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유엔본부 한국특파원단과 마지막 기자회견서 피력

"국내 혼란은 지도력 잘못에서 발생"…모든 세력과 연대

1월 중순 귀국 황교안 권한대행 만나 귀국신고 '첫 행보'

오는 31일 퇴임 뒤 내년 1월 중순 귀국할 예정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김청아 기자] “10년 동안 유엔총장을 역임하면서 배우고, 보고, 느낀 것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3)이 사실상 대권 출마의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미력한 힘이나마 국가 발전을 위하고 국민복리·민생 증진을 위해 제 경험이 필요하면 몸 사리지 않고 할 용의가 있다. 현재 일흔세살이지만 건강이 받쳐주는 한 국가를 위해 노력할 용의가 있다.”

40여년 외교관의 수사라는 점을 의식하면 대권출마의 의지를 확고히 굳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 총장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던 1970년 2월 외무고시에 합격해 그해 5월 외무부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후 외교가에서만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외교통이다.

오는 31일 제 8대 유엔 사무총장 퇴임을 앞두고 반 총장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언론 특파원단과 마지마 기자회견을 갖고 퇴임후 활동계획 및 정치적 소견을 밝혔다.

특히, 퇴임 뒤 내년 1월 중순 귀국하는 반 총장은 이전의 국내 정치에 대한 신중한 발언과 달리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상황 및 대선 등 국내 정치상황에 강도 높은 견해를 밝혀 귀국 후 국내 정치행보에 강한 의욕을 드러내 보였다.

반 총장은 이날 여전히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무엇에 기여할 지 깊이 고뇌하면서 생각하고 있다”며 대선 출마에 직접적인 표현을 삼가는 태도를 보였지만 자신의 거취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사실상 대선 출마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자회견에서 대선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귀국 뒤 각계 국민을 만나 말씀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국민 여러분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반 총장이 현재 각종 국내 대권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 이어 오차범위 내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새누리당 입당 가능성에 대해선 “정치라는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수단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면서 새누리당을 포함한 모든 정치세력과 연대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았다.

반 총장은 최순실게이트와 박대통령 탄핵, 국민 촛불집회 등 국내 시국에도 개인 소견을 털어놓았다.

그는 “국민이 선정(善政)의 결핍에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있다. 시스템의 잘못, 지도력의 잘못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국 정치혼란의 원인을 진단했다.

그는 또한 “쌓여 있던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다 모여서 진솔하게 검토해 고쳐야 한다”면서 반 총장 본인도 어떤 계층과 시간·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 해결 모색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반총장은 정치 혼란을 야기한 지도력 잘못과 관련, “화합과 통합, 포용적 대화, 국민 결속, 사회통합을 이뤄야 진정한 지도력이 나오고 진정으로 포용적 지도력이 나오며, 이것이 리더십의 요체라고 평소 생각했다”며 자신의 정치 철학인 ‘포용적 리더십’을 재차 강조했다.

한편, 반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외교부 장관 출신으로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진영의 물밑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왔다. 이와관련해 일부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이 반총장이 ‘배신'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반 총장은 이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자 "저는 평생 살면서 배신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인격을 모독해도 너무 모독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반총장은 국제무대에서 고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을 호평한데 대해 질물니 나오자 “특별히 지도자를 찬양한 것은 아니고 느끼고 들은 바를 솔직하게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 총장은 북한에 대해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반 총장은 귀국 뒤 국내 ‘반기문 재단’의 설립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계획은 없다”며 당장은 추진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반 총장은 1월 중순 귀국 후 우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만나 귀국 신고를 할 계획이다.

다음은 반 총장의 모두 발언. "10년 임기 마무리하느라 두 달 전부터 바쁘게 지냈다. 몸은 피곤하지만, 국제사회에서 10년 노력을 인정받고 있어서 뿌듯하다.

10년간 발전된 한국의 위상이 사무총장 직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국민의 따뜻한 성원이 아니었다면 10년에 걸친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원국과 시민단체가 특별히 인정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보내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지난 10년 기간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세계적인 변혁기였다.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유엔 책임자로 안보, 경제, 사회, 보건 등 특히 인권보호에 대응했다. 11월 4일에 발효된 파리기후변화 협정과 2030지속가능개발목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콜롬비아 내전 종식과 미얀마의 민주화 발판을 만들어 항구적인 평화의 길로 가게 한 것도 보람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과격한 테러와 인종 분쟁 확산 등 심각한 위협에 놓여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청년 실업, 고령화 등 과제도 산적해 있다.

국제사회 당면 과제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정치지도자나 시민단체에서 어떻게 기후변화나 지속가능개발목표를 정책에 잘 반영해서 국제사회와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귀국 앞두고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촛불로 나타난 민심은 국민의 좌절과 분노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에 대해 국제사회가 우려하면서도 평가하고 있다. 민주적 헌정 질서에 따라 문제를 극복해서 우뚝 서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슬기와 단합으로 극복한 지혜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대내외적으로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귀국해서 마음이 무겁다. 한국 공직자로서의 경험, 유엔 사무총장으로 경험 등을 살려서 이제는 한국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깊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10년간 마라톤 경기로 보면 100미터 뛰듯이 달렸다. 후임 사무총장에게도 인수인계 잘 하고 있고 퇴임 후에도 차분히 생각 가다듬고 국민께 감사 인사 드리고 폭넓게 의견 수렴하는 기회를 갖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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