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투표자의 심리는 밤낮이 다른 '지킬 앤 하이드'가 됐다”

홍형식 한길리서치소장 “여론조사는 조사 시점의 지지도 반영할뿐 예측조사가 아니다”

자료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데일리한국 이정현 기자] 자유한국당 대선주자로 나선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29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세미나에서 낮은 지지율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일부만 답변하는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론을 살피는 정치인, 특히 대선주자가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감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분명 파격적인 행동이다.

다만 홍 지사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사회에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감이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는 예상과 다르게 당시 새누리당이 참패하는 결과가 나오자 ‘여론조사 무용론’마저 불거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오는 5월 9일 치러질 19대 대선을 앞두고 각종 선거조사가 봄꽃처럼 만발하는 가운데 여론조사 무용론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지난 총선에서 여론조사 무용론이 대두됐던 주요 원인으로는 전화조사 방식이 지적됐다. 젊은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주로 이용하는데 여론조사 대부분이 집전화를 대상으로 조사해 실제와 상당한 차이 났다는 것이다.

다행히 올 대선에서는 전화조사 방식에 대한 우려는 상당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올해 2월 개정된 선거법을 통해 이번 대선 여론조사에서는 정당이 아닌 일반 여론조사업체도 안심번호를 이용해 휴대전화 조사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29일 이뤄진 ‘데일리한국’과의 통화에서 여론조사 무용론이 대두된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했다.

배 본부장은 “과거에 비해 선거 결과 예측이 더욱 어려워졌다”며 “교통 발달로 이동이 쉬워지면서 지역내에서도 적절한 응답자를 찾기가 어렵다. 또한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통신이 발달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투표자의 심리는 낮과 밤으로 다른 '지킬 앤 하이드'가 됐다”고 설명했다.

배본부장은 이어 “선거 조사에서의 특수성도 작용한다”며 “선거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대한 시시비비가 다시 논의되며, 다른 여론조사도 서로 영향을 받아 왜곡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결과나 내용이 다음번 여론조사 등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다는 얘기다.

그는 “선거 기간 극심한 표심의 변화도 있다”며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일명 ‘블랙아웃’ 시기에 얼마든지 표심 변화가 나올 수 있다. 선거전 여론조사 결과와 개표 결과의 단순 비교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 총선의 논란을 의식해 여론조사 관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선거철을 이용해 난립하는 업체의 여론조사로 신뢰도가 떨어지고 응답자의 피로도를 높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사원의 자격 조건과 여론조사 업체의 소득증빙 등을 엄격히 규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한 지난 지난 3월부터 개정된 선거여론조사 관련 공직선거법에 의해 여론조사의 설문항목을 사전 신고하도록 했다.

다만 배 본부장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말이 나오는 게 한국의 여론조사 환경”이라면서 “관련 법령과 규제가 세계적 수준에 비춰봐도 지나치게 촘촘해진 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여론조사는 조사시스템 같은 기술적인 면과 더불어 도덕적 운영 등 문화적 수준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며 “문화적으로 안착돼야 할 것이 법과 제도 규제로 나타난 상황은 아쉬운 대목이다”라고 밝혔다.

자료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한편 여론조사 무용론의 주요 근거로 '낮은 응답률' 문제가 있었다. 실제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 대부분이 10%대 응답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자릿수 응답률마저 나오는 가운데 10%대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원 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는 지난달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의 응답률 계산은 접촉실패 사례 수를 분모에 넣지 않아 응답률이 높다”면서 “미국 응답률 10%와 우리나라 응답률 10%는 다르다. 미국도 우리나라 수준이라며 위안을 삼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응답률과 조사 정확성은 상관이 없다”며 “적합한 조사 대상을 찾기 위해 수도 없이 전화를 하다보면 오히려 응답률은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홍 소장은 이어 “제일 중요한 것은 표본의 대표성”이라며 “유무선 전화 응답 비율과 조사기관 패널 선정의 적정성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흔히 부동층이 적게 나오면 여론조사 질이 높고, 부동층이 많으면 조사 질이 낮다고 하는데 이 역시 잘못된 인식”이라며 “정치관심층 위주로 응답하는 ARS 조사는 오히려 부동표가 낮게 나오는 게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론조사는 조사 시점의 지지도를 반영하는 것이지 예측조사가 아니다”며 “유권자는 여론조사는 참고만 하고 후보자의 공약이나 비전만 보고 투표해야 한다. 지지율이 높다고 정치를 잘하고 국정 운영을 잘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언론사의 무분별한 여론조사 인용 행태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표본오차 범위 내에 속한 지지율 차이를 과대 포장하거나, 표본모집과 조사방식이 각기 다른 여론조사 업체의 조사 결과들을 시계열로 배열해 보도하는 사례 등이다.

중앙선관위는 선거 관련 여론조사의 올바른 정보 제공을 위해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사이트(www.nesdc.go.kr)에 조사방법에 관한 세부 사항 등을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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