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미 ‘진술 뒤집기’에도… 믿었던 측근들 ‘나 몰라라’ 증언회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

횡령 및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이명박(77·구속기소) 전 대통령이 잠깐의 안도를 누렸다. 그의 항소심 재판에서 측근이 증인으로 나와 그에게 매우 유리한 증언을 해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증언을 통해 이 전 대통령 측은 다스 및 기타 차명재산 소유 의혹에 있어 기존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서 검찰 측과 다툴 수 있게 됐다. 또 여러 공소사실에 반대되는 증언이 쏟아지며 이 전 대통령 측 주장이 향후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이런 안도의 한숨은 곧바로 막막한 한숨으로 바뀌고 있다. 추가로 자신에 유리한 증언을 해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던 측근들이 증인신청에도 연달아 재판정에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증언을 회피하면서 향후 다른 증인들 역시 출석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오히려 이 전 대통령의 불안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인겸) 심리로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제3차 공판에서 권영미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언론에서 ‘MB처남댁’으로 알려진 권씨는 이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고(故) 김재정씨(전 다스 대표)의 부인으로, 김재정씨 사후 재산 상속을 통해 ㈜다스 지분을 물려받아 현재는 23.6%의 다스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다.

또 권씨는 이 전 대통령의 지시로 다스가 무역회사를 인수해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 개발회사인 홍은프레닝㈜의 대표로도 재직했다.

때문에 권씨는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이 전 대통령이 ㈜다스와 가평 별장, 옥천 임야 등의 재산을 김재정씨를 통해 차명으로 소유했다는 부분에 대해 말해 줄 핵심 증인 중 한명이었다.

특히 검찰은 김재정씨 사후 상속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의 차명재산이 드러나지 않도록 청와대 공무원들을 동원해 상속세 탈세 방안 등의 검토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고, 권씨는 김씨의 주요 상속인이었던 만큼 이 부분 의혹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이날 재판에서 권영미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뒤집는가 하면, 대부분 이 전 대통령에 상당히 유리한 증언을 했다.

우선 이 사건 1심 판결에서 사실로 인정됐고 그동안 이 전 대통령의 다스 의혹과 관련해 진부할 정도로 다뤄져 온 부분인 ‘김재정씨가 이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이라는 점에 대해 권씨는 기존 검찰 진술 내용을 사실상 부정했다.

실제로 권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김재정씨가 이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재산상황까지 관리한 것이 맞냐는 질문에 긍정했다.

그런데 이날 재판에서는 김재정씨가 생전 이 전 대통령의 현금입출금이나 전체적 재산을 관리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며, 단지 이 전 대통령 소유 영포빌딩 등 건물 3채만이 관여됐을 뿐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김재정씨가 이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이 아닐뿐더러, 다스와 가평 별장, 옥천 임야 등의 부동산 역시 이 전 대통령이 김재정씨를 통해 차명으로 소유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이날 권씨는 지난 1980년 중반 김재정씨로부터 향후 자동차 부품회사의 전망이 좋기 때문에 그곳에 투자해 회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김재정씨가 80년대 초반 현대건설에서 퇴사해 아버지 회사일을 도우면서 토목 공사일로 부를 축적했고, 그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며 유산도 상속받아 회사를 설립할 여유가 충분했다는 설명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남 고(故) 김재정씨. (사진=연합)

권씨는 “그때(다스 설립 시기) 남편의 재산이 알고 싶어서 100억원이 되냐고 물으니 ‘그건 넘지’라고 했다”라고 증언했다.

당시 김재정씨가 다스를 설립할 정도의 자금력은 충분했고, 이 전 대통령을 대신해 차명으로 회사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는 취지였다.

무엇보다 권씨는 검찰에서 역시 이 전 대통령이 실제로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가평 별장과 옥천 임야에 대해서도 김재정씨가 80년대 중반 당시 사들인 여러 부동산 중 일부였을 뿐 차명재산이 절대 아니라고 반박했다.

권씨는 “매스컴에서 그렇게(차명재산)이라고 나와서 저도 이해가 안 가지만, 옥천 임야는 제일 규모가 크고 가평 땅은 서울에서 가까워서 제일 괜찮은 것이라 대통령의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생각한다”라며 “대통령이 가평 별장에 가끔 놀러 갔을 때도 같이 간 지인분들에게 ‘이것(별장) 김재정 것인데 내가 잠시 빌렸다’라는 말씀도 하셨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 가평군 별장은 이 전 대통령이 지인들과 테니스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테니스코드가 만들어진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권씨는 김재정씨가 이 전 대통령이 다른 곳에 가면 피해를 입힐 수 있어서 매형을 위해 특별히 마련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검찰로부터 진술 압박”… 기존 진술 여럿 뒤집은 권영미

이 사건 1심 판결문에는 권영미씨는 지난해까지 김재정씨 명의 재산의 규모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 내용은 권씨의 검찰 진술조서에도 이미 반영돼 있었다.

