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무원 출신 최민호 작가의 심금을 울리는 단편 이야기

[사진=미노스 제공]

미노스 단편 및 동화를 연재합니다.

대화보다 스마트 폰의 일회용 이야기에 열중하는 젊은 세대, 시간이 갈수록 멀어지는 가정과 가족, 부서지고 쪼개져 무너져가는 세대간의 이해와 소통. 모두가 고독으로 내몰리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럴때 일수록 온 가족이 함께 읽는 따뜻한 이야기가 그립고 필요하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데일리한국은 이같은 취지로 미노스의 특선 단편과 동화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미노스의 아름답고 맛깔나는 동화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사랑과 감동을 찾아내고 느끼실 수 있을 것 입니다. 미노스는 차관급 고위 공직자에서 작가로 변신한 최민호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필명입니다. <편집자 주>

오르페우스의 하프와 직녀의 공후

1. 꿈속의 공무도하가

(‘공무도하가’가 공후 연주에 맞추어 은은히 들린다)

‘임아, 그 물 건너지 마오. 오오, 임은 기어이 물속으로 들어가시네. 슬프고 슬프도다. 저 물속에 빠져 죽은 임. 아아, 저 임을 언제 다시 만날꼬.’ (고조선/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공후인)

눈물에 젖은 베개에 뺨이 묻혀 두 눈이 떠졌습니다. 또 꿈이었습니다. 아직도 은은히 꿈속에서 들려왔던 그 가락이 들립니다. 가락은 슬픔으로 가득한 마음에, 베인 상처가 저미듯 속을 아리게 합니다. 아득히 꿈속에서 멀어졌던 정신을 추슬러 그 구슬픈 가락을 거두고자 눈을 돌려 침대 옆에 놓여 있는 하프를 바라봅니다. 기울어진 하트 모양의 하프. 꿈속의 그 가락을 잊으려 가만히 현에 손을 댑니다. 울리는 소리... 천상의 소리. 천사의 소리. 베가는 하프를 고요히, 그리고 천천히 뜯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만둡니다. 눈물이 다시 흐릅니다. 아직도 꿈이 남아있는 밤의 어두움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오, 그대... 강을 건너며 뒤돌아보던 그의 얼굴이 여전히 베가의 콧날을 아프게 합니다.

2. 칠월칠석

물결이 희다 하여, 백강은 은하수가 되었습니다. 백강을 가로질러 반달처럼 걸린 검은 오작교 다리 위에서, 직녀는 부채살같이 펼쳐진 기둥에 33개의 현이 달려 있는 공후를 가슴에 보듬고 있습니다. 연주를 시작하였습니다. 은하수 강물 위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천상의 소리. 천사의 소리. 공후를 뜯는 아름다운 소리는 오작교 다리로부터 강물 위로 맑고 은은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백강 위에는 가볍고 작은 배를 탄 젊은 남녀들이 은하수를 타고 흐르는 공후의 연주를 듣고 있습니다. 태고 적부터 내려오는 원초의 소리.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하프. 공후의 음색은 천상에서 울려오는 매혹의 선율이었습니다. 공후의 멜로디에 깊어가는 여름밤에 흐르는 강물... 하늘에는 7월의 푸른 별빛, 강위에는 청춘들의 붉은 불빛.

(검은 오작교 다리위로 까치와 까마귀의 날개 짓 소리와 지저귀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공후의 연주에 맞추어 빛나는 옷을 입고 애타는 발걸음으로 다리를 건너오는 남자. 견우였습니다. 견우는 직녀를 보자 두 팔을 벌리며 연정에 겨운 노래를 합니다.

“오, 그리운 직녀! 이 밤에 다시 내 가슴은 터질 것만 같소. 기다린 세월은 그리도 느린데, 만나는 시간은 왜 이리 빠른지. 손을 주시오. 시간이 가기 전에. 어서 가까이.. 이 시간이 멈추어질 수 있다면. 우리 사랑을 막았던 저 은하수가 오늘밤은 유난히 더 푸르구려. 질투의 색깔인가. 선망의 빛깔인가. 흐름을 멈추고 그 빛을 거두어 주었으면... 오늘 밤만은. 우리 둘만을 위해... ”

직녀가 견우에게 공후를 뜯으며 노래합니다.

“오, 나의 견우, 견우! 이제야 만나다니 기쁨보다 슬픔에 눈물이 더 난다오. 7월 속에 7일을 기다리느라 나의 속은 까마귀와 까치처럼 새까맣게 타버렸다오. 오. 내 사랑. 당신도 뺨이 야위었군요. 그러나 염려 말아요. 은하수도 별빛도 당신 눈빛만큼 빛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왜 만나는 기쁨위에 헤어져야 할 슬픔이 구름같이 덮는지...”

