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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노스동화] 꽃잎처녀와 호롱총각 마을
  • 기자 승인시간승인 2018.12.13 19:26
고위 공무원 출신 최민호 작가의 심금을 울리는 동화 이야기
  • 사진= 미노스 제공
1. 꽃잎처녀와 호롱총각 마을

한 마을이 있었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집집마다 꽃을 가꾸었답니다. 온갖 색깔의 향기로운 꽃을 가꾸었답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묘하고 귀한 꽃을 가꾸었답니다. 꽃에서 향기롭고 맛있는 꿀을 만들었답니다. 이 마을의 꽃과 꿀은 매우 귀해서 마을은 풍요로웠답니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들판마다 아름다운 꽃이 넘치고, 벌과 나비가 훨훨 날며 잉잉대는 이 마을에 들어오면 모두들 낙원에 온 것처럼 행복해했답니다. 꽃향기로 가득했고, 사시사철 피는 꽃으로 철따라 마을색깔이 바뀌었답니다. 마을에 들어서면 꽃을 심은 것이 아니라 꽃 속에 마을을 심은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꽃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라 생각했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꽃을 사람이라 여겼답니다.꽃모양이 다른 것은 꽃이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고, 꽃향기가 다른 것은 향내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였으며, 꿀맛이 다른 것은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답니다. 음악을 들려주면 곱게 자라고, 험한 말을 들려주면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은 듣기 때문이라 생각하였답니다. 꽃에도 눈과 귀와 코와 혀가 있고 마음이 있다고 여겼답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생명은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꽃이 있어 씨가 있고, 씨가 있어 열매가 있고, 열매가 있어 생명이 있다고 믿어 꽃을 생명의 근원이라 믿었답니다. 정성껏 꽃을 돌보고 꿀과 열매를 따는 사람들은 꽃처럼 선했답니다.

꽃은 여자들이 가꾸었답니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꽃을 화분에 심었답니다. 그리고 그 화분을 담장 위에 올려놓았답니다. 딸이 셋이면 담장 위에 서로 다른 예쁜 꽃 화분이 세 개가 올려졌답니다. 딸들은 자신의 화분을 정성껏 돌보았답니다. 꽃이 곧 자신이기 때문이었답니다. 사람들은 담장 위의 꽃 화분을 보고 그 집 딸을 보는 양 얼굴에 미소를 지었답니다.

집집마다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귀한 차가 있었답니다. 꽃차와 꿀차였답니다. 차의 맛과 향기는 그 집의 가풍을 알 수 있는 맛과 향으로 여겼답니다. 꽃은 그들의 생명이었답니다.

2.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마을은 서서히 모습이 변했답니다. 낮에는 꽃이 만발한 꽃마을이지만,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호롱불이 아롱다롱 빛나는 불빛 마을이 되었답니다.

호롱불은 담장위에, 골목길에, 그리고 지붕위에서 빛났답니다. 구름이 없는 밤이면 마을은 달빛, 별빛, 호롱불빛이 밤을 밝히며 수놓았답니다. 불빛은 집집마다 빛깔이 달랐답니다. 불을 밝히는 기름에 따라 색깔이 달랐기 때문이었답니다. 낮에는 꽃이 아름답던 마을이 밤에는 불빛으로 아름다웠답니다.

호롱불은 남자아이들이 밝혔답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에게 호롱을 선사했답니다. 아이의 성격과 꿈에 맞는 호롱을 만들어 문설주에 걸고 밤을 밝혔답니다. 책모양이 새겨진 호롱, 활모양으로 만들어진 호롱, 지팡이 모양의 호롱들이 집집마다 빛났답니다. 호롱을 보면 사람들은 그 집에 어떤 아들이 자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불빛을 지혜라고 생각했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힐 뿐만 아니라 호롱으로 불을 밝혀 책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믿었답니다. 책에는 사람이 살아온 역사나 가볼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 지혜로운 사람들의 생각, 오지 않은 미래에 사는 예지가 담겨 있어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이치를 알 수 있다고 믿었답니다. 책이 사람이라 믿었고 사람이 책이라 믿었답니다.

