'

전 세계적으로 '웰빙 열풍'이 불면서 육류보단 채소 섭취를 권하는 사회가 됐다. 물론 끼니마다 채소와 과일을 챙겨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바쁜 현대인이 하루 권장량을 다 먹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이 때문에 주목을 받은 게 바로 '녹즙'이다.

국내 굴지의 녹즙 회사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내 녹즙 시장 규모는 2,500억원(2013년 기준), 정기적으로 녹즙을 마시는 소비자는 49만명이라고 밝혔다. 업체들이 내놓은 녹즙 종류도 다양하다. C씨가 먹고 있는 돌미나리 녹즙은 물론 민들레 명일엽 케일 약쑥 등 종류만도 수십여 가지다. 쓴맛을 줄이기 위해 당근이나 사과 등을 첨가한 혼합즙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녹즙을 꾸준히 챙겨 먹는 49만명은 건강을 위해 옳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걸까. 돌미나리 녹즙을 마시는 C씨의 간 건강은 좋아지는 걸까.

김윤준 서울대 의과대학 부교수는 "녹즙이 좋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면서 "특히 간이 안 좋은 사람일수록 녹즙이 안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윤준 교수는 C씨가 간 건강을 위해 돌미나리 녹즙을 챙겨먹는 건 의학적으로 무익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식물은 지구상에서 수억년을 살아남았습니다. 동물은 식물을 먹고 식물의 씨앗이나 종자를 퍼뜨립니다. 동물에게 다 먹혀버리면 식물이 멸종하게 되죠. 식물은 생각보다 정교한 보호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많이 섭취하면 독성을 나타나게 하는 것도 보호체계의 일종입니다. 적정량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섭취하는 건 식물에도 바람직하기 때문에 독성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면 녹즙을 마시는 것처럼 필요 이상으로 (식물을) 많이 먹게 되면 알칼로이드 때문에 독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김윤준 교수는 "채소 섭취도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그는 "뭐든 많이 섭취해서 좋은 건 없다"면서 "산소도 많으면 폐에 해롭다. 비타민도 없으면 사망에 이르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병을 유발한다"고 했다.

"설탕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들 하지만 아사 직전의 환자에게 설탕 한 줌을 주면 살아나죠. 뭐든 적당히 섭취하는 게 좋은 겁니다. 녹즙의 경우 적당한 양은 도움이 되겠지만 (녹즙으로 채소를 섭취하는 건) 안전하게 권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김진욱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부교수도 김윤준 교수와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김진욱 교수는 "오이나 양상추 등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음식이기 때문에 갈아서 즙을 내 먹어도 몸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흔히 먹지 않는 채소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잘 모르지 않나. 과량으로 섭취했을 때 간에 잠재적 위험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요법에 고양이를 먹으면 관절에 좋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의사들은 '어디엔 뭐가 좋다'고 얘기하지 않아요. 녹즙도 똑같습니다. 어떤 성분이 해독을 돕는다거나 만성간염의 염증을 가라앉힌다는 식으로는 얘기할 수 있지만 '뭘 갈아 먹어라'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녹즙은 식물을 고농도로 농축하는 겁니다. 식물을 잘게 갈아서 섬유소를 제거하는 거죠. 섬유소가 많으면 배가 부르기 때문에 특정 성분의 식물을 한 번에 많이 섭취할 수 없습니다. 녹즙을 먹는다는 건 특정 식물 세포에 녹아 있는 효용성분을 고농도로 섭취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식물을 고농도로 먹으면 이론적으로 문제가 없던 성분도 간에 잠재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녹즙이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이는 두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박건영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자칭 타칭 '녹즙 전도사'다. 박 교수가 사람들에게 녹즙을 권하는 이유는 '흡수율' 때문이다. 생채소를 먹으면 두세 시간에 17% 가량이 흡수되지만 생채소 즙을 마시면 10~15분에 67%의 흡수율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게르슨 연구소의 연구를 소개하며 녹즙의 이로움을 설명했다.

"미국에 게르슨 연구소에서 녹황색 채소 녹즙을 하루 16잔 마시는 연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암을 치료했습니다. 녹색 채소의 엽록소엔 항암 및 항산화 효과가 있습니다. 황색 채소의 카로티노이드에도 항산화 효과가 있죠. 게르슨 연구소는 녹황색 채소에 당근 사과를 섞어 즙을 냈는데 이 즙이 암에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이처럼 녹즙을 예찬한 박 교수도 사람에 따라선 녹즙이 안 좋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환자라든지 적응이 잘 안 되는 사람은 녹즙을 과량으로 마시는 건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박 교수는 "양배추처럼 부드러운 채소는 몸에 부담을 덜 주겠지만 센 채소는 약간 다르다"면서 "신선초가 몸에 굉장히 좋긴 하지만 알칼로이드 성분이 많아 녹즙으로 갈아 먹으면 간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마다 체질이 다르고 견디는 힘이 다르다"며 "특수한 녹즙을 먹다가 몸에 부담이 오면 끊거나 적게 먹는 식으로 양을 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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