(두 연인의 사랑의 노래에 이어 까마귀와 까치의 코러스가 합창을 한다)

“오, 가련하고 외로운 두 연인이여.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그리고만 있었던 두 사랑이여. 그리워 못 나눈 사랑을 가로막은 무정한 저 은하수여. 오늘 밤 기쁘고도 슬픈 밤. 우리의 검은 머리가 새하얗게 벗어지더라도 오늘 밤 사랑의 만남에 온몸을 바치오리다. 두 사랑의 속삭임에 두 귀를 막으오리니.”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오작교 다리를 건너 일 년만의 밀회를 하고 있는 밤입니다. 칠월칠석날 밤입니다. 두 연인은 그리웠던 만남에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두 별빛의 그리움이 폭발하여 더욱 밝아질 때, 강 위의 젊은 남녀들이 탄 배의 촛불은 하나하나 꺼져갑니다. 오늘은 사랑을 고백하는 날. 밤은 깊어가고, 별은 더욱 빛납니다. 다시 공후가 조용히 연주됩니다.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옵니다.

“아득한 하늘가의 견우성, 맑고 맑은 은하 건너 직녀성. 섬섬옥수 좌우로 저어, 찰카닥 찰카닥 비단을 짜네. 종일토록 짜 내어도 무늬는 안 짜지고, 흐느끼는 눈물만이 비 오듯 흐르네. 은하수는 맑고도 얕은데, 서로 떨어짐이 다시 또 얼마나 될런가, 얕게 흐르는 은하수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말도 나눌 수 없네.” (동한(東漢)/초초견우성(??牽牛星)

구슬픈 노래들이 끝나가고, 별빛이 잦아들 때, 연인들의 아쉬움이 가까워 옵니다. 오작교를 만든 까마귀와 까치의 검은 머리는 시간이 가면서 하얗게 새었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은하수의 강물이 넓고 깊어갑니다.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견우와 직녀는 잡은 손을 놓아야 합니다. 직녀가 다시 공후를 뜯으며 흐느끼며 노래합니다.

“임아, 그 물 건너지 마오. 오오, 임은 기어이 물속으로 들어가시네...” (고조선/ 공무도하가)

잡았던 손을 놓지 못한 채 점점 멀어져가는 직녀를 바라보며, 견우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무엇에게 끌리듯 은하수 깊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오, 직녀. 7월이 오면 다시 또 만날 수 있으리니...”

내밀었던 견우의 손이 아득해집니다.

“오, 견우! 오, 직녀!”

두 연인은 이렇게 헤어졌습니다. 견우와 직녀의 이별의 서러움이 뿌리는 굵은 눈물이 빗줄기가 되어 내리기 시작합니다. 온 세상이 두 연인의 눈물에 젖습니다. 칠월칠석 비입니다.

3. 베가(Vega)의 탄생

“3천년이 넘은 오래된 시에 나오는 노인이 왜 꿈에 그리도 자주 나타날까요? 왜 그 노인의 얼굴이 그리도 또렷하게 보이는 것일까요? 그 백발의 남자가...”

베가는 눈물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베가. 마음이 그리 쓰이더냐? 그 남자는 술에 취해 강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어. 가여운 아내...그리도 애원했건만... 얼마나 슬펐으면 슬픔을 못이겨 공후를 연주하며 뒤를 따라 들어갔을까? 그렇지만, 베가. 너는 행복할거야. 네 사랑은 따로 있을거야. 나는 믿는단다.”

엄마는 딸의 말을 듣자, 딸의 희고 가는 손을 매만지며 따뜻하게 위로하였습니다. 그리고 딸이 태어날 때의 꿈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습니다.

“꿈속에서, 별들이 보석처럼 깔려있는 다리를 건널 때 밝은 별이 하나 품속으로 들어왔었지. 놀란 가슴으로 그 별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니 천사들이 집에 찾아왔어. 천제님의 딸이 길을 잃었는데 못 보았느냐고... 모른다고 했지. 그 별이 내 품에서 떠날까봐. 천사들은 두리번거리며 별을 찾다가 하프를 하나 주었어. 그 별을 보면 주라고 했지. 따님의 장난감인데 사랑과 행복을 주는 하프라고 하면서... 얘야, 너는 하늘에서 내려 온 천제님의 딸이란다. 너는 별이었단다. 그래서 이름을 베가(Vega)라 한 것이란다. 직녀의 별 이름 베가성 말이야. 언젠가 너에게 알테어(Altair) 견우성이 나타날 거야. 하프와 함께. 꼭...”

베가는 하프를 손에서 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고조선 전설의 벽화 속에서 공후를 보았습니다. 공후를 연주하며 슬피 우는 어느 여인의 그림과 시를 보았습니다. 저 그림은 무엇일까? 왜 강물에 스스로 빠질까? 아내마저 강에 뛰어 들어가는 저 슬픔은 무엇일까? 그 후로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의 장면이 꿈에 자꾸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베가가 동양의 하프, 공후에 매료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4. 오페라 오르페우스

무대 위에서 오르페우스가 우렁차고 의기양양하며 행복한 목소리로 터져나갈 듯 노래합니다. 7월 여름밤의 특별 무대였습니다.

“하늘의 장미, 세상의 빛, 세상을 지배하는 자의 귀한 자식. 오, 천상의 궤도에서 모든 것을 둘러보고 있는 태양이시여. 말해보시오. 당신이 본 연인 중 나보다 더 기쁘고 행운이 넘치는 자가 있는가를. 진실로 행복하였소. 처음 당신을 본 그날, 시간이 갈수록 더 행복하였소. 당신에게 속삭이고 당신도 나에게 속삭일 때, 더 이상 말할 수 없이 행복하였소. 순수한 사랑을 맹세하며 당신이 그 하얀 손을 내미는 순간. 영원한 천국의 눈빛처럼, 이 즐거운 숲, 5월의 푸른 나뭇잎들처럼 나의 가슴은 즐거운 기쁨에 가득 차 흘러넘친다오. ” (몬테베르디(Monteverdi) / 오르페오(Orfeo))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사랑’ 이야기가 오페라공연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3천년 전 그리이스 신화였습니다.

