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건호 "내년 추도식에는 북한 대표도 함께하는 여건 마련되길"
[데일리한국 김동용 기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도식이 23일 거행됐다.
추도식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평화가 온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을 포함해 3000여명의 추모객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렸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서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홍영표 원내대표·이해찬 의원(노무현재단 이사장),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노회찬 원내대표 등이, 정부 측에서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대통령비서실 한병도 정무수석 등이 참석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리는 김경수 민주당 경남지사 후보는 오전부터 대통령 묘역에서 추모객을 맞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지방선거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시작된 이번 추도식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한반도 평화’와 ‘지역주의 타파’ ‘민주주의 발전’ ‘반칙과 특권없는 세상’ 등이 재조명됐다.
추도식 사회를 맡은 박혜진 아나운서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시작, 그 역사적인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계절”이라며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일어나 싱그러운 5월의 빛이 밝고 따듯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 아나운서는 “평화를 향해 나아갔던 노 전 대통령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길 바랐다”며 “올해는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돌아온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인 이해찬 민주당 의원은 인사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음 속에서 함께 하시고, 문 대통령은 미국에 가셨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다른 두 분 대통령(이명박·박근혜)은 어디 계신지 모르겠다”고 말해 추모객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이 의원은 “이제 금강산이 곧 열리고, 개성도 곧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인다”며 “최근 젊은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건 기차를 타고 평양과 중국 단동을 지나 유럽을 가는 꿈, 그것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날이 멀지 않았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의원은 “북미정상회담이 잘 이뤄지면 기차표를 사서 유럽까지 갈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선언,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4선언에 이어 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까지 잘해주셨다”며 “이번 추도식이 민주진영의 전진과 평화가 오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참여정부 시절 산업부 장관과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노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반자로 활약했던 정세균 국회의장도 무대에 올라 추모사를 낭독했다.
정 의장은 “우리는 기억한다. 5·18청문회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당신의 울분과 결기를 기억한다”며 “약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지만, 불의와 부패한 권력에 대해서는 언제나 추상같았던 당신이었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비리’ 사건을 추궁하는‘5공 비리 청문회’에서 일해재단 기금 마련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업 총수들에게 논리정연하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국민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1989년 12월 ‘5공비리특위’와 ‘광주특위’ 청문회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증언대에 올라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발포사건과 관련 ‘자위권 행사’였다는 주장만 되풀이한 후 퇴장하자 “당신은 살인마야”라고 울부짖으며 자신의 명패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청문회스타’로 발돋움했다.
정 의장은 “역사 또한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할 것”이라며 “지역주의를 허물고 남북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으로 영원히 가슴에 새길 것”이라고 추모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추모사가 끝난 후에는 노 전 대통령이 육로를 이용해 판문점을 통과하는 모습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의 4·27남북정상회담 장면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앞서 지난 2000년 6월13일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는 분단 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북한 평양으로 향했다.
김 전 대통령은 회담 마지막날인 6월15일 △자주적 통일 △한국의 연합제안과 북한의 연방제안의 공통점 인정 △이산가족 및 비전향 장기수 문제 인도적 해결 △경제발전 협력 및 그 외 분야 교류 등의 내용이 포함된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는 2007년 10월2일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평양으로 출발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육로를 이용해 판문점을 통과해 이슈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회담 마지막날인 10월4일 △6·15 공동선언 구현 △상호존중 및 신뢰관계로 전환 △한반도 긴장완화 및 평화보장 협력 △6자회담 및 기존 성명·합의 이행 노력 △경제협력사업 활성화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력 △인도주의 협력사업 추진 △남북 총리·정상회담 수시 개최 등 8개 조항이 담긴 '10·4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유족대표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한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씨도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다.
건호씨는 “한반도의 평화정국은 지금도 조마조마한 순간들을 헤쳐 나가고 있다”며 “온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했을 때와 같이 진중하고 결연한 의지로 북측의 우리민족과 세계를 설득시켜 나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건호씨는 이어 “내년은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라며 “부디 북한의 대표도 (추모식에) 함께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황과 여건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은 시민합창단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아침이슬’이 울려퍼지며 막을 내렸다. 추도식 이후 진행된 대통령묘역 참배행사는 진해 해군의장대가 참석, 조총 발사와 진혼곡이 연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