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무원에서 동화작가로 변신한 미노스의 따뜻하고 감성적인 동화이야기

사진= 미노스 제공

고위 공무원 출신 최민호 작가의 심금을 울리는 동화 이야기 미노스 단편 및 동화를 연재합니다. 대화보다 스마트 폰의 일회용 이야기에 열중하는 젊은 세대, 시간이 갈수록 멀어지는 가정과 가족, 부서지고 쪼개져 무너져가는 세대간의 이해와 소통. 모두가 고독으로 내몰리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럴때 일수록 온 가족이 함께 읽는 따뜻한 이야기가 그립고 필요하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데일리한국은 이같은 취지로 미노스의 특선 단편과 동화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미노스의 아름답고 맛깔나는 동화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미노스는 차관급 고위 공직자에서 작가로 변신한 최민호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필명입니다. <편집자 주>

#달팽이, 다람쥐 그리고 매

1. 미나리 밭에 엄마 흰 달팽이와 새끼 흰 달팽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엄마, 엄마, 여기 미나리 먹어봐. 정말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미나리는 이제까지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치 엄마?”

엄마 달팽이가 말했습니다.

“오. 그래 그래 많이 먹으렴. 정말 맛있구나.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엄마, 엄마, 나도 미나리 많이 먹으면 아빠처럼 클수 있을까?”

“그럼. 미나리를 많이 먹어야 아빠처럼 큰 달팽이가 된단다.”

“아, 어서 미나리 많이 먹고 어른이 되었으면...”

미나리 밭은 넓었습니다. 흰 달팽이는 끈끈한 점액으로 미나리 잎에 붙어서 머리 위에 나 있는 작고 부드러운 뿔로 맛있는 잎사귀를 골라 야금야금 갉아먹었습니다. 달팽이는 눈도 귀도 없었습니다. 더듬이로 잎사귀를 찾았습니다. 미나리 잎은 얼마든지 있어서 달팽이는 아무런 걱정 없이 미나리 잎을 먹고살았습니다.

“엄마, 엄마, 우리는 왜 미나리 밭에 살고 있어? 먹을 것은 미나리 밖에 없는 거야?”

엄마 달팽이는 새끼 달팽이에게 대답했습니다.

“왜 미나리 밭에 사느냐고? 우리가 미나리 밭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렇지.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미나리 밭에서 태어나 살아왔단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사는 것이란다. 세상은 미나리 밖에 먹을 것이 없단다. 이렇게 맛있는 미나리를 마음껏 먹고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니... 우리는 정말 행복한 달팽이란다. 그렇지?”

엄마 달팽이는 뿔 위에 있는 작은 더듬이로 새끼의 더듬이를 어루만지며 사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새끼 달팽이는 미나리 말고 다른 잎사귀는 없을까도 궁금했지만, 아무리 더듬어도 미나리밖에 만져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미나리를 먹으며 천천히 움직이다 보면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반갑게 더듬이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느 미나리가 맛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미나리 잎을 찾아 먹을 때는 다시 없이 행복했습니다. 욕심 많은 달팽이를 만나 다투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는 달팽이도 있었습니다. 그만 잎에서 떨어지는 일도 종종 있었던 것입니다. 새끼 흰 달팽이는 오늘도 더듬더듬 두 개의 더듬이로 미나리 잎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2.

미나리 밭 옆에 작은 숲이 있었습니다. 도토리나무, 잣나무, 대나무, 밤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숲 속에는 다람쥐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도토리를 먹고 있던 새끼 다람쥐가 나무 아래 미나리 밭을 내려다보면서 엄마 다람쥐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 저기 미나리 밭 좀 보아요. 미나리 밭에 있는 달팽이는 왜 미나리만 먹어요? 미나리 밭 옆에 우엉밭도 있고, 당근밭도 있는데... 미나리가 우엉이나 당근보다 맛있어서 그런가? 당근 밭에도 달팽이가 많이 살아요. 금색 줄무늬가 있는 저 달팽이 좀 봐요. 흰 달팽이보다 훨씬 통통하고 아름답잖아요. 우엉밭에 사는 검은 달팽이도 그렇고... 흰 달팽이는 왜 미나리만 먹지?”