『....태양의 신 아폴로의 아들 오르페우스는 아버지에게 하프를 배웠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하프는 생명이 없는 돌과 나무가 춤을 추고, 맹수가 미소를 짓는 평온과 안식을 주는 감미로움이었습니다. ‘아르곤 호의 원정’에서는 폭풍을 잠재우고, 창을 던지며 덤비는 사나운 적들을 얌전한 토끼처럼 무릎을 꿇게 한 신비한 마력을 보일 정도였습니다.

(무대에서, 하늘의 구름을 뚫고 들려오는 듯 아름답고 맑은 하프가 연주된다)

“숲 속에서 꿈을 꾸었어요. 이슬과 산딸기를 먹으며 눈부신 햇님을 보고 나무그늘에서 단잠을 잘 때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렸어요. 누구의 하프일까? 아름다운 하프소리에 꿈에서 깨어났을 때 숲속이 변했어요. 모두가 사랑에 취해 술에 취한 듯 즐거워했지요. 토끼와 늑대가 껴안고 춤을 추었고, 새들이 벌레를 물어 독사의 입에 넣어 주며 키스를 하였어요. 개구리와 승냥이가 잔을 권해 마시고 구렁이는 새끼 곰의 목에서 목말을 타고 무화과 열매를 먹고 있었어요. 오. 세상은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나요? 욕망과 적개심이, 사랑과 서로를 위하는 헌신이 되는... 이 즐거움이 넘치는 세상은 도대체 어디서?”

에우리디체가 달콤한 꿈을 꾸듯 막을 열고 나와 맑은 고음으로 노래합니다. 사랑의 꿈에 취해 노래하는 에우리디체에게 하프를 치며 다가오는 남자. 오르페우스였습니다. 에우리디체는 오르페우스와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이어서 두 사람의 합창이 시작된다)

“당신의 기쁨 속에 나의 기쁨은 얼마나 큰 것인지 말할 수 없어요. 제 마음은 더 이상 저에게 있지 않아요. 사랑과 함께 하는 당신과 함께 있어요. 물어보세요. 알고 싶으시다면, 제 마음에게.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몬테베르디 / 오르페오)

아폴로 신의 아들 오르페우스와 숲속의 님프 에우리디체는 깊고 달콤한 사랑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잊었습니다. 어느 날, 숲속에서 하프소리를 들으며 숲속의 꽃과 나무와 동물들과 놀던 에우리디체는 독사와 키스를 하였습니다. 그때 독사에게 물린 달콤한 혀...그녀는 그만 죽고 맙니다. 갑자기 에우리디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참을 수 없이 격렬한 슬픔에 빠집니다. 자신의 하프 연주로도 자신의 슬픔을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태양을 잃은 달과 별이 무슨 빛으로 세상을 비추겠소. 나의 기쁨은 먹구름속의 별빛 같은 것, 나의 즐거움은 폭풍속의 꽃잎 같은 것. 당신이 없는 이 세상은 얼음처럼 차갑고 그믐달 같은 암흑. 나는 살아도 죽었고, 죽어도 다시 살 수 없다오. 에우리디체. 당신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사랑을 잃은 고통과 시름 속에 신음하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체를 구하기 위해 고통의 산을 넘어, 질병의 강을 건너, 고뇌의 바다를 헤치고 지옥을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고통과 인내의, 그러나 결연한 의지가 오르페우스의 하프 연주로 울려 퍼진다)

오르페우스는 지옥으로 가는 첫 번째 고통의 바다를 만납니다. 넘을 수 없는 고통의 바다를 앞에 두고 절망에 가득 찬 오르페우스, 그는 지옥의 바다를 건너는 뱃사공 카론에게 애원합니다.

“보이지 않소? 절망과 비통에 비틀린 가련한 내가 보이지 않소? 나를 그곳으로 태워주시오. 유황의 불이 이글거리고, 복수와 증오의 피가 끓어오르는 그 곳 지옥으로... 차라리 이곳에 있느니, 그곳에서 나의 사랑과 함께 고통을 맛보게 해주오. 어디로 가버리는 거요? 그 지옥으로 가는 배에 나를 태워주시오.”

그러나 카론은 차다차게 말합니다.

“영원한 죽음의 해안에서 그대 그만 발을 멈추시오. 살아있는 사람은 이 파도를 건널 수 없고, 죽은 사람도 다시 건널 수 없는 것이 이 바다라오.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다고? 당신의 헛된 꿈에 저주가 있을진저. 살아있는 자는 누구도 내 배에 탈 수 없소.”

