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사실상 포화 상태인데 한의사는 계속 늘어 수입 급감
한의원, 의원보다 폐업률 높아… 홍삼 인기 끌자 매출 떨어져

한방 의료 공급 과잉 현상이 심화하면서 폐업하는 한의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12년차 한의사인 O(38)씨는 월급제 한의사다. 지방 한의대를 졸업한 후로 계속 광주에서 봉직의로 일하고 있다. 월급은 500만원. 적진 않은 돈이지만 대신 일주일에 세 번씩 밤 9시까지 야간 진료를 해야 한다. O씨는 "이른 오전이나 밤 늦은 시간 아니면 친구들과 전화통화하기도 힘든 생활을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면서 "힘들지만 개원해서 망한 동문들을 보면 한의원을 낼 생각이 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한의사들 형편을 알지 않느냐. 우리 한의원도 사정이 좋진 않다"면서 "원장이 언제 월급을 깎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한의사들이 갈수록 먹고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내온 '2014년 6월 말 요양기관 현황'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한의원은 모두 1만3,338곳이다. 신규 등록은 70곳, 재등록은 40곳이고 폐업 신고서를 낸 곳은 77곳이다. 전달보다 33곳이 순증했다. 의원 수는 2만8,673곳이다. 신규 등록은 77곳, 재등록은 59곳이고 폐업한 의원은 132곳이다. 모두 38곳이 전달보다 늘었다.

환자 수요가 훨씬 많은 의원의 경우 그 수가 한의원의 2배 이상이지만 신규 등록한 곳은 한의원과 엇비슷하다. 반면 폐업률은 한의원이 의원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한방 의료 공급 과잉 현상이 심화하면서 한의사들이 갈수록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14년 전과 비교하면 한의사들이 얼마나 힘든지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00년 한의원 개수는 7,243곳. 14년 만에 무려 2배 가까이 한의원이 늘어난 셈이다. 사실상 포화 상태지만 현재도 매년 850~900명의 한의사가 배출된다.

경쟁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때문에 문 닫는 한의원이 점증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2002년 폐업 한의원은 503곳이었지만 지난해엔 828곳이나 문을 닫았다. 한의대 위상도 떨어질대로 떨어졌다. 서울의 유명 한의대가 지방 의대보다 지원 점수가 낮은 게 한의사들의 떨어진 위상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돈 많이 벌기로 유명한 직업이었던 한의사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놓이게 됐을까.

일산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P씨는 "홍삼이 유행하면서 한의사들이 힘들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초부터 홍삼이 급속하게 인기를 끌자 한의원이 치명타를 입었다면서 홍삼이 한국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알려지며 한의사 생계를 위협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 홍삼 시장은 연간 1조2,000억~1조3,000억원대다. 2000년 이후 매년 10~20% 성장하는 홍삼이 유행하며 한의원을 찾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었다고 P씨는 말했다.

한의학계는 홍삼 부작용 문제를 놓고 홍삼업계와 격돌하고 있다. 젊은 한의사단체인 참의료실천연합(참실련)은 홍삼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신문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참실련은 광고에서 유럽은 홍삼 복용량을 하루 2g으로 제한한다면서 고혈압 심장질환 불면증 불안감 등의 부작용 사례가 있다고 경고했다. 또 노인 임산부 어린이들은 복용에 각별하게 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한의대는 홍삼 인기에 편승해 자체 브랜드로 홍삼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홍삼 시장의 70%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한국인삼공사의 관계자는 "홍삼 때문에 한의사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한의사들이 너도나도 홍삼을 공격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발기부전 치료제도 한의원 매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알리스 비아그라 등으로 대표되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한방 발기부전 치료제를 대체하면서 한의사들의 수입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비아그라 특허가 풀리자 한국의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비아그라 복제약만 90여개가 출시돼 있을 정도다. 지난해 시장 규모는 1,200억원. 매년 7%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다 2012년부터는 10%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짝퉁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 규모도 정품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약값이 저렴해져 접근성이 좋아지는 만큼 한방 발기부전 치료제가 앞으로도 힘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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