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동시 행동 원칙’ 전제 깔며 “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 실현” 천명

18~20일 평양 정상회담서 진일보된 실천적 비핵화 내용 언급될 수도

전문가 “북미정상, ‘자존심 대결’…‘폼페이오 방미·비핵화 여건 조성’ 주목”

한반도 정세를 가늠할 남북미 정상들. 좌측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5일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 시간표’를 언급하면서, 그간 동력을 잃은 듯 하던 비핵화 시계추가 다시 한번 숨 가쁘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대북특사단을 이끌고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김정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안에 70년간의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트럼트 대통령의 임기는 2021년 1월 20일까지다. 따라서 2020년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는 비핵화 조치를 완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의 ‘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 실현’ 천명은 여러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다.

먼저 김 위원장이 언제까지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구체적인 시간을 본인의 입으로 처음 언급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교착의 수렁에 빠진 듯 하던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풀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직후 미국이 북한에 대해 비핵화 조치 완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라는 목표 시점을 선제적으로 요구한 바 있기 때문이다.

즉 김 위원장의 ‘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 실현’ 약속은 이 같은 미국의 요구에 대해 전격적으로 동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 됐다.

물론 비핵화 방법론에 있어서는 북미간 의견 접근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위원장이 비핵화 시간표를 스스로 공식적인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그가 북미협상 재개에 대한 강한 바람을 갖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가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이번 특사단의 중요한 성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남북관계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정전 당사국들과 향후 비핵화 문제를 풀어나갈 또 하나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의미도 있다.

문 대통령이 6일 청와대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1차 회의에서 환한 미소로 “특사단 방북 결과는 정말 잘 됐다”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 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5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최우선적인 비핵화 협상 국가는 미국이다.

즉 미국이 김 위원장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건인 셈인데, 한반도 비핵화의 적극적 조치라는 ‘시그널’로만 보면 협상 재개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미국의 입장 변화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게 ‘동시 행동 원칙’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의용 실장은 “북한은 선제적 조치들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진다면 비핵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고 전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일방적 비핵화는 없다’는 미국에 전하고 싶은 말을 우회적으로 우리 정부에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이 특사단을 만나 밝힌 대미 메시지는 이 뿐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한·미 동맹이 약화된다 또는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것들은 종전선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을 한·미 동맹과 처음부터 연결할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 등의 한·미 양국의 일부에서 제기하는 우려에 대해 ‘기우’라고 해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또 “비핵화 결정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느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자신의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쇄 등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달라고 미국에 촉구한 것으로 보여지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이외에도 비핵화와 종전선언 등 상응조치를 둘러싼 북미간 이견을 해소할 '플랜'을 특사단에 일부라도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오는 18~20일로 예정된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위원장이 비핵화와 관련해 ‘실천적 내용’을 밝힐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실천 로드맵을 사전에 우리 특사단에 밝힘으로써 18일 방북하는 문 대통령이 미리 트럼프 대통령과 비핵화 문제에 대해 조율을 끝내놓고 자신과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창희 동국대 북한학과 외래교수는 “특사단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것은 우리가 줄 것이 있어서 만난 게 아니라 김 위원장도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론하면서 "조만간 개최될 평양 정상회담에서 진일보된 비핵화 조치 내용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만일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만나 한결 높은 수준의 실천적 비핵화 내용을 내놓게 되면 한미 정상은 어떻게 화답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법은 그동안 미진했던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풀 핵심 키워드로 지목된다.

일단 미국과 북한의 맞교환할 내용이 ‘체제보장'과 '비핵화’로 이뤄진다는 점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이 선제적으로 해줘야 할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북미간 협상이 균형을 이뤄야 하지만, 비핵화 조치라는 양보가 먼저 이뤄져야 미국이 북한의 체제보장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핵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선제적인 양보 이후 체제보장에 대한 약속을 과연 어디까지 지켜나갈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김 위원장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임기제 대통령이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공통점은 ‘프라이드’(Pride·자존심)”라면서 “지금 양 정상은 ‘프라이드 파이트’(Pride Fight·자존심 대결)를 벌이고 있다”고 풀어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우리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프라이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비핵화를 서서히 이끌어내고,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미국이 북한에 양보하는 구도로 달래가면서 '절묘한 역할'을 해내야 한다”면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얘기할 때마다 ‘당신 덕분’이라고 치켜세워주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적어도 지금의 (비핵화 교착) 국면은 북한이 선제적으로 양보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특사단을 향해 ‘종전선언을 해주면 과감한 것까지 비핵화를 하겠다’는 내용까지 말한 것 같다”면서 “그렇다면 비핵화 협상 중간에 폼페이오가 (북한에) 가느냐 아니면 우리가 비핵화 여건을 더 만들어서 그 이후에 미국에서 얘기하느냐의 여부가 앞으로의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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