오르페우스는 하프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애처롭게 흐르는 오르페우스의 연주를 듣고 카론은 넋을 빼앗기고 맙니다. 뱃사공 카론은 오르페우스의 하프를 들으며 지옥의 바다를 건너게 해줍니다. 지옥의 바다를 건너자, 저승의 문을 비키고 있는 괴물이 있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 케르베로스에게도 하프를 연주해 줍니다. 그 역시 하프에 영혼이 홀려 문을 열어 줍니다. 드디어 지옥의 신 하데스와 그녀의 아내인 지옥의 여신 페르세포네를 만난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체를 돌려줄 것을 애원합니다. 그러나 지옥의 신과 여신은 그것은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애원이라며, 멸시와 증오의 눈빛을 보냅니다. 하프를 꺼내는 오르페우스. 그들은 오르페우스의 애절한 하프 연주를 듣게 됩니다. 오르페우스의 하프 연주에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동정심으로 가득찹니다. 지옥의 신은 에우리디체를 오르페우스의 품에 돌려주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지옥을 벗어나기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체를 되찾아 지옥의 문을 열고 이승을 향하는 길을 걸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앞에, 에우리디체는 뒤에서... 암흑과 공포로 가득 찬 지옥의 길을 빠져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를 뒤쫓아가는 에우리디체는 한 번도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오르페우스에게 의심을 하게 됩니다.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 저의 손을 잡아 주세요! 무섭고 외로워요!”

애타게 부르짖습니다. 그렇지만 오르페우스는 앞만 보고 걷습니다. 그녀는 그만 탄식을 하고 맙니다.

“아, 내가 저 남자를 따라가야 행복할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저런 것일까? 차라리 여기서 죽어버리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아니할까”

뒤에서 들리는 에우리디체의 부르짖음과 탄식소리를 듣고, 오르페우스는 누군가 그녀를 사로잡아 가려는 자가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저 비통의 한숨은? 아마도 사랑에 빠진 복수의 여신들이 나에게 광분하여 나의 보물을 빼앗아가려고 팔을 뻗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를 허락할 것이라고?” (몬테베르디 / 오르페오)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에우리디체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에우리디체! 에우리디체!”

에우리디체 또한 멀어져 가는 오르페우스를 보며 후회하고 비탄합니다. 에우리디체가 노래합니다.

“너무도 달콤하고 너무도 쓰디쓴 저 모습. 너무도 사랑하여 잃어버린 사랑. 오, 불행한 나 자신. 이제는 빛도 생명도 즐길 힘도, 당신도 다 잃었도다. 오, 내 사랑,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내 남편!” (몬테베르디 / 오르페오)

두 연인의 사랑은 영영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연인은 지옥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그리워하면서 하프 연주와 함께 저 세상의 끝에서나 부를 수 있는 슬픔의 노래를 합창하며 서로를 부릅니다....』

비극 오르페우스 오페라의 무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슬픈 종말이었습니다. 지옥의 신을 정복하고도, 자신을 정복하지 못하여 영원한 사랑을 잃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관객들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하고, 가슴에는 아름다운 하프와 노래의 감동이 울리는 듯 끝나지 않는 여운이 가득합니다.

삽화: 서동주
5. 오르페우스와 직녀

막이 내린 극장에 관객이 다 나가고도 객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다가와 다정하고 사려 깊은 목소리로 위로하듯 묻습니다.

“오페라 오르페우스가 처음이시군요. 아직도 감동에 어깨가 떨리는 것이 멈추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여자는 눈을 들어 남자를 보았습니다. 키가 크고 건장한 어깨의 남자였습니다. 무대에서 오르페우스의 노래하던 남자 주인공 가수였습니다.

“아니예요. 아주 오래간만에 다시 봐요. 그렇지만 슬픔을 이길 수가 없어요.”

“무엇이 그리 슬프셨나요? 오르페우스의 불행이? 아니면 에우리디체의 비탄이?”

눈물을 감추며, 여자는 오페라 가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르페우스요...”

그리고 푸른 눈에 은발이 섞여있는 건장한 남자를 눈부신 듯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은 오르페우스 역을 한 무대 위의 가수 아니신가요? 어떻게 저에게 이런 친절을...”

“오르페우스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흐느끼는 관객을 두고 떠날 수는 없지요. 제가 바라던 가장 감동스런 보람이랍니다.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가요?”

“저는 하프를 연주합니다.”

“하프? 호오. 그렇군요. 혹시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무대 위에는 아직도 하프가 그대로 있답니다.”

건네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베가(Vega)는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하프를 가슴에 안고 두 손으로 현을 쓰다듬었습니다. 현에서 숲 속의 호수에서 튕겨지는 이슬방울 같은 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베가는 노래를 부르며 하프를 연주하였습니다.

“머리를 하얗게 풀고, 푸르다 못해 하얗게 반짝이는 저 비단 은하수 강물을 건너 사라져 버린 임아. 강가에 남아, 떨어지는 꽃잎처럼 애타게 하늘거리는 내 손짓도 아랑곳 않고서. 비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두 뺨의 야윈 사무침. 이제 또 언제 그대를 만나랴.”

오르페우스는 베가의 하프 연주를 들었습니다. 슬픔과 감동이 가슴에 서려진 듯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습니다.

“오르페우스의 어느 구절을 연주한 것인가요? 그 슬픈 구절이.”

“아니에요. 3천년전의 고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의 슬픈 시랍니다. 강가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가 공후를 뜯으며 한스럽게 부른 노래랍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선율이라니...마음마저 떨리는군요. 다시 한 곡 들려줄 수 없겠습니까?”

