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담론·기조 놓고 청와대와 정면 승부…반(反)정부 전선 구축

‘박정희 향수 지우기’로 ‘친박’ 우회 타격…신(新)기조 내세워 ‘인적 청산’

홍준표식 ‘나를 따르라’ 리더십과 차별화…‘아젠다’ 던지고 민심 속으로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대위원장이 1일 오전 국회에서 전통시장 등 이날 오전 실시했던 민생현장 방문결과를 브리핑하기에 앞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김동용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탈(脫)국가주의’가 정치권에 일으키는 파장이 심상치 않다. 효과적인 대정부공세·당내 인적청산에 이어 직전 당 지도부와 차별화까지 노릴 수 있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문재인정부가 받아들이는 김병준발(發) ‘국가주의 논란’은 무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정부가 시장과 시민사회에 지나치게 개입, 국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이 청와대정책실장을 지냈던 노무현정부에 대해서는 ‘분권’과 ‘자율’이 핵심가치였기 때문에 문재인정부와는 엄연히 결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 정부의 근본을 뒤흔들 수도 있는 발언으로, 자칫 ‘적자 논란’까지 이어질 수 있어, 정부여당으로서는 신중한 대응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처럼 ‘막말’과 ‘막무가내식’ 이념공세·비판이 아닌, 정책의 담론과 기조를 놓고 대결을 펼치는 구도가 형성돼 6·13지방선거 이전과는 다른 대응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점도 까다롭다. ‘국가주의 논란’은 현 정부의 대선 과정 핵심공약이었던 ‘적폐청산’으로 맞불을 놓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여당의 지지율 고공행진 요인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민심이 꼽혀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뼈아픈 대목이다. 바꿔 말해 ‘손 쉽게 큰 효과를 냈던 무기’는 쓸 수가 없고, 상대적으로 ‘신경 쓰지 않았던 방패’는 재정비가 필요하게 됐다.

더군다나 김 위원장은 정부 여당에 맹목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소위 ‘배신자 논란’에도 “노무현 정신은 ‘여기도 대한민국, 저기도 대한민국’”이라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주의 논란’도 표면적으로는 국가경제 시스템 개선을 위한 ‘대의’로 비춰지고 있다. 상대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03년 10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 회의에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당시 정책실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입장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일 ‘데일리한국’과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현 정부를 두고 국가주의에 가깝다고 한 발언은 완전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며 “이상주의자들의 당위론적 주장에는 반드시 국가주의가 수반되는데, 현 정권이 주로 당위론을 얘기하기 때문에 국가주의라는 지적이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의 ‘탈국가주의’는 정부여당뿐 아니라, 당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에게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최근 김 위원장이 문재인정부에 이어 ‘박정희 정권’도 ‘국가주의’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식 국가개입에 동의하는 사람은 같이 갈 수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 대표실에 걸려있는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도 ‘꼭 걸어놔야 하는 것인지’ 주변에 의견을 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당내 일각에서는 ‘좌클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당 관계자는 “국가주의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박정희 전 대통령인데, 처음부터 문재인 대통령보다는 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정희 향수 지우기’ 논란은 지난달 26일 김 위원장과 당내 의원들간 식사 자리에서도 불거졌다. 한 의원은 김 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불만을 토로했으며, 또 다른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당의 평가와 다른 입장을 얘기해 우려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계는 태생상 박정희정권의 업적을 부정하기 어렵다. 당내 일각에서 김 위원장의 ‘탈국가주의’가 우회적으로 당내 ‘친박 청산’을 외친 것과 다름없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데일리한국’과의 통화에서 “(꼭 박정희정권 향수 지우기 논란이 아니더라도) 김병준 위원장이 취임 초 당내에서 치열한 인적싸움이나, 가치싸움을 하지 않고, 외곽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친박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이어 “친박에서는 김 위원장의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발언이 ‘노무현정당으로 가는 길’로 보일 수 있다”며 “문재인정권을 비판하면서 실제로는 ‘외곽때리기’로 자신들을 치려는 것이라고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탈국가주의’ 기조를 토대로 내놓은 정책들이 향후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경우 김 위원장은 ‘당 체질개선’을 추진하기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이에 동조하지 않는 의원들은 반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공천권이 없이 ‘새로운 기조와 가치’를 중심으로 당의 인적청산을 포함한 혁신을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새로운 기조와 가치’를 묻는 질문에 “자율”이라고 답한 뒤 “국가가 시민사회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해 국가가 주도해서 나라, 사회 경제를 이끄는 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공동주체들이 국가를 만들어가고, 혁신과 경쟁력을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결국 친박계로서는 김 위원장이 국가주의로 규정한 ‘박정희정권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당내 인적 청산 대상에 자연스럽게 포함될 수밖에 없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던진 ‘국가주의 논란’은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원하는 ‘화려한 복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나를 따르라’로 비유할 수 있는 홍 전 대표의 리더십과 ‘숱한 막말 논란’은 6·13선거 결과만 봐도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홍 전 대표의 리더십은 국민들이 ‘ 문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이슈’를 선점한 후, 관련 발언을 이어가면서 논란 속으로 정부 여당을 끌어들여 대결하는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김 위원장은 국민들이 이미 문제인식을 느끼고 있는 이슈의 한 복판에 ‘아젠다(agenda)’를 던지고. 국민들의 반응을 살피는 방식이다. 홍 전 대표와 달리 본인에 대한 비판에 품격있게 대응하는 여유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의 지지율이 올라갈 경우, 홍 전 대표는 ‘화려한 복귀’를 위한 확실한 명분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반면 김병준 위원장은 당 ‘쇄신’을 위한 동력과 본인이 추구하는 향후 ‘정치적 영향력’까지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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