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대선공약, 2004년 헌재서 위헌

민주당, 지역균형발전 앞세워 행정수도 '끝장추진'

통합당 "'재미' 한번 더 보려는 발상…논의 불참"

정부세종청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재점화됐다. 관습헌법을 이유로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지 16년 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차원의 특위 구성을 제안한 데 이어 당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는 등 속도전에 나섰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부동산 정책 실패를 덮기 위한 것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여야의 입장 차가 나뉜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의 ‘중원공략’이 재집권 시나리오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정책으로 들끓은 민심을 잠재우려는 시도일 수도 있겠지만, 더 큰 목적은 오는 2022년 치러질 대선을 겨냥한 포석이라는 시각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2002년 대선이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전국적으로 1201만4277표(48.91%)로 1144만3297표(46.58%)를 얻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노 후보는 대전, 충남, 충북을 아우르는 충청권에서 이 후보(95만2914표)보다 25만6286표를 더 얻었다. 특히 대전(55.09%)과 충남(52.15%)에서의 득표율은 선거에서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51.30%)과 경기(50.65%)보다 높았다.

당선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 11월 신행정수도건설 국정과제에서 “(충청권) 신행정수도 건설을 주제로 내가 지난 대선에서 좀 재미를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전통적인 스윙보트(swing vote·뚜렷한 지지성향이 없어 투표 결과가 자주 바뀌는 것) 지역으로 꼽히는 충청권의 표심이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인정한 셈이다.

이 후보는 충남 예산 출신이었지만, 부산 출신인 노 후보에게 충남을 비롯한 충청권에서 오히려 25만여표가 적었던 게 결정적인 패인중 하나로 꼽혔다. 노 후보가 내놓은 충청권 행정수도 공약에 대해 한나라당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행정수도 공약은 충청권 표심을 크게 흔들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내건 행정수도 이전은 2004년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좌절됐다. 헌재는 ‘대한민국의 수도를 서울에 둬야 한다’는 관습헌법 논리로 위헌이라 판단했다.

해묵은 논의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청와대, 국회, 정부 부처가 모두 세종특별자치시로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과밀 억제를 해소하면 국가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으로, 전날에는 당내 행정수도완성추진 TF를 구성하기도 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청와대·국회·대법원·헌법재판소를 세종시로 옮기는 행정수도특별법을 재발의하기도 했다.

다시 불붙은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속도를 내는 민주당과 달리 통합당은 ‘정치적 꼼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부동산 문제로 궁지에 몰린 데 따른 임시방편이자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계산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이 또다시 행정수도 이슈화에 성공하면,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에다 충청표를 합해 2022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이전에 말씀하셨다시피 ‘행정수도 문제로 선거에 재미 좀 봤다’는 그런 발상”이라며 “(민주당이) 재미 한 번 더 보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논란, 인천 상수도 유충 문제 등을 언급하며 “저희는 민주당이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엉뚱한 데 이슈를 던진 것이라 보고 가급적 논의를 확대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문제인데, 민주당이 부동산 문제 등으로 화난 민심을 달래고, 나아가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권력 유지에 목적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대선까지 고려한 정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논란이 된 부동산 문제에 대한 여러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 중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노무현 정부 때는 정부부처만 세종으로 이전한다는 의미에서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민주당은 청와대와 국회 등을 옮기겠다는 수도 이전을 주장하면서 관습적으로 이전에 사용하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정무적 관리를 한 것”이라면서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대책의 하나로 지방분권 균형발전의 연장 선상에서, 중장기적으로는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꺼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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