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심사위원회 개선 절실…'셀프 심사' 배제 필요

최근 유례없는 물난리에도 불구하고 충북 도의원 4명이 외유성 유럽 연수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지방의원들의 혈세외유가 다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충북도의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 3명이 제명되고 더불어민주당 도의원은 자진 사퇴했다.

27일 각 지자체 의회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해외연수에 대해서는 정책 반영이나 입법 등 본래의 취지와 달리 상당수 일정이 관광과 놀이, 휴식 같은 외유성 일정으로 짜여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온다는 건지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의원들 스스로 의식을 개선하고 지방의회 해외연수 시스템을 전면 개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6일 일정에 '4시간 빼고 모두 관광'

경기도의회 도의원 3명은 2014년 1월 5박 6일간 우호 교류협약을 맺은 호주 퀸즈랜드주의회를 방문했다.

친선을 위한 주의회 방문은 전체 일정의 4시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친선교류와 무관한 시드니 관광이었다.

도의원 1명당 267만원의 경비가 관광을 위해 지원됐다.

그해 경기도의원 전체 130명 가운데 90명 가까운 의원이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대부분 일정이 관광이나 문화체험으로 '혈세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경기도의회가 외유성 관광을 막자며 2013년 10월 마련한 '공무국외여행에 관한 조례'는 헛구호가 돼 버렸다.

충북 제천시의회도 2015년 3월 '불과 7시간짜리 공식일정'을 위해 열흘짜리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의원들이 복지 선진국을 둘러보며 의정 자료를 모으고 국제적 감각을 키우자고 마련한 8박 10일간의 북유럽 여행이었다.

이들의 공식일정은 7시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관광이었다. 연수 일정도 공무 사이사이에 박물관 및 궁전 관람, 빙하 투어 등의 여행상품을 끼워 넣는 식이었다.

전북도의회 의원 10명도 같은 해 4월에 중국 장쑤성을 다녀왔다.

자매결연 20주년 자축과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였지만 실제는 교류업무를 본 시간은 나흘 동안 단 3시간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견학과 시찰이 대부분이었다.

◇ 염치없는 '혈세 외유'…연수보고서도 엉터리 '수두룩'

'호주 와인 생산지 관광상품 연계 시찰', '로열 국립공원시설 방문', '방문 기간에 서울과 시드니 날씨', '인사 말씀'…

2014년 10월 20일부터 1주일간 서울시의회 의원 10명과 공무원 3명이 1인당 수백만원씩을 들여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를 방문한 대표단 국외 활동 귀국보고서 내용이다.

전체 12쪽 중 10쪽이 여행 세부일정과 방문 기간의 날씨, 방문 개요, 인사말, 현장 일정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나머지 2쪽도 주요 방문 도시의 방문 일시와 장소, 참석자 중심이고 정책 관련 내용은 한두 줄에 불과하다.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의원 5명과 공무원 3명이 2015년 3월 발칸반도 4국을 다녀온 뒤 제출한 공무국외 연수보고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32쪽 중 절반이 넘는 20쪽가량이 연수 일정과 방문국가에 대한 개요, 이동 경로, 관광지 및 단체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2014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17개 광역 시·도의회의 공무국외 여행결과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유명관광지 위주의 공무국외여행 편성이 대부분이었다.

이 기간 공무국외여행 의원 1인당 평균 경비는 부산시, 충남도, 충북도, 경북도의회 등 4곳이 300만원 이상을 지출했고, 나머지 의회는 평균 250만원 정도였다.

국외 방문 횟수는 경기도의회가 31회로 가장 많았고, 대구 25회, 제주 22회, 충남 19회, 서울·강원 18회, 전북 16회, 부산·경남 15회, 인천 14회, 경북 13회, 전남 11회, 광주 10회 순이었다.

울산과 충북은 9회, 대전은 5회에 불과했다.

특히 울산과 전북, 제주도의회는 공무국외여행 참가 의원과 참가 공무원 비율이 거의 1대 1에 달해 의원 1인당 공무원 1명이 여행에 따라나섰다. 의원들의 연수결과 보고서는 대부분 국외 활동 과정을 일정 중심으로 정리하는 수준이었다.

가장 핵심인 공무국외여행의 구체적인 목적과 필요성 및 국내 적용 부분에 관한 기술은 거의 빠져 있었다.

대구와 인천, 광주, 전북도, 경기도, 강원도의회는 그나마 결과보고서 표준서식조차 없었다.

◇ 맹탕 해외연수 심사위원회 개선 절실…'셀프 심사 배제해야'

지방의회 국외연수가 여행사 패키지 관광상품처럼 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연수를 단순 '관광'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한 탓이다. 의원들 스스로 의식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국외연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현행 자치법규에 따르면 연수에 앞서 '국외연수 심의위원회' 개최가 원칙이지만, 서면심사로 대체하는 등 '웬만한 선'에서 통과시켜주는 것이 관례처럼 돼 왔다. 심사위원회의 기능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분석한 지방의회 공무국외 심사제도 현황에는 심사위원회 위원이 평균 7∼9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40%가 지방의회 의원으로 구성돼 있고, 나머지 60%는 시민단체 관계자, 교수 등이다.

전국 대부분의 의회가 재적 위원 과반수 출석이면 심사위원회가 열리고, 출석한 의원 2/3 이상 찬성이면 가결되는 조건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4∼5명의 위원이 출석하고, 그중 3명 이상만 찬성하면 가결되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이해당사자이자 수혜자인 지방의회 의원이 대부분의 위원회에서 과반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위원회의 심사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 실장은 "단순시찰 혹은 외유성 여행이 아닌 공무국외여행의 목적 및 필요성을 계획 단계에서부터 구체화해야 한다"면서 "목적에 맞는 대상지와 면담자를 선정한 후 해외연수를 다녀오는 방식이 이뤄져야 세금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 구성에서 수혜대상자인 지방의회 의원을 제외해야 한다"면서 "연수 목적에 맞는 시민단체 관계자, 공모를 통해 선발한 시민을 해외연수에 포함하는 것도 관광성 해외연수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의정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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