베가는 조용히 악상을 가다듬었습니다. 7월의 여름밤의 연주가 이 무대라면 어울리리라.

“아득한 하늘가의 견우성, 맑고 맑은 은하 건너 직녀성. 섬섬옥수 좌우로 저어, 찰카닥 찰카닥 비단을 짜네. 종일토록 짜 내어도 무늬는 안 짜지고, 흐느끼는 눈물만이 비 오듯 흐르네. 은하수는 맑고도 얕은데, 서로 떨어짐이 다시 또 얼마나 될런가, 얕게 흐르는 은하수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말도 나눌 수 없네.” (동한/초초견우성) 남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신화 속의 오르페우스의 하프가 바로 여기에 있군요. 누구든지 사랑과 행복에 빠진다는...오. 이 감동... 이 감격...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오?”

6. 오르페우스의 비극

베가와 오르페우스는 카페에 마주 앉았습니다. 하프연주 때문이었을까요? 오래된 동료처럼, 친구처럼, 아니 오랜 연인처럼 두 사람은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마음의 거리가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행복의 오르페우스의 하프... 베가가 물었습니다.

“오르페우스의 결말은 왜 그리 슬픈 것인가요? 원래 그렇게 슬픈 이야기였나요? 그렇게 슬퍼야 하나요? 슬퍼야 감동이 더 진한 것인가요?”

오르페우스가 말했습니다.

“신화속의 오르페우스는 더 비참하다오. 혼자서 이승으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외로움과 비탄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죠. 수많은 여성들이 홀로 남은 오르페우스를 유혹합니다. 그의 하프 소리에 매혹되지 않을 여자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체만을 그리워 할 뿐 매정하게도 어떤 여자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죠. 구애를 거절당한 수많은 여성들은 그만 사랑이 원망으로 바뀌어 오르페우스를 붙잡아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답니다.”

“어쩌면, 그렇게 딱하게.... 그리고서요?”

“죽은 오르페우스를 가엾게 여긴 아버지 아폴로 신은 오르페우스를 하늘의 별로 만들어 주지요. 오르페우스는 하늘에 올라가 신들을 위해 영원히 하프를 연주하게 되었답니다.”

“결국 에우리디체와 만나지는 못했군요....가엾게도. 오르페우스는 어떤 별이 되었나요?”

“아폴로 신은 오르페우스를 거문고 자리에 자리잡게 해주었답니다. 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바로 은하수 옆에 보이는 저 반짝이는 별이죠. 베가(Vega)성이라고 하는....”

베가의 놀란 눈. 깜빡이지도 않고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거문고 자리의 베가라고요?”

“예. 거문고...그리이스 말로 리라라고 한답니다. 바로 하프를 말하지요.”

베가는 말을 잃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오르페우스가 베가성이 되었다니요. 베가성은 바로 자신인데...엄마가 나를 베가성이라 하였는데....

“그런데, 하프를 천사처럼 연주하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하프를 어디서 배웠죠?”

오르페우스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베가에게 물었습니다. 베가는 어찌 대답할 줄을 몰라 잠시 눈을 아래로 향하고 망설였습니다. 이윽고 말했습니다.

“제 이름은 베가입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지어주셨죠. 동양에서는 직녀성이라 부른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하프를 옆에 두고 자랐어요. 하프는 악기가 아니라 제 장난감이었죠. 배우지 않아도 자연히 하프를 연주할 수 있었어요. 곡을 들으면 하프 연주가 저절로 된답니다.”

“베가라고요? 당신이? 거문고 자리에 있는 그 베가성? 그렇다면 당신이 오르페우스? 거문고 자리의 리라인가요?”

“...........”

오르페우스와 베가는 한참동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하늘의 별들. 그 별들이 들려주는 수많은 꿈의 이야기들이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오르페우스가 베가에게 가만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가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저의 이름은 데이빗입니다. 아시겠지요. 다비드라고 하는 별. 저는 그 이름의 후손입니다. 정말 놀랍군요. 신화같이 신비롭군요. 당신과 이렇게 만나다니...”

두 사람의 마주치는 눈빛은 마치 견우와 직녀가 마주치는 별빛과 같이 빛났습니다.

“바다를 건너와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는 오르페우스를 부르는 가수이지만 곡을 짓는 작곡가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그리이스 신화같은 동양의 전설이군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제가 여기까지 와서 공연을 한 것일까요? 오늘의 공연은 오직 베가 당신 한사람을 위한 공연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프의 여신을 위한 공연. 무언가 오르페우스의 오페라에 새로운 신화가 쓰여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그러면서 데이빗은 베가에게 진심을 담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 오페라의 하프 연주를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에우리디체가 되어? 저의 노래와 함께?”

그러나 베가는 머뭇거리며 물었습니다.

“대답해 주시지 않았어요. 오페라 오르페우스를 왜 그렇게 슬프게 만들었는지... 슬퍼야 하는지...”

그녀의 눈빛은 애절하였습니다.