호롱불을 들고 이웃집에 찾아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신기한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 영웅들의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답니다. 그들은 호롱불과 책이 없는 방은 방이 아니라고 믿었답니다. 책은 그들의 생명이었답니다.

3.

마을 뒤에는 숲이 있는 공원이 있었답니다. 잎새 사이로 구름이 보이고, 구름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카펫처럼 깔린 잔디밭에 고목들이 가지를 드리워 가지사이로 맑은 호수와 앉아 쉴만한 의자가 보이는 아름다운 공원이었답니다. 낮에는 울긋불긋 피어나는 꽃으로, 밤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로 공원은 사랑을 받았답니다.공원을 둘러싼 숲은 그윽하고 호젓하여 그 고요함으로 인해 마음의 안식을 구하고, 건강의 치유를 얻을 수 있었답니다.

숲속에서는 언제나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답니다. 아침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가, 낮에는 햇빛에 부딪쳐 속삭이는 이파리들의 합창이, 저녁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대나무가지들의 경쾌한 연주가 쉼표가 가득한 음악이 되어 들려왔답니다.

마을의 처녀와 총각들은 이 공원의 숲속에서 사랑을 고백하였답니다. 젊은 처녀와 총각은 사랑을 고백하는 전통과 기품을 잊지 않았답니다. 어느 날, 담장 위에 놓인 꽃 화분 하나가 슬그머니 없어진답니다. 그것은 어느 총각이 그 처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랍니다. 꽃 화분이 없어진 처녀는 그 이튿날 밤, 공원의 숲에 나타난답니다. 그 때 호롱불을 든 어떤 총각이 살며시 다가온답니다. 사랑을 고백하고자 온 총각이랍니다. 처녀와 총각은 서로의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답니다. 그렇게 사흘 저녁을 함께 이야기를 나눈답니다. 서로가 맘에 들지 않으면 안 나타나면 그만일 뿐, 아무도 알 수 없고 알려지지도 않는답니다.

사흘 동안 만나 마음에 들면 그 다음은 낮에 만난답니다. 어느 날 총각의 엄마가 처녀의 집을 방문한답니다.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만나 세상의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답니다. 엄마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답니다. 우리 집 아들이 댁의 따님을 좋아하니 허락할 수 있느냐라는 다짐의 만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내색하지 않고 처녀의 엄마는 스스로 만든 차를 정성껏 대접한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들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처녀의 엄마는 차를 한 잔 더 권한답니다. 찻잔 속에 답이 있답니다.차 속에 꿀이 들어있으면 허락이랍니다. 꿀이 들어있지 않으면 거절이랍니다. 호롱총각의 엄마는 차를 마시면서 꽃잎처녀 엄마의 꿀맛으로 답을 듣고 간답니다. 품위와 예의를 지키며 엄마들은 헤어진답니다.꿀이 들어 있는 차를 마신 총각의 엄마와 처녀의 엄마는 그때부터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답니다.

  • 꽃잎처녀과 호롱총각 [삽화=서동주]
4.

결혼식은 온 마을 잔치로 올린답니다. 신랑과 신부는 왕과 왕비의 옷차림을 하고 결혼식 날은 왕과 왕비가 된답니다. 어떤 사람도 왕과 왕비가 탄 가마를 방해할 수 없으며 어떤 실수도 이날만은 용서된답니다.

이웃과 친구들과 오해가 있거나 사이가 나쁜 일이 있었다면, 이날 모든 것을 고백하고 화해한답니다. 결혼식은 모든 잘못을 깨끗하게 청산하고 축복 속에 시작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랍니다.신랑신부의 허물을 다 용서하고 마음의 빚을 청산해 준답니다. 신랑신부 또한 결혼하기 전의 잘못을 이날 다 용서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답니다.

