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와 10·4 선언 사실상 무력화시킨 보수, 정권교체 뒤 4·27 선언도 효력 정지 노려

민주당 “비핵화와 판문점선언, 직결되는 건 아냐…종전선언 위해서라도 초당적이어야”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성태 원내대표 등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판문점 선언 일방적 국회비준을 반대한다며 손피켓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정부는 지난 9월11일 ‘4·27판문점선언 비준동의’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며 案(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어느덧 한 달이 지났지만, 비준동의안 처리는 여전히 야당의 반대 속에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있다.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에는 남북 정상이 새로운 한반도 평화시대를 천명하며 도출해낸 판문점선언의 합의 내용이 차후 뒤집어지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 공포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에 대해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 공포하겠다고 밝힌 이유와 배경에 대해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정치권은 여야가 ‘찬성 VS 반대’ 프레임에만 매몰돼 있어 비준동의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불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합당한 이유를 국민들에게 명확하게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남북합의서가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를 받지 않았을 경우,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 정지가 가능하지만, 동의를 받은 경우엔 효력의 정지 역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하다.

이에 비춰볼 때 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에 대해 국회 비준을 받겠다고 밝힌 것은 4·27판문점선언에 앞서 체결된 6·15남북공동선언이나 10·4남북공동선언이 정권교체 이후 새로운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좌우되면서 그 효력을 상실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경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문 대통령은 판문점선언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냄으로써 향후 판문점선언의 효력을 뒤집으려는 대통령이 나타난다고 해도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효력 번복'이 가능하도록 사전에 ‘견제장치’를 마련하려 한다는 얘기다. 경험을 통해 체득한 나름의 강구책인 셈이다.

문 대통령은 각각 6·15와 10·4 공동선언을 체결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진보 정권의 후계자로 평가받고 있다.

두 진보정권 이후 보수정권에서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효력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아픈 경험을 겪은 문 대통령이 향후 다시 보수 정권이 등장하더라도 판문점선언의 효력을 유지토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반도의 상황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국회는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상임위에 상정조차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멈춰있다”고 지적한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꿈쩍도 않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판문점선언 내용에 동의하지 않고, 정권이 교체되면 그 효력을 정지시킬 것’이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야당이 비준동의안 반대에 목을 매고 있다는 얘기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다음 총선에서 야당이 이기면 정권이 바뀌기도 전에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이 뒤집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면서 “(정부·여당이)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평화당 장병완(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판문점선언 비준동의를 반대하는 야당에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정부가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기 전부터 협조 의사를 밝혔다. 정의당은 지난 8일에는 민주당과 함께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를 국회에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하며 판문점선언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한국당은 비준 동의에 대해 사실상 ‘결사 반대’에 가까운 입장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비준 동의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북한 비핵화 상황의 진전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한국당 소속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강석호 의원 역시 “비준 동의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가시적 조치가 나오기 전까지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윤영석 수석대변인도 “비핵화가 완료되고 평화가 완성된 것처럼 국민을 기망하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있다며 비준 동의는 성급한 추진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 핵심 인사들은 사상 처음으로 한 해에 남북정상회담이 3번 치러지고, 2번째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까지 판문점선언 비준안을 동의할 수 없다는 뜻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한국당보다 한발 더 나아가 국회 비준 자체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판문점선언은 국가 간에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비준하면 된다는 법리적인 해석이 있다”면서 “국회 비준 동의는 국론의 분열만 가지고 온다. 대통령이 비준하면 끝”이라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 같은 야당의 반대에 대해 “‘보수당’의 정체성과 ‘여당 압박’이란 전략적 차원에서 비준 동의를 해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연내 비준동의’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한국당을 겨냥해 “아직도 일부에선 판문점선언을 국회에서 비준하기에는 비핵화의 진도가 미흡하다는 지적들이 있다”면서 “비핵화와 판문점선언이 직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연내 비준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의 ‘연내 비준동의’ 발언은 문 대통령의 ‘연내 종전선언’ 목표와 맥이 닿아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의 이정표’라 규정한 종전선언을 국제사회를 향한 올해 마지막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는 남북 냉전시대의 종식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맨날 밖으로 돌아다니며 종전선언을 외친다고 그게 되겠는가. 설사 된다 하더라도 한국 내에서도 단합이 안 되는 평화 외침이 국제사회에 어떤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면서 “종전선언을 위해서라도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에는 국회가 초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평화를 향한 진정성 있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야권 핵심관계자는 비핵화 진전 속도를 언급하며 판문점선언 비준동의는 시기상조임을 거듭 밝히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은 판문점선언뿐 아니라 전반적인 대북관계에 있어 ‘감성팔이’ 전략이 너무 극단적”이라며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으며,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실천적인 조치가 이뤄지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 해도 절대 늦지 않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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