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당선자] 서귀포의 아들, 고향에서 도정2막을 열다

원희룡 6·13 제주지사 당선자. 사진=원희룡 당선자 측 제공
[데일리한국 6·13특별취재팀 김동용 기자] 지방분권 이후 가장 큰 권한을 지닌 행정구역, 제주특별자치도는 향후 4년의 미래를 다시 한 번 '개혁보수의 아이콘' 원희룡 당선자의 손에 쥐어줬다.

1964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원 당선자의 이름 앞에는 '수석'이라는 단어가 따라 다닌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으며, 학력고사(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국 수석을 자치해 주목 받았다.

대학시절 노동운동에 참여했지만, 1990년 동구권의 몰락을 바라보며 사상전환의 계기를 맞았고, 대학 졸업 후 불과 2년의 준비를 거쳐 사법시험에 응시, 수석으로 합격하면서 다시 한 번 '수석 인생'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4년의 검사생활과 2년의 변호사 생활을 거쳐, 지난 2000년 정계에 입문한 원 당선자는 그해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서울 양천갑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지냈다.

특히 2004년 치러진 당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박근혜 대표에 이어 2위로 최연소 최고위원에 오르며, '젊은 피의 개혁보수' 이미지를 앞세워 당내 쇄신을 이끌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경선에서는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이어 3위를 기록, 2010년엔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는 등 끊임없이 정치도약을 위한 발돋움도 멈추지 않았다.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사무총장 등을 지내며, 자신만의 색깔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가던 시기였다.

2011년 당권 도전을 위해 이듬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약 2년간 정치무대를 떠났지만, 2014년 당의 지방선거 총력전 선포로 고향 출마를 결심해야 했다.

중앙당 정치에서 활약하느라 전무했던 행정경험은 그가 줄곧 외쳐왔던 혁신과 개혁 앞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십년간 제주정치판을 흔들었던 김태환·신구범·우근민 전 제주지사의 이른바 '제주 3金시대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제주를 열어갈 차세대 정치인을 선택해달라는 그의 간절한 호소에 제주도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로 화답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제주도민들의 선택은 다시 한 번 원 당선자였다. 제주도만의 여건을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을 실험하고 성과를 낸 그의 행정력이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지난 4년간 이뤄졌던 △제주 교통체계개편 △신재생에너지 확대 △스마트관광 시스템 추진 △지자체 최초 코딩교육을 통한 4차 산업혁명 인재양성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 등은 원 당선자의 도지사로서 저력을 보여주는 산물이다.

결국 승리했지만, 이번 선거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6·13지방선거 출마자에 대한 최초의 폭행사건은 원 당선자에게 벌어졌다.

지난달 14일 제주 2공항 토론회장에서 반대대책위원회 한 위원으로부터 날계란과 뺨을 맞은 것.

선거일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원 당선자는 다음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했던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며 "그분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며 쾌유를 기원한다"고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여론조사에서 원 당선자는 오차범위 내에서 1위를 달렸다. 여론조사 전문가들 일부는 그의 이러한 '의연한 모습'이 제주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한편 원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정규직 청년일자리 임기 내 1만개 창출 △청년을 위한 센터 설립·운영 △청년수당 월 50만원 지급 △과감한 보육의 질 향상 △교육 1등 특별자치도 등을 공약한 상태다.

다시 시작된 그의 제주도정 2막이 그가 꿈꿔왔던 미래의 스마트도시 제주로 이어질지 기대해본다.

◇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 약력

-1964년 서귀포 중문 출생
-제주제일고 졸
-서울대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제주대 명예정치학 박사
-서울지검, 수원지검 여주지청, 부산지검 검사
-제16·17·18대 국회의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제37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