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출신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혔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71세.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사진은 2015년 2월 국무총리 취임 후 간부회의를 주재하는 이 전 총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충청의 맹주’로 불리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1세.

고인은 2012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증을 진단받은 뒤 골수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으나, 2016년에 이어 최근 혈액암이 재발하면서 투병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충남 홍성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양정고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이던 1974년 행정고시(15회)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했다. 이후 그는 경찰로 옮겨 새로운 길을 걸었고 최연소(31살) 경찰서장이 돼 고향인 홍성에 부임했다. 39세 때는 최연소 경무관에 올랐고, 충남·북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1995년 경찰복을 벗은 그는 곧바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다. 이듬해인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충남 청양·홍성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신한국당 내 유일한 충청지역 당선자였던 그는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고 1998년 김종필(JP) 총재가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해 대변인과 원내총무(원내대표), 사무총장 등 중책을 역임했다.

당시 JP는 고인을 두고 “번개가 치고 나면 먹구름이 올지 천둥이 올지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박태준 전 자민련 총재도 그를 두고 “철두철미하다”고 밝혔다.

이완구(왼쪽) 전 총리가 2015년 2월 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부인 故 박영옥 씨의 빈소에서 김 전 총리를 위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6대 국회에서 재선에 성공한 고인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다 채우진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 데 반발, 사퇴했기 때문이다.

야인으로 있던 고인은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다시 한번 국회 입성을 노렸지만, 그해 초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았다. 이후 8개월간 골수이식과 항암치료를 받았고, 병마를 극복한 그는 이듬해 재보선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며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한 그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JP에 이은 충청권의 대표 주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취임 두 달이 되지 않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불거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졌고, 그는 63일 만에 불명예 퇴진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지만, 정계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총선 때 대전 지역에서 출마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그는 “세대교체와 함께 인재 충원의 기회를 열어 주는 데 기여하고 한다”며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그는 최근 병세 악화로 위중한 상태에 빠졌고, 결국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은 이날 오후 4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16일, 장지는 충남 청양 비봉면 양사리 선영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