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명' 받고 싶었던 한 기자의 대통령 신년회견 참관 소감

안병용 정치사회부 기자.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무엇보다 '無각본' 진행은 회견에 참석하는 기자들에게 설레임을 안겼다. 기대감도 한껏 높인 촉매제였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모든 기자들에게 '나도 질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측면도 있었다. 대통령의 지명만 받으면 미리 정해지지 않은 나만의 질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 기회인가.

여론과 여야 정치권에서도 기자회견 방식을 놓고 호의적인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이 다양한 의견을 정해진 대본없이 자유롭게 수렴하겠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여분에 걸쳐 신년사를 낭독한 뒤 질의응답 시간이 돌아오자,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필자 역시 허리를 곧추세운 채 열심히 손을 흔들었고, 문대통령과 '아이 컨택'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꼭 해야 했던, 들어야만 했던 질문들을 나름 노트에 빼곡히 굵은 글씨로 적어놓은 채 기회가 오기만 기다렸다.

대통령 기자회견 전날 '무슨 질문을 할까' 새벽까지 행복한 고민을 했다. 하지만 회견 당일, 들뜬 기분은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불쾌함으로 뒤엉키고 말았다. 아마도 '정통 보수' 언론사의 모 기자가 '상식 밖'의 질문을 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보면서 울화가 치민듯 했다. 얼핏 무(無)대본의 후유증이거나 단순 실수려니 하는 생각도 들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해당 기자를 A기자로 칭한다. A기자는 "기자들이 대통령에 비판적 기사를 쓰면 안 좋은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지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고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A기자는 이어 "그래야 좀 편하게 기사를 쓸수 있을 것 같다"며 웃음까지 지었다.

그 순간 회견장에 모인 200여명의 기자들과 함께 문 대통령도 웃었다. 하지만 기자는 어이가 없어 실소만 절로 나왔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대통령 기자회견은 '기자와 대통령'이 묻고 대답하는 시간이 아니다. '국민과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비판을 통해 더 나은 대한민국이 만들어지는데 기여해야 하는 '롤 플레이어'일 뿐이다. 국민이 궁금해하고 듣고 싶은 사안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사 편히 쓰게끔 지지자들에게 당부 말씀을 해달라'는 질문을 과연 국민과 기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선·후배 동료기자들에게 그 질문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B기자는 "정작 해야 할 질문 시간을 뺏어간 질문"이라고 혹평했다. C기자는 "외신기자들에게 부끄러울 지경"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D기자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E기자는 "보수가 국민들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이유"라고 에둘러 풀이했다. 짧은 순간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나름의 느낌과 생각을 이런 식으로 전했다. 표현만 달랐을뿐 비슷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A기자는 해당 질문을 하고 회견이 끝난 직후 SNS상에서 국민적(?) 지탄을 받은듯 했다. A기자는 사실 '또 문빠(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의 비판인가'라고 단순하게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A기자에게 한 가지만 부탁드린다. 부디 기자란 대의자(代議者)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본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문 대통령께도 특별히 한말씀 드리고 싶다. "차라리 잘 짜여진 '각본 있는' 기자회견을 원합니다"라고.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때처럼 사전에 질문 순서와 질문 내용이 짜여진 '연극'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신년 기자회견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문대통령한테 직접 지명돼 진짜 궁금했던 질문을 던지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