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남북관계, 깜깜한 동굴…벗어나는데 중요한 것은 일관성·인내·희망"

통일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새 정부의 첫 번째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다시금 대한민국의 공직자로 일하게 된 것에 감사하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아울러 전임 홍용표 장관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통일의 길에 늘 함께해 주실 것을 믿으며, 건승을 기원합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의 길은 앞선 세대와 선배들이 온몸으로 부딪쳐 열어온 길이라는 점도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통일부장관 후보자로 통보를 받고 난 다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9년여 만에 다시 여러분과 동고동락하게 되어 기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도 저를 환영해주시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 취임사도 오랜만에 만난 벗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적습니다. 처음에는 9년간의 공백 때문에 다시 보고서를 보면 낯설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만,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통일부 사람'이었던 것이고, 여러분들은 제가 이전에 근무할 때보다도 더 훌륭한 역량을 갖추고 계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청문회 준비를 위해서 애써주신 통일부 직원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취임사에서는 통일 업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는 것이 마땅합니다만, 오늘은 구체적 내용보다는 기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여러분과 다시 만난 소회, 정부 밖에 있는 동안 느꼈던 점들 중심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통일 업무에 대한 저의 생각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어느 정도 말씀드렸고, 앞으로 업무를 더 면밀히 파악하고 국민들과 국회, 그리고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토론하면서 구체화해 나갈 것입니다.

제가 정부 밖에 있는 동안 남북관계가 어려워진 만큼 통일부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짧은 기간 여러분을 만나면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통일부 선배께서 "통일 업무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알고 있는 사람은 통일부 직원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자"라고 한 말씀이 기억납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고 정부 내에서도 많은 부처가 통일 업무를 함께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를 일년 내내 밤낮 없이 생각하는 것은 대한민국이고, 또 정부 안에서는 통일부입니다.

다른 나라와 경제협력을 할 때 사업의 성패는 그 나라의 문화, 주민 의식과 관습 등에 대한 이해가 경제적 타산 못지않게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통일부가 한반도 문제, 북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민간과 정부 각 부처가 하는 일들이 더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함께 갈 수 있도록 조율해 나가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헌법과 법률이 통일부에 부여한 역할과 책임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와 통일부 직원 모두가 이러한 역할에 부족함은 없는지 늘 살펴보고, 채워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통일 업무의 매력은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에 후배들이 통일부에 대해 물어왔을 때, 벤처기업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남북관계 법률들, 협력기금, 일부 남북대화 등은 여러분의 선배들이 실무자로서 떠오른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어서 만들어지고 추진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창의성과 개방성,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통일부의 분위기 또한 이에 걸맞게 문턱이 없고 주저함이 없게 편안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방향으로 통일부의 혁신과 발전 방향을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2008년 퇴직할 때 제 나이는 51세였습니다. 저로서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또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일을 권유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저에게 바라는 것은 오히려 이제는 좀 제가 쉬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열심히 한다고 야근하고 주말에도 근무하고 했던 것인데, 가족들에게는 많이 서운했고 제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는 힘들지만 즐거워야 했고, 직장 밖과 집에서는 충분히 쉬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재직 중에 이러한 저의 무리함 때문에 아쉬운 일처리가 많았고, 저의 업무 방식 때문에 동료와 후배들이 많이 힘들어했을 것이라는 점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저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퇴직 후에야 느꼈던 이러한 점을 잊지 않으면서, 일하면서 즐겁고 공정하며 일과 휴식이 분명한 직장 분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차관을 비롯한 간부진들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꾸준히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우리는 국민들과의 소통을 강조합니다. 특히 촛불 민심에 의해 탄생한 새 정부로서는 국민들과 소통의 중요성이 더욱 큽니다. 사실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부 밖에서 있으면서 늘 느껴왔던 것은 국민들과 정부 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내 관계부처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만, 국민들께서는 그러한 노력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간극이 발생한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메워 나가야 합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하는데, 그렇게 맞춰졌는지는 저희들 입장에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께서 그렇게 느끼셨는지가 중요합니다.

국회와도 업무를 추진하는 사전과 사후에 긴밀하게 상의하고 좋은 의견을 받아 정책에 반영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퇴직한 후에 주민센터에 가서 서류를 떼면서 그곳 직원들이 매우 친절했음에도 약간 경직되는 제 모습을 보면서, 과거 저를 만났던 민원인 분들도 같은 느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통일부도 남북교류협력, 통일교육, 탈북민 정착 등과 관련해서 많은 민원인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저희가 한번 더 웃어주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분들은 정부와 공무원의 일처리에 대한 신뢰를 더 가지시게 될 것입니다.

남북관계는 어떤 면에서는 지난 9년 전과 비슷한 점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와 남북관계 상황은 지난 9년 동안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의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지도부에 큰 변화가 있었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이로 인한 국제사회의 한반도 문제 개입, 국민들께서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해 갖는 인식은 크게 달라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서로 얽혀서 문제의 복잡성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마치 깜깜한 동굴 속에 얼마나 깊은지 동서남북도 모르고 갇혀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는데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인내, 희망일 것입니다. 과거 북한과 회담을 하러 배를 타고 금강산에 가면서, 큰 배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마치 정박해 있는 것 같지만 어느새 망망대해에 나와 있는 것처럼, 남북관계도 북한도 이렇게 변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노신은 희망은 본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 길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여정에 통일부 직원 분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든든합니다. 저 역시 여러분에게 믿음직한 길잡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어렵기만한 상황에서 상호 긍정적인 방향으로 촉진하는 선순환 구도가 되도록 희망을 갖고 끈기있게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정에 우리 사회에 생각이 같거나 다른 분들, 북한 동포들, 국제사회가 함께 갈 수 있도록 문을 열고 노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짧고 간단하게 쓴다고 시작한 글이 제법 길어졌습니다. 긴 글이 되어서 미안하고,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편하고 가깝게 지내고자 합니다만, 사실 아직 우리 공직 사회 분위기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도 잘 압니다. 이 글을 수시로 꺼내어 읽으면서,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거듭 여러분들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고, 함께 일하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무더위 속에 통일부 직원 여러분들과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7월 3일 조명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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