신부에게는 훗날 집안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꽃과 씨앗을 선물하고, 신랑에게는 장래 명예와 긍지를 얻을 책을 선사한답니다.낮에는 꽃 잔치, 저녁에는 호롱불 잔치가 이어져 밤늦도록 계속된답니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는 신혼여행을 떠난답니다. 사람들은 가족의 사랑을 생명이라 믿었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마을의 아들, 딸이라 여겨 온 마을이 아기를 길러준답니다. 낮에는 어린이 집에 모여 마을의 엄마들이 순서를 정해 돌보아주고, 저녁에는 엄마 아빠의 품에서 잠을 잔답니다. 아기들은 어릴 때부터 온 마을의 엄마들과 친구들과 가족이 되어 자라나, 외롭고 괴로울 때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게 된답니다.

아이들은 철이 들 때까지는 하늘이 보낸 천사로 생각하여 축복과 칭찬으로 보살펴 준답니다. 그렇지만, 철이 들면 지옥으로 떠날 전사로 여긴답니다. 그때부터는 엄한 단련을 시킨답니다. 그것은 여행이랍니다. 여러 해 여행을 떠나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의 외로움과 주변에 사람이 많을 때의 괴로움을 맛보게 한답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이란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답니다.인생이라는 고해의 바다에서 풍파에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을 기른답니다. 이렇게 자란 청년이라야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이 된다고 믿는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생명이 하나가 아니라고 믿었답니다. 때로는 명예를, 때로는 정의를, 때로는 양심과 가치를 생명으로 여겼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공동체의 생명이라 여겼답니다.

5.

마을 한복판에는 시장이 있어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을 다하여 만든 진기한 물품들이 거래되고 있었답니다. 시장에서는 새로운 물건과 재능이 화제가 되었으며, 그것으로 인기와 명예와 부를 얻었답니다. 이 진기하고 상상이 넘치는 시장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젊은이들의 새로운 생각과 물건, 그리고 예술품을 사가곤 했답니다. 시장은 늘 활기가 넘쳤답니다.

언덕 위 광장에는 학교가 서 있었답니다. 학교에서는 책을 많이 읽은 지혜롭고 존경받는 분이 선생님이 되었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명철함이 있어 온 마을 사람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랐답니다. 학교에서는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가르쳤답니다. 좋은 것보다는 옳은 것을 행하라는 가르침에 사람들은 지혜로워졌답니다.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훌륭한 의견을 말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답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그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행하는 지도자를 마을 사람들은 가장 존경했답니다. 이 어른들을 마을의 생명이라 여겼답니다.

6.

꽃을 생명이라 여기고 책을 생명이라 여기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인내와 열정을 생명이라 여기는 이 마을...

젊은이들의 상상력이 만발하는 시장과, 옳고 그른 것을 가르치는 학교를 미래의 생명이라 여기는 이 마을...

정원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고, 이야기를 나누는 호롱불이 없는 방은 방이 아니며, 사랑과 용서가 없는 부부는 부부가 아니며, 배려와 책임이 없는 어른은 어른이 아니라는 믿음을 생명처럼 간직하며 살아온 이 마을....

꽃잎처녀와 호롱총각이 사는 이 마을은 늘 평화와 행복이 넘쳐흘렀답니다. 그렇지만 다른 마을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강하고 단단한 마을이었답니다.

  • 미노스 단편 작가 최민호.
■ 미노스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습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차관급 고위직을 세 자리나 거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입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도쿄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교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습니다.

공직 퇴임 후 고려대·공주대 객원교수, 배재대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홍익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퇴임 후, 어린 손녀들에게 들려줄 동화를 만들어 달라는 딸의 부탁에 따라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 주다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새움출판사)”라는 단편소설과 동화가 있는 이야기책을 출간, 동화작가로 데뷔했습니다. 뛰어난 상상력과 유려한 문체가 돋보여 공직자에서 문필가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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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12/13 19:26:41 수정시간 : 2018/12/13 19: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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