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부 김동용 기자의 세월호 영화 ‘그날, 바다’ 후기

정치사회부 김동용 기자
[데일리한국 김동용 기자] ‘동용씨, 이제 기사는 그만 올리고 영화 보러 가야지?’ 11일 저녁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부장의 메신저 문자에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날은 이른 바 세월호 영화로 관심을 모았던 ‘그날, 바다’의 상영회가 있는 날이었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노트북을 끄고 서울 용산CGV로 향했다. 극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역시나 ‘그날, 바다’ 상영회 관람 등록 줄이었다.

정식 개봉을 하루 앞둔 상영회(시사회) 당일 즉흥적으로 이뤄진 취재인지라, 사전등록을 못했기에 행사 관계자에게 조심스럽게 관람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취재에 흔쾌히 협조해 준 덕분에 입장권을 받을 수 있었다.

상영관이 위치한 7층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행사 주최 측에서 마련한 영화 홍보용 백보드 앞에서 학생들은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상영까지 30여분이 남은 시각,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지난 2016년 ‘세월호 2주기 추모행사’를 취재하면서 비를 흠뻑 맞았던 기억,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 추모행렬에 섞여 함께 걸었던 기억 등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사실 이번 영화 취재에 대한 부담감도 없지 않았다. 상업적인 목적을 제외한다면 순수 예술이 아닌 영화, 어떤 의도가 있다고 여겨지는 영화에 대해서는 다소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자는 어떠한 특정 정치성향도 갖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자칭 ‘중도’를 걷는다는 정치인들의 단골 멘트인 ‘어떤 정책이든 공(功)과 과(過)가 있습니다’라는 표현은 기자의 가치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유가족들이 바다를 향해 목 놓아 우는 장면 등으로 2시간을 꽉 채운 영화는 아닐까’ ‘세월호 침몰 원인을 찾는다고 했지만, 결국 음모론만 제기하고 영화의 대부분은 감성적 호소에 기대는 영화가 아닐까’라는 걱정 아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그날, 바다’ 김지영감독이 관객석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기자의 ‘세월호 편견’은 영화 상영 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가족의 증언을 듣는 다거나, 관련 시민단체가 추모글을 낭독하는 등의 행사는 전혀 없었다. 김어준 총수와 김지영 감독은 아주 담담하게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떠한 내용인지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자리를 떴다.

영화는 세월호 사고가 있던 날 근처에 있었던 ‘두라에이스호’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문예식 ‘두라에이스호’ 선장은 세월호 침몰현장을 최초 목격하고, 구조활동에도 참여했기에, 사고 의문점을 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증인이기도 했다.

영화는 차분하게 세월호 사고가 있던 날로 돌아가 당시 상황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전문적인 내용은 알기 쉽게 설명하고 적재적소에 의문점을 배치,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화는 정부가 세월호 사고를 ‘급격한 우회전에 의한 단순사고’라고 발표할 때, 핵심 물증으로 제시한 ‘AIS 항적도’의 재분석과 물리학 박사를 포함한 각계 전문가들의 자문 하에 오로지 과학적 사실로만 철저하게 접근했다. ‘오직 팩트(Fact)로만 승부했다’는 김어준 총수의 무대 인사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김어준 총수와 김지영 감독은 ‘그날, 바다’로 이른 바 ‘세월호 우려먹기’를 주장하던 이들의 의표를 찔렀다. 눈물도, 호소도, 음모도 없었다. 단지 과학만 있었다. 이는 ‘연구의 목적’ ‘관련 이론 고찰’ ‘분석의 틀 정립’ ‘분석’ ‘분석결과’로 이어지는 한 편의 논문을 영상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제작진은 엉켜버린 CCTV 기록과 블랙박스 영상을 일일이 대조하며 힘겨운 짜깁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간 해외 언론을 제외한 어떠한 국내 언론과의 접촉도 꺼려했던 문예식 ‘두라에이스호’ 선장과의 인터뷰도 공개됐다.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켜지자, 그간 머릿속에 가득했던 ‘세월호 편견’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관객들 중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놀랍고 신기하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뤘다. 기자의 뒤를 따라 상영관을 퇴장하던 한 연인은 ‘이제야 진짜 침몰 원인을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왠지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이날은 김어준이라는 한 자연인의 집념이 ‘세월호 편견’에 경종(警鐘)을 울린 날로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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