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이정현 기자] 선거철이면 반복되던 ‘북풍(北風)’이 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좀처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9일 진행된 대선주자 5인의 TV토론회는 ‘주적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향해 “북한이 주적이냐”고 묻자 문 후보가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라고 응수한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다음날 “국방백서에 (북한은) 주적으로 명시돼 있다”며 주적 논란에서 문 후보와 차별성을 두려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문 후보측은 이미 국방백서에서도 사라진 주적 표현을 빌미로 색깔론에 나섰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투표일을 약 2주 앞두고 화제성있는 북한 변수가 등장하자 북풍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해당시기 여론조사 결과는 달랐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의 지지율은 오히려 안 후보와 오차범위이상으로 벌어졌다.

해당 조사에서 문 후보는 41%의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안 후보는 지지율 30%로 전주보다도 오히려 7%포인트가 떨어졌다. (신뢰도 95% 오차범위 ±3.1%포인트)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이번 선거에서 북풍의 영향력이 역대 선거와 다르다고 말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27일 ‘데일리한국’과의 통화에서 “이번 북풍은 이슈의 성격 자체가 과거와 상이하다”면서 “과거 북풍은 전형적인 색깔론, 이념논쟁이었다면 이번엔 미국의 대북 강경대응과 미·중 정상회담 개최 등 현실적인 위협이 됐다”고 강조했다.

배 본부장은 또한 “과거엔 북풍이 나오면 뚜렷하게 양 진영이 갈린 것과 달리 이번엔 모든 후보가 우클릭 행진을 하고 있다”며 “대북 이슈가 변별력이 없어지면서 색깔론이 아닌 도덕성 이슈로 넘어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보수에서도 이제는 단순한 색깔론으로는 안 먹힌다는 것을 안다”며 “전날 TV토론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사형제도나 동성애 등 엉뚱해 보일 수 있는 이슈를 꺼낸 이유도 도덕성 이슈로 의도적으로 돌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풍이 사그라든 배경에 시민들의 민주주의의 성숙이 한몫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뤄진 만큼 적폐 청산과 민주주의사회를 세우려는 열망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 정치사에서 초기 ‘북풍’은 민주적 정권교체에 대한 억압 차원에서 구사된 측면이 없지 않다. 과거 이승만 정부에서의 진보당 사건이나 박정희 정권의 동백림 간첩사건이 대표적 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측이 선거를 앞두고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며 북풍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에 다음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제2연평해전과 2차 북핵위기가 터졌음에도 유력 보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이 같은 흐름에 최근 북풍을 대하는 후보들의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경우 “북한이 없었으면 보수는 어떻게 선거했습니까”라거나 “구태의연한 색깔론 이제 좀 실망스럽다”라면서 ‘북풍=구태’로 정면 반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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