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워터파크, 성추행 사건 대응 매뉴얼조차 없어

전문가 "일단 신고해야 추가 성추행 막을 수 있다"

# 여고생 A양은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워터파크를 찾았다가 끔찍한 일을 겪었다. 워터파크의 백미로 불리는 인공 파도 풀에서 일이 벌어졌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파도를 기다리던 A양은 인공파도가 치는 순간 누군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느낌을 받았다. 추행은 세 차례가량 이어졌다. 처음엔 사람이 많아 우연히 닿은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정확히 A양 몸을 노린 손길이었다. 함께 간 친구에게조차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하지 못한 A양은 집에 돌아와서도 수치심으로 한참을 괴로워해야 했다.

# 직장인 B씨는 얼마 전 워터파크에서 깜짝 놀랄 광경을 목격했다. 인공 파도 풀 안에서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남성을 발견했다. 처음엔 ‘인공 파도를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상해 자세히 봤더니 파도가 칠 때마다 여성들 옆으로 다가가 잠수를 하고 있었다. 그가 잠수를 하면 어김없이 옆에 있던 여성들이 당황하는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신고하고 싶었지만 직접 당한 일도 아니고 증거도 없어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B씨는 문득 자신도 겪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온라인 커뮤니티에 ‘워터파크 성추행’ 경험담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대부분 사람이 북적대는 풀장 안에 들어갔다가 피해를 당한 경우였다.

피해 사례는 다양하다. 잠수하며 여성의 주요 부위를 만지는 성추행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노골적인 수준의 성추행도 있었다. 몇몇 성인 사이트에선 성추행 예고 글이나 성추행에 성공했다는 인증 글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단 여성의 문제만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성추행을 당해 불쾌했다는 남성도 많았다.

워터파크 성추행 문제에 대해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워터파크 성추행을) 사소한 문제로 여기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여름철 워터파크에선 성추행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내 기억에 딱 떠오를 만한 사건이 없다. 왜 그런가 생각하니 관련 기관과 상담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피해 글이나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댓글이 많은 걸 보면 피해자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런 일(성추행)을 당해도 상담기관에 상담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거나 문제 삼지 않다 보니 더 많은 가해자가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최씨는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이유가 다양하다고 분석했다. “누군가는 놀러가서 기분을 망치기 싫어 크게 문제를 삼지 않고 넘어가는 게 낫다고 여긴 걸 수 있고, 누군가는 너무 수치스러워 얘기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기자가 워터파크에서 성추행을 당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묻자 최씨는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신고해야 한다. 가해자를 특정하는 건 경찰들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신고만 해도 또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서 “나 혼자만의 문제거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범죄라는 인식을 갖고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워터파크는 성추행 피해가 발생할 때 어떻게 대응할까. 매뉴얼은 갖고 있을까?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워터파크를 운영하고 있는 C업체의 관계자는 “성추행이 의심스럽거나 성추행을 당했을 때 가장 가까운 안전요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면서 “현장에 경찰이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입장 게이트 바로 옆에 지구대가 있어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었다.

그러나 별다른 매뉴얼이 없는 업체도 있었다. O업체 관계자는 “별다른 대응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성추행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지목하거나 가해자를 잡아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면서 “(가해자를) 확인하지 못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고객이 요청하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눠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데, (가해자가) 대부분 (성추행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가 중재하기 어려워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처리한다”고 했다. 똑같이 돈을 내고 이용하는 고객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게 O업체의 주장이었다.

최란씨는 워터파크가 성추행 사건에 책임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워터파크에는 안전관리 요원만 있는데, 안전관리 요원이 성폭력을 예방하는 업무까지 맡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워터파크 자체적으로 성폭력 예방을 위한 인력이나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워터파크들이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최씨는 “성추행은 안 걸리면 그만인 행위가 아니라 범죄다. 최근 성폭력 범죄의 양형도 높아졌다”며 “놀러가서 흥미로 장난으로 할 일이 아니라는 걸 (가해자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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