“아, 그렇군요. 오르페우스는 오페라의 원조입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이지요. 지금도 어디에선가 오르페우스의 공연이 있을 거예요. 그들의 오페라는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너무도 비극적인 이야기라서 신화의 내용을 바꾼 것입니다. 저의 오페라는 몬테베르디의 곡과 저의 영감을 섞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르페우스는 슬퍼서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신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슬픔이란 감동의 미학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기쁨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환하게 피는 순간 없어지지만, 슬픔은 타고 남은 재와 같아서 가슴속에 남아 없어지지 않지요. 베가씨도 공연을 보고 객석을 뜨지 못했잖아요? 이 슬픈 오르페우스를 보고 웃으면서 자리를 일어난다는 것은 저에게는 용납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베가는 눈을 감았습니다. 눈물이 배어나올 듯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연주 못할 것 같아요. 그렇게 슬픈 결말이라면...”

“왜...?”

“저는 오르페우스니까요...하프를 연주하는 오르페우스의 운명이 그러하다면....”

찻잔을 잡는 베가의 가는 손 위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습니다. 데이빗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7. 오르페우스와 직녀의 사랑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체... 정말 그녀는 오르페우스의 별일까? 하프를 연주하며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영혼의 별? 데이빗은 베가와 처음 만났지만 처음 만난 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신비로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녀와 나누었던 짧고 긴 대화. 3천년전 동양과 서양의 놀랄만큼 닮은 악기, 공후와 하프로 사랑을 노래한 이야기는 경이로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여인이 공후를 연주하고, 서양에서는 남자가 하프를 연주하고... 하프와 공후를 연주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비극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리이스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슬픈 신화. 동양의 견우와 직녀의 슬픈 사랑의 별 이야기.

하늘의 별은 하나 뿐. 정녕 그 별은, 그 별을 보며 만나게 될 사람과 그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의 끝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 맞을까? 하프의 별이 직녀성이라는 베가....그리고 또 하나의 별 다비흐((Dabih)... 데이빗은 베가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독수리자리에 자리잡은 빛나는 별 다비흐가 다비드라는 것과 그 별이 알테어(Altair)라고 불리는 동양의 견우성이라는 것을... 다비드...데이빗... 동양의 전설과 서양의 신화 속에 나오는 신기한 사랑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별이 비추는 예정된 그 곳, 사랑의 운명이 인도하는 그 길에서 문득 그녀를 만난 듯 했습니다.

가늘고 여린 베가가 데이빗에게 말했습니다. 직녀성이 붉고 밝게 빛나면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하지만, 직녀성이 푸른색으로 빛나면 기근이 있고, 적색이면 전쟁이 나며, 황색이면 가뭄이 있다고... 견우과 직녀가 헤어지는 칠월칠석날 밤이면 반드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고.. 그러니 베가성은 밝게 빛나야 한다고, 행복하여야 한다고... 베가가 슬프면.., 직녀가 슬프면, 절대로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베가를 만났다는 것은 무슨 신의 예정일까? 이 7월의 여름밤에... 그녀는 나의 에우리디체인가? 내가 그녀의 견우인가? 머리를 풀고 강에 빠진 백수광부는 오르페우스 나였던가? 공후를 뜯으며 강에 뛰어든 아내가 베가?... 데이빗은 깊고 깊은 운명의 늪 속에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쳐다보며 꿈을 꾸는 작은 소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가는 데이빗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곰곰이 상기해 보았습니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이스에서는 비밀스런 종교의 시조까지 되었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져 지옥까지 갈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지옥에서 구하지 못한 아내를 못 잊어 다른 여자들에게 사지를 찢겨 죽는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사랑을 잃은 슬픔에 머리를 풀고 술에 취해 스스로의 육체를 포기하는 그 모습은, 영혼은 영원하다는 윤회의 신앙마자 낳게 되었답니다. 술. 오르페우스가 세상을 포기하면서 위안으로 삼았던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스스로를 의탁하는 밀교의 원천이 되었답니다.”

그런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데이빗은 홀연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바다를 건너와 7월의 특별 공연을 연주하고, 꿈처럼 만난 카페에서의 달콤한 만남을 뒤로 하고 기약도 없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백발이 흩날리는 꿈속의 백수광부의 모습이 다시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오, 술에 취한 백수광부는 강물에 빠져 죽어도 고통을 느끼지 않을 디오니소스를 쫓는 오르페우스였던가? 무대에서 사자의 포효로 노래하던 은발의 데이빗... 베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비극의 주인공, 슬픈 오르페우스의 하프를 데이빗에게 연주하기는 싫었습니다. 슬픔은 죽음보다 더 진한 것이라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 사람이 혹시 나를 사랑할까? 그가 나의 알테어(Altair) 별일까? 그도 사랑을 찾아 생명을 걸고 지옥까지 찾아갈까?’

데이빗과는 그렇게 이별하였습니다. 까치와 까마귀가 흰머리가 되어 만들어 준 오작교 위에서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하고 은하수를 건너간 견우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견우는 외쳤었지.

“7월이 오면 다시 또 만날 수 있으리니...”

데이빗도 7월이 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의 맑고 우렁찬 성량. 연한 은색의 휘날리는 머리칼. 단단한 어깨. 베가는 한번 본 오페라의 데이빗이 얄궂은 운명의 견우처럼 그리워졌습니다. 베가는 작은 소리로 스스로 속삭였습니다.

‘엄마, 언젠가 알테어(Altair) 견우성이 나타난다고 했지요? 틀림없이 행복과 사랑이 찾아 올 거라고 했지요? 하프와 함께. 꼭?...”

베가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습니다.

