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일부일처제에 반하는 중혼 안돼”

자식 7명을 두며 47년을 함께 산 남편 A씨가 사망한 후 B(73)씨는 A씨의 본부인 C(85)씨로부터 혼인취소소송을 당했다. 알고 보니 A씨는 1945년 C씨와 결혼해 1남 3녀를 둔 유부남이었다. A씨는 1962년 자신의 생년월일 등 인적사항을 변경해 새로 호적신고를 한 뒤 B씨와 다시 혼인신고를 해 7녀를 두기까지 했다. B씨는 남편이 자신과 이중결혼을 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후 C씨는 2009년 10월 B씨를 상대로 혼인취소소송을 제기했고 1·2심은 "전혼이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는 상태에서 A씨와 B씨의 혼인은 허위 호적을 기초로 성립된 후혼이며 중혼에 해당하므로 취소한다"고 C씨의 손을 들어줬다. B씨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법원에 상고한 B씨는 중혼을 혼인취소사유로 둔 민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2011년 10월 직접 헌법소원을 냈다.

B씨는 “중혼을 혼인 취소사유로 규정하면서 취소청구권의 소멸사유나 제척기간을 두지 않아 당사자는 언제든지 혼인취소를 당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면서 “이는 후혼 배우자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고 호소했다.

현행 민법 810조와 816조는 배우자가 있는 자는 다시 혼인할 수 없으며 이에 해당할 경우 법원에 혼인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중혼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B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헌재는 29일 B씨의 청구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중혼의 취소를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하거나 소멸사유를 두지 않은 민법규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중혼은 일부일처제에 반하는 상태로, 언제든지 중혼을 취소할 수 있게 한 것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유지o보장 의무 이행에 부합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중혼 취소청구권의 권리소멸사유 또는 제척기간을 규정하면 중혼임을 알고 후혼관계를 형성한 배우자까지 보호하는 부당함을 낳게 된다”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중혼취소청구권의 제척기간이나 소멸사유를 둔 예를 찾기 어렵다. 이것이 입법재량의 한계를 벗어나 후혼배우자의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한편 일부다처제 관습법을 허용하는 케냐 의회는 지난 3월 본부인의 동의 없이 중혼이 가능한 혼인법 개정안을 가결해 관심을 끈 바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