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75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외침에 북한은 응답할까.

문 대통령은 22일(미국 뉴욕 현지시간)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국제사회에 종전선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2018년 제73차 총회에 이은 두 번째 종전선언 지지 호소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면서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평화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북미 대화의 핵심 의제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 관련국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이날 문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봤다. 문 대통령은 미중 정상 앞에서 북미 간 의제를 유엔 차원으로 끌고 가며 한반도 종전선언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또 임기가 1년 8개월 남은 만큼, 한국 정부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적극 호응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확실한 만큼, 북미 대화 재개에 서둘러 불씨를 붙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남북관계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개선해 한반도 비핵화를 견인하는 구상을 현실화하기에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다만 문 대통령의 전략적 구상대로 국제사회가 움직이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이슈에 밀려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식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환경, 경제, 외교 등 각종 정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사실상 대선 유세장으로 활용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가 호재로 작용하긴 힘들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북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는 맥 빠지는 상황이다. 시 주석 역시 혈맹국인 북한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북한보다는 미중 갈등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의 연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외침이 ‘메아리 없는 함성’ 된 모양새다.

이에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3일 “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그러면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겠느냐”면서 “ 인내심을 갖고 내일을 준비하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는 중단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는 교착국면을 뚫기 위해 멈춰서 있는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의 시계를 분침, 또는 초침이라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종전선언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아침 메시지를 발신했다고 당장 오늘 밤에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꿔나가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 70주년이라는 상징성 있는 해를 맞아 지속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대화 의지를 전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남북관계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북한은 오히려 4·27 판문점 선언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것으로 응수하며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주도로 군사행동을 본격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제지한 이는 다름 아닌 김 위원장이었다.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은 김 위원장에게 문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몽골이 함께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새롭게 제안했다. 앞서 코로나19를 매개로 남북 간 방역·보건협력을 제안했지만 호응이 없자 다자협력의 틀로 범위를 확대시킨 것이다. 의료 체제가 낙후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가는 길이 결정될 전망이다. 아울러 북한이 종전선언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수도 있어, 미국 정부의 반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이 원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제안보다는 미국으로부터의 답변”이라면서 “문 대통령의 이번 연설에서의 종전선언 제안은 실질적인 결실을 맺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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