8. 데이빗의 오페라 오르페우스

데이빗은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악보를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아폴로 신이 오르페우스에게 내려왔습니다.

“왜 분노와 고통의 먹이로 자신을 던져버리느냐, 내 아들아. 너그러운 마음이 너에게 충고도 아니해주더냐? 불타는 사랑의 노예가 되라고.. 비난과 위험에 지쳐있는 너를 돕고자 하늘에서 내려왔도다. 들어보아라, 그리고 삶을 찬미하여라.”

아버지를 본 오르페우스는 간절히 자기의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상하신 아버지. 이미 분노와 사랑이 있을 수 없는 슬픔으로 저를 내몰아 절망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때마침 오셨군요. 저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오르페우스의 애타는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 아폴로는 오르페우스를 하늘의 별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에우리디체의 아름다운 얼굴을 영원히 행복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

데이빗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비극은 슬픔으로 마칠 때 감동의 생명이 지속된다는 믿음에 변함은 없었습니다. 또 신에게 운명이 지배되는 사랑은 오르페우스의 사랑일 수는 없었습니다. 지옥의 신마저 하프로 굴복시켜 사랑을 찾아가는 사랑. 운명을 거역하여 사지가 찢겨도 지켜야 하는 영원한 영혼. 그것이 오르페우스의 사랑이었습니다. 신에게 구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가... 그녀의 하프를 슬프게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베가는 동양의 전설을 노래했습니다.

“하늘에서의 베가의 슬픔은, 은하수 건너 직녀의 슬픔은, 땅에서의 고통을 낳고 말아요...”

데이빗은 오르페우스 악보를 놓고 그 슬픔과 그 승리의 신화를 다시 쓰고자 하였지만 어떻게 두 경계를 수놓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안개처럼 흐려진 그의 가슴속에 은은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베가가 연주했던 하프소리, 직녀가 뜯었던 공후의 선율이었습니다.

“오, 사랑하는 두 연인이여.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그리고만 있었던 두 사랑이여. 그리워 못 나눈 사랑을 가로막은 무정한 저 은하수여. 우리의 검은 머리가 새하얗게 벗어지더라도 오늘 밤 사랑의 만남에 온몸을 바치오리다. 두 사랑의 속삭임에 두 귀를 막으오리니...”

칠석날 베가의 하프연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까마귀와 까치의 코러스였습니다. 데이빗은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 안았습니다.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 아니야... 베가의 하프는 모든 것을 사랑하게 한다. 직녀의 연주를 들으면 사랑과 행복에 젖어 마음속에 즐거움이 가득 찬다. 까마귀도 까치도... 사랑은, 신의 질투도 이겨내야만 하리라... 두 연인의 안타까움에 은하수도, 새도 마음 아파 울고 있지 않던가?’

오페라 오르페우스는 다시 쓰여져야 했습니다. 오르페우스를 위해, 베가를 위해...사랑의 승리를 위해...다시... 은하수의 별빛이 흐르듯 시간이 지난 뒤, 베가는 데이빗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떨리는 가슴으로 봉투를 열었습니다.

“...오르페우스의, 아니 베가의 하프는, 아니 직녀의 공후는 사랑과 행복의 선율이었습니다. 베가의 말을 듣고 오페라를 다시 작곡하기로 했습니다. 슬픔의 사랑보다 승리의 사랑으로 오르페우스의 하프는 빛나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베가의 연주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행복의 하프연주를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페라의 하프연주를 꼭 부탁합니다. 저의 사랑하는 에우리디체가 되어 주십시오. 저의 직녀가 되어 주십시오.”

악보에는 새로운 부분이 작곡되어 있었습니다.

『....지옥의 문에서 나와 이승으로의 귀로에서 에우리디체를 잃고만 오르페우스. 절규하고 간구해도 그의 허무를 메울 길은 없었습니다. 두 번 다시 지옥의 뱃사공도, 문지기도, 지옥의 여신도 그의 하프 연주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절망에 빠져 디오니소스의 위안만을 축복으로 삼았습니다.

“에우리디체의 모습을 비쳐주는 단 하나의 거울. 이 술잔이 없었다면, 세상은 두 번째 지옥이지. 망각과 환각을 보여주는 마법의 신 디오니소스를 경배하라. 괴롭고 외로운 자들이여 일어나 경배하라. 축복이 있을지니... 몸과 마음을 팽개치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술이 나의 구원이로다. 나의 행복이로다. 나의 영혼을 마비시키는 신비의 묘약이여...”

비틀거리며, 오르페우스는 하루하루 황폐해져 갔습니다. 지옥의 문에 다시 갇힌 에우리디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매일 비탄에 젖어 노래했습니다.

“오, 복수와 증오와 원한에 파도치는 저 사나운 바다여. 불과 쇠로 달구어지는 꺼지지 않는 단죄의 갑문이여. 이제, 저 바다와 문을 넘어 오르페우스를 만날 수는 없는 것인가? 희망은 더 이상 없는 것인가. 이 슬픔. 이 고통. 그의 사랑을 못 믿었던 내가 이 지옥의 고문에서 벗어 날 수는 없어. 저 바다와 문을 넘을 수 있는 불사조 피닉스의 날개가 없는 한... 불 속에서도 죽지 않는 생명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그 새들이 너무 부러워. 지옥에서 이승으로, 이승에서 천국으로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으니, 죽음의 고통 없이...”

