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1년7개월 만에 사퇴…"정의·상식 무너지는 것 두고볼 수 없어"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한 시간여 만에 즉각 수용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2019년7월 취임한 지 1년7개월 만이자 임기를 142일 앞둔 이날 중도 하차를 선언하면서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등 높은 지지를 받아왔던만큼, 윤 총장의 사의 표명은 정치권에 큰 반향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면서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말했다.

다만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그동안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리고 제게 날 선 비판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정계 진출과 관련한 명시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곧 윤 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 윤 총장은 2019년 7월25일 취임한 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의혹 수사하며 정부·여당과 사이가 틀어졌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취임한 뒤에는 징계 등 윤 총장을 겨냥한 조치도 이어졌다.

최근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목표로 한 더불어민주당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립 계획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전날에는 대구고·지검을 찾아 중수청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2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권 박탈 시도를 막을 수 있다면 총장직을 100번이라고 걸겠다고 밝힌 뒤 청와대가 불편함 심기를 드러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윤석열(오른쪽) 검찰총장이 3일 오후 직원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구고검과 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권영진 대구시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행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24일 법원 결정으로 업무에 복귀한 뒤 가진 첫 공개 일정으로 ‘보수의 심장’ 대구를 찾으며 대선주자로서 존재감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검사로 사회생활을 첫 시작한 초임지로, 감회가 특별하고 고향에 온 것 같다”며 대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보탰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윤 총장의 사퇴는 보수 중도 민심이 급격히 흔들리면서 이번 재보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윤 총장의 사퇴로 가덕도신공항 등의 이슈를 가려질 수 있어 민주당에겐 악재”라고 분석했다.

실제 대선주자로서 윤 총장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추 전 장관과 대립각을 세울수록 그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여론조사기관 알앤서치가 데일리안의 의뢰로 차기 정치지도자로 가장 적합한 인물을 묻는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윤 총장(24.55%)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22.5%)와 이재명 경기지사(19.1%)를 꺾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윤 총장이 정계에 입문하기 까진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은 “윤 총장은 검찰이 허수아비로 전락하는 것을 두고, 최고의 항거 수단인 ‘사퇴’로 의사를 표명했다. 정치권, 특히 야권에서 윤 총장을 영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진 정치에 발을 담그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스스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자칫 정치하기 위해 총장직을 내버렸다는 여론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윤 총장의 사퇴로 범야권에 유력한 대선주자가 나타났다”며 “검찰총장직을 내려놔 윤 총장이 자연인 신분이 됐기 때문에 언제든지 범보수 쪽에서 윤 총장을 추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일요신문의 의뢰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사흘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 따르면 윤 총장은 21.8%를 기록했다. 1위는 이 지사(28.0%)였고, 이 대표(14.3%)는 윤 총장에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각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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