엄마 다람쥐가 새끼 다람쥐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 네 눈에 그런 것이 다 보이는 걸 보면 많이 컸구나. 달팽이는 눈과 귀가 없어서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없어서 그렇단다. 저것 보아라. 옆에 싱싱한 잎이 많이 있는데, 작은 이파리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잖니? 우리는 나무 위에서 보니까 달팽이 앞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 있지만, 달팽이는 그저 눈 앞에 더듬어지는 것밖에는 모른단다. 불쌍하기 짝이 없지.”

“저기 싸우고 있는 달팽이 있잖아요. 큰 놈이 나빠요. 제 것만 먹지 왜 작은 달팽이 것을 빼앗아 먹지요? 나빠요. 그래서 살이 저렇게 쪘나 봐요.”

“에구머니나. 얘. 얘.. 저것, 저것 좀 보렴. 보이니? 저 큰 달팽이 앞 이파리에 숨어서 도사리고 있는 참게 보이니? 큰일 났다. 큰일 났다. 어쩌면 좋아?..”

다람쥐 두 마리는 숨을 죽이고 달팽이에게 일어날 일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달팽이 두 마리는 이파리 위에서 두 뿔을 한껏 세우고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기회를 엿보던 참게가 두 눈을 껌벅거리며 노려보다가 날카로운 가위가 달린 앞발로 살이 통통하게 찐 달팽이를 잡아챘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입 속에 넣었습니다. 작은 달팽이는 놀라 그만 미나리 이파리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주변의 달팽이들은 이런 줄도 모르고 미나리 이파리만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쯧쯔쯔... 저렇게 눈을 못 뜨고 듣는 것이 없으니....무지한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단다. 자기가 무지한 줄도 모르고 잘났다고 싸우고 있는 것이 더 불쌍하지만...”

엄마 다람쥐가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새끼 다람쥐는,

“그래, 엄마 나무 위에서는 다 보이는데, 달팽이는 더듬이로만 만져지는 것이 세상의 다인 것처럼 사는 게 너무 불쌍해요.”

달팽이는 나무 위에서 다람쥐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파리를 갉아먹으면서 서로 많이 먹으려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당근 밭도 우엉 밭도 있고, 당근이나 우엉 이파리가 미나리 잎보다 더 맛있고 영양도 많은 것이라는 것은 알 턱이 없었습니다. 나무 가지 위에서 달팽이를 보며 혀를 차던 다람쥐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두 다람쥐는 달팽이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자기들이 달팽이가 아닌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습니다. 눈이 있어 멀리 볼 수 있고,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무 위 여기 저저 기를 뛰어다니며 온 숲 속을 다닐 수 있는 것을 대견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우쭐하였습니다.

3.

도토리나무 밑에서, 살쾡이는 아까부터 달팽이를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 다람쥐 두 마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며칠간을 벼르며 노려 왔던 다람쥐였습니다. 다람쥐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정신을 잃고 있습니다.

미나리 밭에서는 달팽이를 잡아먹느라 정신을 쏟고 있는 참게가 있었습니다. 살쾡이는 참게와 다람쥐 중 어느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람쥐는 덩치가 커서 잡기만 하면 며칠간은 먹이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여간 빠르지 않으면 놓칠 염려가 있었습니다. 참게는 잡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먹기가 사나웠습니다. 두 먹이를 놓고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람쥐가 부드럽고 맛있어 보였습니다. 군침이 돌았습니다. 크기도 적당했습니다. 더욱이 지금 두 마리는 달팽이가 잡아먹히는 것을 보느라 정신을 빼놓고 있었습니다. 살쾡이는 살금살금 발걸음 소리를 죽여 도토리나무를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람쥐는 달팽이를 보느라, 살쾡이가 다가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살쾡이는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다람쥐에게 다가갔습니다.

4.

오늘은 아침부터 운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아득하지만 저 멀리 도토리 숲 속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점점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숫매와 암매는 그동안 굶주렸던 배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였습니다. 참게는 달팽이를 잡아먹고 있고, 다람쥐는 이것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나무 아래에서는 살쾡이가 살금살금 다람쥐를 잡으러 기어 올라오는 것이 한눈에 보였던 것입니다. 매는 살쾡이가 다람쥐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람쥐와 살쾡이를 모두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일거양득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살쾡이와 다람쥐와 참게와 달팽이는 자기 일에 정신을 몰두할 뿐이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캄캄하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숫매가 암매에게 말했습니다.

