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기다리고 있었는데… 해경은 손 닿는 거리에서 바라만 봐"

“선실에서 나와보니 비상구로 향하는 복도에 친구들 30여명이 줄을 선 채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구조대가 오지 않아 한 명씩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내가 뛰어든 뒤 파도가 비상구를 덮쳐 나머지 10여명의 친구들은 빠져 나오지 못했어요.”

숙연한 법정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세월호 4층 선미 쪽 왼편 SP1 선실에 머물던 A양은 배가 침몰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배에서 구조를 기다렸지만 승무원과 해경의 도움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열린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공판에서 단원고 생존학생 6명이 처음 증인으로 나서 사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생존학생들의 입으로 직접 듣는 당시의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A양은 이날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90도로 섰다"며 "옆에 있던 출입문이 위로 가 구명조끼를 입고 물이 차길 기다렸다가 친구들이 밑에서 밀어주고 위에서 손을 잡아줘 방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의 공포스러운 상황을 떠올리며 “정말 진짜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A양과 같은 선실에 있던 B양 등 4명도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 A양과 같은 방법으로 탈출했고 이 과정에서 승무원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세월호 선내 방송은 ‘움직이면 위험하니 대기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탈출하라는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 등을 밟고 많은 인원이 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B양은 "해경은 손 닿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지만 비상구에서 바다로 떨어진 사람들을 건져 올리기만 했다"며 "비상구 안쪽에 친구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는데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친구를 만나러 선체 중앙 왼편 B22 선실에 갔던 C양도 “배가 기울어져 위쪽에 위치한 오른편 선실에서 누군가가 커튼으로 만든 줄을 던져줘서 탈출했지만 도움을 준 사람이 승무원이나 해경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승무원이나 해경의 도움을 받지 못한 상황이 드러난 셈이다. 이들 학생들은 증언을 마치면서 재판부를 향해 승객을 버리고 먼저 배에서 탈출한 승무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 또 친구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밝혀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대부분 안산에 거주하며 사고 후유증으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지난달 24일 그동안 재판이 열린 광주가 아닌 안산에서 재판을 열기로 결정한 바 있다. 또 학생들의 심리상태를 고려해 증인석에 친구 등이 동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재판부는 오는 29일에도 생존학생 17명에 대한 증인신문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날 법정에는 이준석 선장 등 피고인들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으며 재판부의 비공개 결정에 따라 학생 가족과 취재진 등 10여명만 재판을 지켜봤다. 법정 주변에는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의료진과 119 구급대원 등이 대기했으며 법원은 학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침대와 테이블 등이 놓인 휴게실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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