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신내역에 '몰래카메라 촬영 주의 지역'이라는 입간판이 등장했다. (사진=이선아 기자)
서울 지하철 연신내역에 '몰래카메라 촬영 주의 지역'이라는 입간판이 등장했다. 환승역으로 유동인구가 많다 보니 '몰카 범죄'가 심심찮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입간판에는 '이곳은 몰래카메라 촬영 주의지역으로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주의를 기울여주길 바란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 20대 여성은 "여기만 오면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가방으로 뒤를 가려도 불안하다"며 "괜히 뒷사람을 잠재적 성추행범으로 보는 거 같아 미안하기도 하지만 섬뜩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어 항상 뒤를 조심한다"고 말했다.

실제 26일 오전 출근길 이곳을 지나친 여성 승객들은 '몰카 주의'란 입간판을 보고는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고치거나 주위를 한 번씩 돌아보고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짧은 치마나 노출이 심한 의상을 착용한 여성 승객들은 한결같이 들고 있던 가방이나 핸드백을 뒤로 돌려 치마를 가리려고 애썼다.

입간판을 본 남성 승객들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바닥만 응시하며 걷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괜한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은 아예 하지 않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실제 휴대폰을 들고 걷다가 입간판을 본 후 휴대폰을 얼른 주머니 속에 넣는 남성 승객도 있었다. 이처럼 이곳의 분위기는 여느 지하철 역사와는 달랐다. 입간판 한 개를 설치한 데 따라 남녀 승객 모두가 몰카 범죄에 주의하고 있는 것이다.

'몰카 1번지'로 불리는 서울역 중앙 에스컬레이터는 하루 2, 3건씩 몰카 범죄가 발생하는 등 소문난 지역이다. 지하철 1, 4호선과 경의선, 공항철도 등 다양한 노선이 지나가는 만큼 유동인구도 많아 범죄 빈도가 그만큼 높다. 더구나 에스컬레이터 길이가 여느 역보다 길다는 점에서 여성 승객들을 노리는 몰카범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경찰들의 눈도 이곳에서는 더욱 매섭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관계자는 "서울역뿐 아니라 강남역, 신도림 등 환승역에서 몰카범이 단속된 경우가 많다"면서 "경찰들도 항상 이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나 출퇴근길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몰카 행위가 이뤄지더라도 검거가 쉽지는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6월 19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몰카 범죄는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다. 2009년 807건에서 2010년 1,134건, 2011년 1,523건, 2012년 2,400건으로 아직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스마트폰의 보편화도 몰카 범죄가 느는 데 한몫했다.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몰래 촬영할 수 있고, 의심의 눈초리도 덜 수 있다. 몰카 범죄를 막기 위해 스마트폰에 카메라 효과음을 의무화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찰칵' 소리에 뒤돌아 봐도 누가 찍었는지 알기 힘들다. 무음으로 촬영 가능한 애플리케이션도 쉽게 다운받을 수 있어 범죄 우려가 크다.

'몰카범'의 직업은 다양하다. 학생, 회사원, 전문직, 무직 등 편향된 직업이 없다. 멀쩡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도 몰카의 재미에 빠지면 충동적으로 계속 저지르는 게 문제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이들이 충동조절에 실패해 지속적으로 몰카 범죄를 저지른다고 보고 있다. 몰카범으로 검거되도 재범, 삼범으로 악순환이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지하철경찰대 관계자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을 때는 여성들이 스스로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며 "처벌받은 후에도 정신을 못차리는 몰카범들이 많다. 여름마다 더 활개를 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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