“살쾡이가 다람쥐를 잡을 때, 조용히 순식간에 살쾡이를 덮칠 테니 당신은 지켜보고 있다가 만일 내가 실패하면 다시 덮치도록 하시오. 다람쥐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오. 우리 새끼들이 둥지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으니, 살쾡이와 다람쥐를 오늘은 다 잡아야 하오.”

“알았어요.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겠네요. 우리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저들은 하늘을 날며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예요. 불쌍하지만 할 수 없어요. ”

숫매와 암매는 하늘을 선회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먹이를 놓칠까 봐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며 살쾡이와 다람쥐를 눈에서 떼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살쾡이가 다람쥐가 있는 가지 위로 소리 없이 올라가 번개처럼 발톱을 세우고 다람쥐를 잡아채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두 마리의 매가 살쾡이를 향하여 돌진하였습니다. 살쾡이는 다람쥐를 앞발로 움켜잡은 채 등을 매의 발톱에 꿰여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습니다. 푸른 하늘에 매와 살쾡이와 다람쥐가 서로 엉켜 붙은 채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살쾡이와 다람쥐와 매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공중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밭과 숲 속에서 눈과 귀를 가진 동물들은 모두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두들 입을 딱 벌리고 이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서운 일이었지만 구경만 하고 있을 뿐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느닷없이 마른하늘에 번개와 벼락이 내리쳤습니다.

“콰쾅!”

벼락 소리가 나더니 번개가 번쩍하고 일었습니다. 동시에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던 매와 살쾡이와 다람쥐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떨어졌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땅 위에 있는 동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신이 내린 천벌이었습니다. 무서워 벌벌 떠는 동물도 있었습니다. 매와 살쾡이와 다람쥐는 땅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다시 세상은 조용해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고요해졌습니다. 동물들은 모두들 하던 일을 하면서 평온을 찾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했습니다.

5.

번개와 벼락을 만들어 천벌을 내린 신(神)은 땅에 떨어진 매와 살쾡이와 다람쥐를 들어 올렸습니다. 신은,

삽화=서동주.
“오늘은 재수가 좋네. 이게 웬 떡이람? 아까부터 하늘을 맴도는 두 녀석이 수상쩍더라니.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았죠?”

라고 말하며 나이 든 포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음. 제법 늘었구먼..., 하지만 아직도 좀 더 노력해야 해... 갈 길이 멀어.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그만 하세나..”

“예.”

나이 든 포수가 포획물을 자루 속에 넣으며 마무리할 때, 젊은 포수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총을 갈무리하였습니다. 젊은 포수가 늙은 포수에게 눈빛을 던지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까 하시던 이야기를 마저....”

“아까 뭐, 사냥하는 이야기? 아, 그 세상 이야기...”

나이 든 포수가 젊은 포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무얼,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사람이 자기가 사는 세상이 다인 줄만 안다는 거. 그리고 자기들끼리만 다툰다는 거. 그렇지 않은가? 어리석다는 건 자기가 어리석다는 걸 모른다는 걸세. 천재는 바보를 이해할 수 있어도 바보는 천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야. 무지하면 용감한 법이고. 그러니 교만할 수밖에.....”

젊은이는 매와 살쾡이와 다람쥐와 달팽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봐... 젊은이. 나 같은 포수야 차원이 낮은 사람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지만, 자네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살게나... 사람의 차원은 끝이 없어. 원시인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주를 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야....”

나이 든 포수가 자리를 일어섰습니다.

“어서 가세나. 하늘 같은 주인님께 잘 보여야지. 주인님이 오늘은 삯을 좀 두둑이 주시려냐...”

두 포수는 총을 둘러메고 달팽이처럼 더듬더듬 산을 내려갔습니다.

미노스 단편 작가 최민호.

■ 미노스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습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차관급 고위직을 세 자리나 거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입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도쿄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교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습니다.

공직 퇴임 후 고려대·공주대 객원교수, 배재대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홍익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퇴임 후, 어린 손녀들에게 들려줄 동화를 만들어 달라는 딸의 부탁에 따라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 주다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새움출판사)”라는 단편소설과 동화가 있는 이야기책을 출간, 동화작가로 데뷔했습니다. 뛰어난 상상력과 유려한 문체가 돋보여 공직자에서 문필가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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