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 정복 단추 다는 문제로 완전군장으로 연병장 뛰어
가혹행위 지속 증언… 공군측 순직아닌 일반 사망 결론
김 일병 아버지 "명예회복은 관계자 형사 처벌과 사과"
표창원 "단순 일반 사망 처리한 과정 명백하게 밝혀야"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소속이던 김지훈 일병은 지난해 7월 목숨을 끊었다. 당시 헌병대 조사결과 김 일병의 죽음은 순직 처리로 의결했으나 공군본부는 일반 사망으로 처리했고 유족들이 반발하고 있다. (사진=한국아이닷컴DB/이혜영 기자)
‘김지훈(당시 22세) 일병 사망 사건’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공군은 단순 자살로 결론지었지만 유족들은 직속상관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김 일병이 사망했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김 일병 사건은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첫 중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서울공항으로 귀국한 때와 겹치며 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지난해 7월 1일 새벽 4시쯤 경기 성남시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 김 일병이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일병이 소속된 비행단은 서울공항을 관리 운영을 맡았는데, 김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날엔 첫 중국 방문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하는 박 대통령을 위한 의전행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날 제15비행단 단장 허모 준장은 대통령 영접행사에 지각했다. 부관인 A중위가 허 준장의 정복 단추를 다느라 대통령이 예정보다 빨리 도착한다는 내용의 휴대전화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서울공항을 떠나자 A중위는 "단합이 안 된다"는 이유로 병사들을 집합시켰고, 정복 관리를 해야 했던 김 일병에게 의전행사 실수의 화살을 돌렸다. A중위는 정복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김 일병에게 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 10바퀴를 돌라고 명령했다.

이후 김 일병은 수첩 여섯 장 분량의 메모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일병이 비행단 보급대대에서 본부단장실 행정병으로 보직을 변경한 지 40여일 만이었다. 헌병대 조사 결과 김 일병은 당시 지속적인 질타와 지적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단장실 선임이었던 김모씨는 헌병대 조사에서 "A중위가 '외울 것을 못 외웠다' 등의 지적을 배속 이틀째부터 시작해 사망 전날까지 매일 질책했다"고 진술했다.

김 일병 사망 2개월 후 5비행단은 "업무상 실수로 인한 동기부여 행위가 사망자에게 가혹행위에 준하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식될 수 있다"며 공군본부에 순직 처리를 요청했다. 국군수도병원 정신과 전문의도 "유서 내용상 심리 상태가 불안정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첨부된 자료만으로 군입대 전 정신질환을 추정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소견을 제출했다.

그러나 김 일병 아버지 김경준(54)씨는 지난 1월 공군본부로부터 아들의 죽음이 '일반 사망'으로 처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600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는 통보도 받았다. 공군본부는 "구타·폭언 또는 가혹행위 등은 없었으며, 무장구보 등은 군인으로서 통상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면서 "입대 이전부터 있었던 병리적인 성격이 자살에 이르도록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공군 측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 그는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아들의 죽음 직후부터 오직 아들의 명예 회복을 원해왔지만 공군본부가 순직이 아닌 일반 사망 결론을 통보한 다음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면서 "지훈이의 명예회복은 필요 없다. 지훈이 명예회복의 전제는 허 단장과 A중위의 형사처벌이고 두 사람의 사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아들의 사고 직후부터 일방 사망 통보를 받을 때까지 수사 진행과정을 공개하라고 공군 측에 요청했지만 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항을 밝힐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김씨 요청을 묵살했다. 김씨는 결국 정보공개를 청구해 지난 4월에서야 김 일병이 사고 발생 5일 전 정신과 외래 진료를 의뢰했고, 완전군장한 채 연병장을 돌았다는 등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회자가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라고 묻자 김씨는 "단장 정복에 단추를 달아야 했던 지훈이가 익숙하지 못하자 A중위가 단추 달기를 대신하다가 전화를 못 받고 단장이 지각해 아들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군 측이 아들에게 지속적으로 가혹행위를 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언이 굉장히 많다"면서 "지난 6월 20일에는 지훈이를 혼자 완전군장시켜 연병장 10바퀴를 뛰게 했고, 6일 뒤에도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완전군장 명령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아들에게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공군 측 주장에 대해서는 "부관병을 뽑을 때 그 단장이 직접 다섯 명 중 한 명을 선발했다'면서 "(지훈이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부관병으로) 뽑은 자체도 문제가 된다"고 일축했다.

김 일병은 군대에 오기 전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 고려대 경제학과에 함께 다니던 친구들도 김 일병에 대해 '사려 깊고 똑똑한 친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씨는 "보급부대 동료들의 진술과 부대를 옮기고 난 뒤의 부대원들의 진술이 너무나 극명하게 갈린다"며 "보급부대에 있는 친구들은 지훈이에 대해서 '너무나 명랑하고 밝고 예의바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새 부대의 친구들로부터는 '왠지 모르지만 늘 어둡고, 우울하고, 늘 잠을 잔다. 처음 왔을 때는 밝은 친구였고 괜찮았는데 점점 변해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같은 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한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너무 가슴 아픈 건 김 일병의 죽음에 대해 모든 것을 드러낼 경우 오히려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에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인식"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김 일병의 부모님을 속이고 기만하고 결과적으로 관계자 몇 명의 이익을 위해서 김 일병의 사망을 단순 일반 사망 처리한 과정이다. 이런 부분들은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표 소장은 김 일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허 단장과 A중위가 사고 이후에 진급하고 영전한 데 대해서는 "이 사고와 관련성이 대단히 직접적이라고 볼 수 있다"며 "순직 처리할 경우 원인 제공자가 나와야 하고 두 사람의 지휘관 문제가 나온다. 이 분들은 진급을 눈앞에 둬서 진급 때까지 (김 일병 순직 처리를) 늦춰보자는 심리가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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