그러나 권씨는 이 부분마저 뒤집었다. 그는 이날 재판에서 자신이 김재정씨 생전 재산 중 현금액수의 규모를 정확히 몰랐을 뿐, 부동산 소유 여부 및 대체적인 재산 규모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재정씨 사후 상속을 위한 각종 서류를 받고 나서는 관련 사항을 전부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입장으로, 다시 말해 1심 판결문에 적시된 해당 내용에 오류가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권씨는 “검찰조사 때 기억나지만 검사님이 땅 사진을 보여주면서 ‘다 모르시죠’라고 했고, 제가 ‘아뇨, 제가 다 알아요’라고 말했다”라며 “저는 김재정 회장이 당시 가지고 있던 정확한 현금액수를 몰랐을 뿐이지 만약에 부동산이었다면 지금처럼 대답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권씨는 김재정씨 상속재산 중 증권사 계좌에 들어있는 현금과 주식이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 아닌 만큼 스스로 처분하거나 운용해 왔다고 강조했다.

권영미씨는 김재정씨 상속재산 중 다스 총 발행주식수 5%에 대한 청계재단 출연이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

무엇보다 검찰 공소사실에 적시된 김재정씨 사후 청와대 공무원을 통한 상속세 탈세 방안 검토 부분 중 이 전 대통령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 지시해 김재정씨 명의 다스 총 발행주식수 5%를 청계재단에 출연하게 한 점에 대해서도 권씨는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권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재정씨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친한 친구의 남편이 사망했고 고인의 장례식장이 당시 김재정씨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 마련돼 있었다.

이에 권씨 역시 문상을 갔고 그때 고인이 상속재산 일부를 권씨 친구의 명의로 장학재단을 만든 것을 보게 됐다. 권씨는 이것이 향후 감세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회계법인과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과의 상담을 통해, 김재정씨가 소유하던 다스 주식 5%를 청계재단에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하도록 추진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오히려 권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검찰 측으로부터 “김재정씨가 남긴 재산이 정말 자신(권영미)의 것이라고 하면 수백억 상속세 포탈”이라는 질문을 들었고, 다시 말해 김재정씨 상속재산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라는 취지의 압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권씨는 김재정씨 상속재산은 그가 자신에게 물려준 재산이 맞으며,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중에 돌려달라는 말을 듣거나 해당 재산 중 권씨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MB, 권영미 증언에 잠깐의 안도… 측근들의 증언회피에 또 다시 막막

앞서 언급했듯이 이날 권씨는 다스가 김재정씨가 직접 설립한 회사이며 이 전 대통령이 김재정씨를 통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각종 차명재산 역시 사실이 아닌 점 그리고 상속 과정에서 여러 의혹들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 있어 이 전 대통령 측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증언을 쏟아냈다. 이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다소 안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권씨는 다스의 제1차 협력업체인 ㈜금강의 명목상 지분을 보유하고 매달 허위 급여를 받았다는 혐의로 지난해 검찰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후 아직 기소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만큼, 비교적 자신의 사건에 유리한 방향으로 증언을 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 (사진=연합)

같은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7월 1심에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 측 역시 재판 과정에서 “권영미씨가 자신의 범행을 이병모 국장에게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과의 공범들 간의 다툼이 있는 인물인 권영미씨의 이날 증언이 이 전 대통령의 향후 항소심 재판 향방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증인들 역시 이와 같은 장단에 맞추는 증언에 나서 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측이 믿었던 주요 증인들은 줄줄이 증인신문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이 사건 2차 공판에서 첫 증인으로 신청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불출석한 것을 시작으로 측근이었던 제승완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김성우 전 다스 사장 그리고 18일에는 권승호 전 다스 전무 역시 재판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들 모두 이 전 대통령이 1심 판결에서 유죄로 인정된 부분에 대해 증언해 줄 핵심증인임은 틀림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

특히 이후 가장 중요한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최측근’ 김백준 전 청와대 기획관 역시 증인 출석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당연히 이 전 대통령 측은 잠깐의 안도 이후 더욱 애가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인 강훈 변호사는 지난 16일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 “검찰에 나가서 10여 차례나 진술한 사람이 마땅히 법정에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증인으로 신청된 이들이 의도적으로 증언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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