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만들자는 기대·희망…찜통더위에도 추도식 2만여명 방문

부시 전 美대통령 “노 전 대통령, 미래를 바라봤던 선구자”…권양숙 여사 위로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공연 중 자원봉사자들이 나비 날리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해 봉하마을=데일리한국 김동용 기자] 올해 추도식 슬로건인 ‘새로운 노무현’에 담긴 메시지 때문이었을까.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은 숙연함 대신 기대와 희망을 품은 기운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이날 대부분의 참배객들은 행사장을 약 2km 남겨둔 지점부터 차량에서 내려 그늘 한점 없는 도로 위를 걸었다. 경상 내륙 일부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됐을 정도로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그들의 발걸음엔 힘이 넘쳤고, 표정과 목소리는 밝았다.

행사장 좌석은 추모식이 열리기 훨씬 전부터 다 찼고, 주변 잔디밭을 넘어 출입통로까지 참배객들로 가득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노무현재단은 이날 오후 5시 기준 약 2만명이 봉하마을을 방문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23일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 권양숙 여사와 손녀 노서은 양 등이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참석으로 검문·검색은 지난해 보다 더 강화됐다. 부시 전 대통령은 추도사를 낭독하고,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자신이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선물했다.

행사장 입구에 몰려있던 참배객들은 부시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환담을 나누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사저로 걸어갈 때, 그의 이름을 연신 연호하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의 환담에서 노 전 대통령을 “미래를 바라봤던 선구자이자, 친절했던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권 여사는 답례로 노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이 두 손을 맞잡은 모습이 새겨진 판화 작품과 노무현재단이 제작한 10주기 특별 티셔츠를 선물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손녀인 노서은 양의 안내를 받아 서재를 둘러본 뒤 추도식장으로 이동했다.

특히 부시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노서은 양과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걸으며 참배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참배를 마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손녀이자 아들 건호 씨 딸 노서은 양과 팔짱을 끼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 씨의 딸인 서은 양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5살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일상생활이 담긴 사진 속에 자주 등장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 들녘을 달리는 사진 속 손녀가 서은 양이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공식 석상에서 서은 양을 자주 언급하며 아끼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무현재단이 서거 10주기를 맞아 제작한 공식 로고에는 훌쩍 커버린 서은 양이 노 전 대통령을 자전거 뒤에 태운 모습이 그림으로 담겼다.

추도식 첫 순서로 무대에 오른 건호씨도 부시 전 대통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아버지께선 부시 전 대통령의 지적 능력과 전략적 판단에 감탄하시곤 했다”며 “짚어야 할 것은 반드시 짚고, 전략적 사안의 핵심을 놓치는 법이 없다고 경탄하시던 것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회상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공식 추도식에 앞서 사저를 방문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무현재단 제공
부시 전 대통령은 특별영상 상영 뒤 무대에 올라 “가족과 국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노무현 대통령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자리를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에 대해 “인권에 헌신한, 친절하고 따뜻한,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한 노 전 대통령을 기리고자 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있게 내는 강력한 지도자였다. 그 대상은 미국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떠올렸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에게 선물한 자신이 직접 그린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화. 사진=노무현재단 제공
여권 주요인사들의 추도사도 이어졌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강물처럼 가겠다”고 다짐했으며, 이낙연 국무총리는 “대통령께서 꿈꾸시던 세상을 이루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멈추거나 되돌아가지 않고 깨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친상을 당해 추도식에 참석 못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 정영애 재단 이사는 “10주기를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이 회한과 애도의 대상이 아닌 용기를 주는 이름, 새로운 희망과 도전의 대명사로 우리 안에 뿌리내리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가수 정태춘 씨가 ‘떠나가는 배’와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상록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참석자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추모의 마음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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