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참사 빈소서 발언 논란 이어 '대한민국 재도약의 길' 강연서 '막말' 사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데일리한국DB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여권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의원이 ‘남자는 엄마 되는 경험을 못 해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든다’는 발언에 사과했다. 지난 5월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분향소에서 법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유가족의 요구에 ‘저는 국회의원이 아니다’고 말해 고개를 숙인 지 50여일 만이다.

이 의원은 지난 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오늘 아침 제가 강연 중 했던 일부 발언이 많은 분께 고통을 드렸다”며 “저의 부족함에 통감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분들께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이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한민국 재도약의 길’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의원은 새로운 한류로 떠오른 한국의 산후조리 시스템의 강점을 설명하며 “이낙연의 학설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감동적인 변화는 소녀가 엄마로 변하는 순간”이라면서 “남자들은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해서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든다”고 말했다.

이는 곧 시대착오적이고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특히 출산 여부로 남성에게 ‘철이 안 든다’고 한 것은 성차별적 소지가 다분하다는 비난이 일었다. 난임이나 비혼 등 여러 이유로 출산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온라인에서는 이 의원의 발언을 단순 농담으로 봐야 하는 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의원의 발언은 정치권에서도 뭇매를 맞았다.

김은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 국가의 총리를 지내신 분의 입장이라기엔 섭섭한 발언”이라며 “출산을 하지 않으면 철이 없다는 건가. 비혼이거나 난임 부부에 대해서는 공감도 배려도 없는 차가운 분이었나 다시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도 “출산을 경험한 여성을 우대하는 척하면서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 모두 전가했다”며 “출산을 하지 않기로 하거나 난임인 부부 등 다양한 형태의 삶 역시 배제한 점잖은 막말”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1982년 어느 날, 한 생명을 낳고 탈진해 누워있던 아내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라며 “오늘 아침 강연에서 저는 30대 초반에 제가 아버지가 됐던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이 말을 꺼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려는 뜻이 있을 리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 의원은 "어머니라는 존재는 놀랍고 위대하다. 모성의 소중함에 대해 말씀드리며 감사드리고 싶었지만, 정작 어머니를 비롯해 세상의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희생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여성만의 몫일 수 없다. 부모가 함께해야 하고, 직장, 마을, 국가가 해야 한다”라며 아직 우리 사회가 갈 길은 멀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제가 30대이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삶의 모습과 선택은 다양해졌다”라면서 “이번 일을 통해 많은 분이 제게 깨우침을 주셨다. 잘 듣고, 더 가깝게 소통하겠다. 더 넓게 우리 사회를 보겠다. 시대의 변화와 국민 한분 한분의 삶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챙기겠다"고 논란이 된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문제는 이낙연 의원의 발언이 논란으로 번진 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지난 5월 이천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이천시 서희 청소년문화센터 체육관에서 일부 유가족이 화재사고 해결을 촉구하자 “국회의원이 아닌 한 조문객으로 왔다. 현직에 있지 않아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 의원은 2013년 5월 19대 총선에서 당선됐으나, 이듬해 7월 지방선거에서 전라남도지사에 선출되면서 의원직을 내려놨다. 이후 이번 4·15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됐다. 21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지난 5월 30일부터 시작됐다. 이 의원이 이천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는 국회의원 임기 시작 전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권 유력 대권 주자로서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치권에서는 ‘막말’ 논란이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이 의원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당권에 이어 대권에 도전하려는 이 의원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이 의원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2~26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2537명을 대상으로 벌인 ‘6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전월 대비 3.5%포인트 하락한 지지율 30.8%를 기록했다. 이천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한 발언이 논란된 뒤 2개월 연속 지지율이 하락한 셈이다.

2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지율 15.6%로 나타났다. 새롭게 조사 대상에 포함된 윤석열 검찰총장은 10.1%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단숨에 3위(야권 주자 1위)에 올랐다. 이 밖에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5.3%,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4.8%, 오세훈 전 서울시장 4.4%, 안철수 전 의원 3.9% 등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무선(10%), 전화면접 및 무선(70%), 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진행됐다. 통계보정은 2020년 4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 연령, 권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1.9%포인트다. 응답률은 4.1%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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