에우리디체의 애끓는 노래는 지옥의 문을 넘어 퍼져 나갔습니다. 불사조의 왕은 그녀의 노래에 말할 수 없는 동정이 일어났습니다. 불사조들이 합창으로 노래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사랑을 찾는 저 가련한 여인의 소원은 무엇인가? 우리의 날개...? 불사조의 영생...? 우리들은 지옥의 불새. 지옥 불에도 꺼지지 않는 사랑이 있지. 살아서 못다 한 사랑을 죽음에서 깨워 불 속에서 살려내는 불타는 열정이 있지.”

에우리디체의 노래를 들은 불사조들은 지옥의 문이 닫히고 문지기가 잠에 취해 떨어질 때, 지옥의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일 년에 단 하루 7월의 저녁이었습니다. 달이 기울어 분노의 신도, 질투의 여신도 앞을 볼 수 없는 저녁이었습니다. 에우리디체를 날개에 태우고 지옥의 문을 넘은 불사조는 지옥의 바다를 만났습니다. 성난 파도가 솟구치고 바람이 몰아쳐, 날 수 없는 지옥의 바다 위를 불사조들은 날개를 이어 에우리디체가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줍니다. 지옥의 불사조들이 만든 다리를 건너 뒤를 돌아보는 에우리디체. 에우리디체를 향해 바다의 거친 폭풍이 쫓아옵니다.

에우리디체를 그리며 한숨으로 못잊던 오르페우스. 불사조의 날개를 타고 오는 에우리디체를 보고 비틀거리며 미친 듯 달려갑니다. “오, 에우리디체. 에우리디체... 불사조 피닉스가 사랑의 새가 될 줄이야. 새들에게 감사하며 찬미하리...새들에게 감사하며 찬미하리...”

두 연인은 사랑의 뜨겁게 포옹을 하며 눈물의 키스를 나눕니다. 그들의 눈물이 비가 되어 바다에 떨어지자 폭풍이 잠잠해집니다.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체. 누구도 이제 이 두 연인을 갈라놓을 것은 없습니다. 은하수의 강물도, 지옥의 바다도, 질투의 여신도, 불신의 의심도...』

마지막 피날레는 직녀의 공후 연주가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신화와 전설이 하나로 되었습니다. 오르페우스와 직녀가 한 몸이 된 것이었습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도, 견우와 직녀도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베가는 감동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베가는 공후를 가까이 당겼습니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현에 손가락을 댔습니다. 공후는 베가의 마음을 울려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난 지옥의 바다를 나는 불꽃이, 타오르는 불사조들의 날개 위에서 오르페우스를 찾아가는 에우리디체의 간절한 모습이 현에서 울려나오고 있었습니다. 은하수가 흐르는 오작교에서 사랑을 나누는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만남의 음률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베가(Vega)와 알테어(Altair)의 사랑의 만남이었습니다.

9. “오르페우스의 하프와 직녀의 공후”

촛불이 떠있는 조각배에서 사랑을 나누는 젊은 연인들의 황홀한 표정이 환상처럼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오르페우스의 하프와 직녀의 공후”

데이빗의 오페라는 동양과 서양, 세계의 수많은 무대에서 쉴 새 없이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해마다 쵸코렛을 선사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 데이나, 칠월칠석날이면 오작교가 있는 강 위, 촛불이 있는 조각배에서 그리이스의 오르페우스와 동양의 직녀가 노래와 하프 그리고 공후로 하모니를 이루는 사랑의 이야기가 공연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은하수와 지옥의 바다에서 연주되는 하프와 공후의 선율에 매료되었습니다. 오페라를 보며 이 아름답고 애틋한 신화가 자신들의 전설이 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누구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의 씨앗을 풍선같이 퍼뜨리는 베가의 아름답고도 맑은 하프의 선율과 마법같은 행복감을...

“하늘의 장미, 세상의 빛, 세상을 지배하는 자의 귀한 자식. 오, 천상의 궤도에서 모든 것을 둘러보고 있는 태양이시여. 말해보시오. 당신이 본 연인 중 나보다 더 기쁘고 행운이 넘치는 자가 있는가를...” (몬테베르디 / 오르페오)

베가는 더 이상 밤하늘의 별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온 세상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베가는 데이빗과 신화같은 결혼을 하였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사랑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행복으로 가득 담긴 결혼이었습니다. 베가의 꿈은 엄마가 말했던 대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7월7일 칠석날 저녁. 베가성과 알테아성이 빛나는 밤, 은하수가 흐르는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오르페우스의 하프의 연주에 맞추어 키스를 하면서...

(막이 내린다)

미노스 단편 작가 최민호.
■ 미노스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습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차관급 고위직을 세 자리나 거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입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도쿄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교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습니다.

공직 퇴임 후 고려대·공주대 객원교수, 배재대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홍익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퇴임 후, 어린 손녀들에게 들려줄 동화를 만들어 달라는 딸의 부탁에 따라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 주다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새움출판사)”라는 단편소설과 동화가 있는 이야기책을 출간, 동화작가로 데뷔했습니다. 뛰어난 상상력과 유려한 문체가 돋보여 공직자에서 문필가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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