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력수요 증가율 2.4%, 전력설비 증가율 10.4%보다 낮아

5G 무선통신 시대에 유선망 방식인 지능형 계량기 보급계획도 눈총

지난해 전체 발전설비의 절반이 운행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이 여전히 건설 중이다. 사진은 월성원자력발전소. 사진=위키디피아 제공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시책인 에너지전환 정책이 너무 더디게 이뤄져 빈축을 사고 있다.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 설비는 증가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과도한 전력 수요 예측으로 2017년 발전설비의 연평균 이용률이 54.2%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는 등 추진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전력수요관리 정책으로 겨울철 전력 피크 잘 넘겼는데 “원전, 석탄발전 더 지으라고?”

산업부 관계자는 2017년 발전설비 연평균 이용률이 54.2%라고 13일 밝혔다. 2016년 발전설비 이용률인 61.6%보다 낮아진 이유를 전력수요 증가율이 2.4%에 그친 반면 전력설비 증가율이 10.4%나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발전 설비가 과잉 공급됐음을 산업부가 고백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발전 설비란 연평균 전력 수요보다 피크 전력 수요를 대비해 계획, 건설되기 때문에 그같은 현상이 빚어진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산업부가 여전히 공급 중심의 전력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설명을 내놓는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2017~2018년 초, 원전 9기가 정비로 인해 정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수요관리 정책을 적절히 구사해 겨울철 전력 피크를 별다른 사고없이 넘긴 사실은 더 이상 발전소 건설 중심의 전력정책에서 탈피해도 괜찮다는 신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전문가는 “발전 설비가 200만kW 가량 남아돌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과정과 8차 전력수급계획 등을 통해 확정됐다는 이유로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한다는 것은 분명한 설비 과잉”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이어 그는 “2017년 전력수요 증가율이 2.4%에 불과하고 전력설비 증가율이 10.4%에 달한다는 사실은 산업부가 전력설비를 과도하게 공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원전과 석탄발전 등 대형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건설사만 국민 세금으로 배를 불리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 프로슈머의 기본 개념. 이를 위해 산업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3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그림=한전 블로그

◇ 에너지 프로슈머 법안 3년째 국회서 낮잠…관련 기술 확보해도 '나몰라라'

산업부의 난맥상은 발전 설비 과잉 공급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20년까지 보급할 계획인 AMI(지능형 전력계량기)가 최신 기술 수준을 반영하지 않고 있는데다 에너지 프로슈머, 전력 중개사업, 전기차 충전사업 등 에너지신산업을 위한 산업부의 전력사업법 개정안이 2016년 6월 국회에 제출된 후 2년 가까이 잠자고 있는 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산업부는 현재 측정간격이 15분인 AMI를 2020년까지 보급할 계획이다. 문제는 에너지 프로슈머 등 민간 전력거래에 측정단위가 15분인 AMI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너지 프로슈머는 태양광발전 등으로 생산한 전력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해뒀다가 필요한 이웃에 공급하는 발전사업자다. 현재까지 전력 생산과 공급의 주체가 한전과 발전자회사였으나 에너지 프로슈머 시대엔 태양광발전 등 자가발전 소유자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를 위해 측정 간격이 좁은 AMI 설치가 필수적인데 산업부는 한전이 확보한 15분 단위의 AMI를 보급하겠다고 방침을 세웠다. 이미 민간엔 1초 단위로 전력량 측정이 가능한 AMI가 시중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15분 단위 AMI 보급의 당위성을 ‘계량 안전성 확보’에서 찾았다. 계량 안전성은 무슨 일이 있든지 전력 공급과 이용량을 측정한다는 말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AMI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량”이라며 “유선망이 바탕이 된 PLC 전력망에 15분단위의 AMI를 설치해 끊김없이 계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무선통신을 이용하면 계량이 제대로 안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간이 개발한 AMI를 보급하기 위해 현재 국가기술표준원과 함께 올해 상반기 마련을 목표로 AMI 형식승인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며 “민간의 무선통신망을 활용한 사물인터넷(IoT) 방식의 AMI를 법정계량기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발언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일단 전국에 깔린 통신망이 유선이기 때문이다. 산간벽지까지 고르게 전력을 공급하고 전기 공급량과 사용량을 측정하려면 PLC 전력망과 15분 단위 AMI가 가성비가 더 나을수도 있다.

모든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무선통신망과 1초 단위 전력망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가 예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의 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한전이 블록체인을 이용해 실시간 전력거래가 가능한 기술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개발하고 있는 현 상황과 산업부가 에너지 프로슈머 도입을 이미 3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는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지 않는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한전을 거치지 않고 바로 공급자와 수요자 간 전력 직거래가 가능한데 이 때 필요한 것이 1초 단위의 AMI다.

2020년까지 장기 계획을 바탕으로 AMI를 보급한다면 기술 예측을 통해 미래 성능에 부합하는 AMI를 보급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의 논지다. 게다가 정부 세금을 구형 기술에 쓰고 신형 기술 보급을 민간에 맡긴다는 산업부의 발상은 결국 15분 단위 AMI를 공급하는 특정업체에 특혜를 준다는 의혹을 사게 될 수도 있다.

업계 전문가는 “산업부의 AMI 보급 계획대로라면 2020년 이후 또다시 국민 세금을 들여 새로운 성능의 AMI를 보급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그것이 바로 혈세 낭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기정통부가 5G 무선통신망을 상용화하겠다고 예고한 것이 내년 3월”이라며 “산업부가 에너지안전성 확보를 이유로 여전히 공급 중심의 전력 정책을 고수하고 최신 기술을 외면하는 것은 결국 문재인 정부의 핵심정책인 에너지전환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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